크리스천라이프

얼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구나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자녀들도 독립했고, 공동체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서도 내려왔다. 오롯이 나만 잘 살면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삶을 재구성하니 나이 듦이 무르익은 과일처럼 달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시작했다.

나의 존엄성은 내가 지킨다
팻 테인 Pat Thane은 런던대학교 킹스 칼리지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노년의 역사>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은 서문이 시작되기도 전인 첫 페이지에 딱 한 문장으로 이렇게 써 놓았다.

‘노년에는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누구든 의지하려 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스스로를 통제하려 할 때만 존중받을 것이다.’-키케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감당해야 존중받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내면서 살 때, 나도 자유롭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평안을 준다.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독립심을 키워 나가니 존엄성을 잃지 않게 된다. 그 누구도 나의 존엄성을 허물 수 없다. 다만, 내 스스로 무너질 뿐이다. 그런데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내공이 강해지면, ‘너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마귀의 속삭임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아내와 상생하는 법을 터득했다
아내와 나는 죽이 잘 맞는다. 각자 따로, 그리고 함께 시간을 즐긴다. 나는 아내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한다. 아내 역시 나에게 그러하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목회하는 내내 월요일은 나에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그것이 나의 숨 쉴 공간이었다. 지금 아내는 생업을 위한 일 이외에 인터넷을 통해서 삽화를 배우는 시간과 혼자만의 영성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생업을 위한 일 이외에 골프 치는 시간을 즐기고, 나 혼자 무엇이든지 누릴 수 있는 스터디 룸이 있다. 서로 자유를 누리는 시간과 공간이 있다.

그리고 드라마를 볼 때, 같이 공감하는 드라마와 프로그램은 함께 본다. 나이 들어 드라마를 보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서 좋다. 함께 하는 우리의 완전한 시간은 둘이서 같이 걸을 때이다. 함께 걸으면서 충분한 대화를 나눈다.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기에, 끝 날까지 같은 방향을 바라며 함께 걸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돈에 매여서 일하지 않기로 했다
경제적인 준비가 충분히 된 상태에서 은퇴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특히 목회자들은 어떠할까? 나 역시 경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일해야 한다. 그런데 일을 해 보니, 생계를 위한 일과 주를 위한 일로 나누어진다.


생계를 위한 일은 돈 생각을 안 할 수는 없다. 정상적인 값을 지불받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버 운행할 때 돈만 생각하면 힘든 일들이 많아진다. 그래도 섬기는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다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해서 보람 있는 결과를 얻게 된다.

더군다나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일은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다. 전임 목회자들은 당연히 전적으로 교회가 생계를 부담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나는 지난 이민 목회 생활 동안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은퇴를 결정할 때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준비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가 임지를 결정하거나 역할을 결정할 때, 영혼 구원 때문에 ‘주께서 허락하신 일이냐 아니냐?’로 결정하는 것이지 숫자나 가능성을 보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얼마나 가능하냐?’의 가능성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해야 일이냐 아니냐?’로 결정하는 것이다.

숫자가 안 맞고 가능성이 없고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해도 주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결단하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 선택과 결정으로 홍해 바다가 갈라졌고,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 교회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와서 사도 바울처럼 생계를 위한 무기가 하나쯤 생기니 Tentmaker로 살아가고 있다. 충분하지는 않아도 감사하며 사는 법을 터득해 나가고 있다.

청년 정신을 놓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 동갑내기 친구 목사에게 ‘말년에 아들 전시회 돕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하자, ‘무슨 말년이냐 우리는 지금이 전성기다.’라는 카톡을 받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이제는 편안하게 살아 볼까? 이 나이에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잠시 맥을 놓고 아들이 화가로 성공하도록 후원하는 일에 마음의 중심을 두고 있었다. 아직 건강하게 일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때까지 축적된 목회적인 노하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1달란트 받은 자의 어리석은 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은 청년이다. 비록 몸은 늙어 가도,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있는 사람은 청년이다. 육체의 현실은 자꾸만 새로운 것을 도전하려는 생각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유혹한다. 그 유혹에 넘어져서 주저앉는 순간, 몸과 마음이 급격하게 퇴화될 것이기에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은 멈추지 않기로 했다. 마음이 무너지면 품위를 잃어버린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내려놓았다
내가 바라는 앞으로의 나의 기대수명은 85세이다. 그러면 20년 남았다. 남은 20년 동안 무엇을 하면서 살까 정리해 보았다. 지난 20년 동안 이민목회자로서 이루고 싶은 것들 많이 이루었고, 또한 많은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남은 20년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앞에서 이끌어 가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서 이끌 사람을 돕는 후원자로 살기로 했다.

최근에 MBTI를 검사해 보니, INFJ-a, 옹호자,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이상주의자로 나왔다. 두 번 검사해 보았는데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젊은 시절에는 리더형으로 나왔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을 돕는 자로 나왔다. 그래서 그대로 살기로 했다.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옹호하고 돕고 힘을 보태는 자로서 나머지 삶을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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