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은혜’(카리스)는 복음의 시작이고, ‘평강’(에이레네)은 복음의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쓴 모든 서신서에서 동일하게 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사도 베드로나 사도 요한도 동일한 인사말을 사용했습니다(벧전 1:2, 벧후 1:2, 계시록 1:5).
그렇게 보면 초대교회 시절을 보냈던 사도들은 모두 은혜와 평강에 대해 동일한 인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은혜와 평강’은 아론이 했던 축복 기도문에도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 6:25~26)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과 섬기는 교회 위에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은혜와 평강의 교회
교회는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마땅합니다. 교회의 거룩성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은 행복을 인생의 지고지순으로 여깁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그는 기능적으로 뛰어난 것이 ‘선’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철학자의 주장대로 한다면, 사람은 기능적으로 뛰어날 때 ‘선’(good)이 될 수 있고, 행복을 가장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반대로 말해서, 뛰어남이 없다면 악(evil)이 되는 것이고, 행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요즘의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 아닐까요? 어떤 면에서든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웰빙(wellbeing)을 추구하는 일에 진심입니다. 이 두 가지의 노력이 절대 악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거룩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교회는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다른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도들이 추구했던 ‘은혜와 평강’을 위해 애쓰는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추구하는 기능적 우수함과 행복은 결국 물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제게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십일조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제목을 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 마음의 동기가 순수한지를 확인해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신앙생활은 세속적입니다. ‘저를 잘 되게 하면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 하나님 제게 많이 줘 보십시오’ 이것은 변화 받기 전의 야곱식 기도입니다(창 28장).
우리 교회들은 ‘은혜와 평강’을 추구해야 합니다.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도록 하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깊은 은혜인지를 증명해 내야 합니다.
최근 연예인 이선균씨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무자비한 세상을 봅니다. 무정하고 무자비한 이 세상 안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이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절대적 평강임을 체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어떤 환경에도 휘둘리지 않고, 그 어떤 결핍에도 사라지지 않는 절대적 샬롬을 체험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거룩함입니다.
경쟁을 넘어 하나됨과 친밀함으로
교회의 거룩성이 그러하다면 오한협(오클랜드 한인교회 협의회) 단체의 거룩함은 어디에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의 모임이나 단체에는 라인이 있고 계파가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만 봐도 군 조직 내의 계파를 볼 수 있습니다. 군에도 회사에도 정부에도 기관에도 모두 라인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들의 집합체인 오한협이 거룩해 지려면 그런 라인과 계파가 없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적어도 지금까지 오한협 내에는 그런 계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오한협에 소속된 많은 선배, 동료, 후배 목사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최근에 오한협 단체를 섬길 수 있는 회장직을 1년간 수여 받았습니다. 무거움을 느낍니다. 큰 일을 하기 보다 임원목회자들과 더 하나되고 더 친밀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나아가서 오한협 모든 회원들이 거리낌 없는 사이가 되도록 기도하려고 합니다.
진리를 향한 열정, 복음전파를 위한 협력, 개교회의 사역을 존중하는 인격. 이것이 올 한 해 제가 추구하는 오한협 단체의 목표이자 거룩성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의 어떤 집사와 최근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오한협 회장 되셨는데 축하를 드려야 할지,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네 집사님, 적어도 축하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회장은 말 한 마디로 여러 사람을 움직이고, 라인을 형성하고, 어디를 가든 직위에서 나오는 특권을 누리는 축하를 받는 직입니다. 하지만 오한협의 회장직은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임원들과 회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직분입니다. 앞선 회장들이 그러하셨듯 회장직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 힘쓰고 싶습니다.
2024년. 올 한 해는 교회마다 말씀의 은혜가 더 풍성하고, 성도 간에 사랑이 더 깊어지고, 우리 회원 간에도 복음 안에서 더 친밀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