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은퇴를 맞이하는 이들을 위하여

일의 은퇴는 없다 눕기 전까지 일하면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직종이나 역할의 은퇴는 찾아온다. 역할의 전환은 필연적이다. 시대가 요구하든 상황이 요구하든 내려놓아야 할 때가 찾아온다. 아무리 아름다운 마무리를 한다고 해도 후유증은 있게 마련이다. 머뭇거리면 추하게 된다. 매듭지을 것은 매듭지어야 새 출발을 할 수가 있다.

워밍업이 필요하다 65세부터 준비하면 조급해질 수 있다. 삶의 전환은 쉽지 않다. 전적인 시도를 해도 적어도 3년은 필요하다. 그러니 현직에 있으면서 새로운 직종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현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은퇴를 준비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생각으로만 맴돌다 가다 직종의 전환을 놓치기 쉽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직종 전환의 은퇴를 준비하기 어렵다. 나도 그러했다. 하여, 나는 3년 조기 은퇴를 선택했고 3년의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되었다. 삶의 전환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3년 동안 3단계의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는 현실을 부인하고 저항하는 시기였다. 평생을 해오던 일을 손에서 놓는 순간, 추락하는 절망과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 사이의 대혼란이 일어났다. 과거의 직분과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초보로 추락한 현실을 부인하고 부정하며 저항하는 시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런 혼란의 시간은 필연적이다.

두 번째 시기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기였다.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으면 분노와 미움에 휩싸인다. 과거의 영광을 내려놓고 현실의 처지를 받아들여야 마음의 평화를 회복할 수 있다. 반 혹은 10분의 1로 줄어든 역할이나 사이즈를 받아들일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앞이 보인다. 셋째, 현실을 받아들이면 미래가 보인다. 현재의 삶에 만족할 수 있을 때, 실질적인 인생 3막이 시작된다.

값을 지불해야 새것을 얻을 수 있다 값을 지불해야 직종이나 역할의 전환을 얻을 수 있다. 생각으로만 막연히 계획하면 헛바퀴 돌뿐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시작해 보면 무엇이 추상이고 무엇이 가능한지 깨닫게 된다. 막연한 생각은 은퇴를 맞이하는 이들의 함정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이 있다.

생계가 온전히 준비되지 않는 이들은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부터 시도해야 한다. 생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리면 그 갭의 고통은 고스란히 가족들의 몫이 된다. 자기 몫의 책임을 감당한 후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준비가 필요하고 어른이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을 지불하는 선택이 어른다움이다.

3년 동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혹독하게 지불했다 갭이 클수록 마음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의 값을 지불한 끝에 드디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시작했다. 몇 가지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마음의 일치가 일어났다.

은퇴를 받아들이다 현실을 부정할수록 고통은 가중되었다. 흘러간 물은 돌아올 수 없고, 지나간 시간도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에 당연하게 주어졌던 역할이나 존중은 보호막이 걷혀 버렸다. 새로 시작하는 모든 일들이 초보였고, 나이 불문하고 앞서간 이들에게 물어야 해결될 수 있었다. 내 나이, 내 역할, 내 직분에 연연하면 스스로 감옥에 갇힌다. 과거를 기억하며 추억하는 일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런 발전도 희망도 없다. 앞으로 나가려면 잊어야 할 것은 과감하게 잊고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면서 만족하며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과거에 발목 잡히면 앞으로 나가려고 할수록 고통이 가중된다. 그래서 라떼, 즉 나 때를 끊어 내야 신선하고 생동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들이다 나름대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평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안 좋은 평가들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예상치 못했던 평가는 ‘우리들을 버렸다.’는 평가였다. 많이 괴로웠다. 적어도 장렬하게 전사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다. 큰 착각이었다. 여전히 호의적인 사람은 호의적이고 거부하는 사람은 거부한다.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면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나의 부족함과 실수한 부분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사람들의 평가에 매이지 않는 내공이 필요하다. 내공이 있어야 나의 나 됨을 살아갈 수가 있다. 사람들의 평가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다. 따듯한 바람이나 차가운 바람이나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바람은 바람으로 스쳐 지나가게 하라. 나는 바람을 바람으로 받아 누리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티끌이 되어 살기로 하다 앞장서서 일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몇 단계 앞을 내다보아야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신세계를 열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늘 매여 있었다. 중심이 되어 살지 않으면 진 것 같고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게 느껴졌다. 크섬으종,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있었지만, 실상은 항상 앞선 자로 살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모든 역할에서 내려왔을 때 티끌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티끌이 되어 사람 속에 묻히고, 세상 속에 묻혀 보니 그 또한 살만했다. 새로운 맛이 있다. 티끌이 되어 보니 온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작은 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의 숨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놀라운 일이다.

내 아내는 명문 여자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생실습 때에 나를 만났다. 교사를 포기하고 사모가 되어 지금까지 살다가 최근에 유치원 릴리버로 일한다. 그런 변화들을 물 흐르듯 받아 주어 감사하다. 내 아는 선배는 교수직을 내려놓고 수십 년간 선교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농부가 되어 땅을 일구며 간간히 강연이나 글을 쓴다. 이 또한 축복 중의 축복이다. 일할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다.

한국에서는 은퇴 준비가 안 된 이들이 49%가 넘는다고 한다. 그들 중에 하루 종일 폐지를 주어 5,000원-1만 2천 수입에 의존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 또한 아름다운 삶이다. 힘닿는 데까지 자기 몫을 감당하며 사는 삶은 잘살고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쉬운 인생 없고, 쉬운 직업 없다. 또한 하찮은 직업 없다. 땀 흘려 건강하게 일하는 모든 직업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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