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키리에 엘레이손

오랜만에 새벽 로스터리를 다시 찾았다. 늘 코너를 찾아 앉던 습관처럼 한적한 곳을 찾았다.

숏블랙에 따뜻한 물 한 컵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생각이 깊어졌다. 한해도 이제 금방 쉬 지나갈 것 같다. 우리의 두 번 10년이 지나서 2023년을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새천년 이후 지난 20년을 보면 시간이 너무도 빠르다. 그러다가 의식의 흐름이 지금 세대들에게 향했다. 그간 과학이 모든 것을 답변해 줄 것만 같았고 무신론자들은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있는 듯하다. 불가지론자가 그나마 양심적이다.

이러한 냉소적인 태도를 하는 사회, 테크노크라시 Technocracy가 다시 꿈틀거리는 Y2K와 밀레니얼 Millennial의 AI시대에 대한 생각으로 내 머리도 마음도 복잡하다.

흔들어 버리고는 말씀 묵상을 하려고 잠시 기도하고 눈을 떴다. 커피가 나왔다. 리암이 멀리서 턱으로 가볍게 인사한다.

21세기가 시작되고 Z세대와 알파 세대가 자라나기까지 몇 차례의 10년을 이렇게 보내지만, 영적인 것과 정신, 그리고 본질에 대한 궁금증의 깊음과 갈망에 사람들은 목말라하고 있다. 정말로 그렇다. 교회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영성을 이야기하고 뭔가 내면에 대해서 설득하려고 애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영적 거듭남과 성령으로 인한 바른 내면의 성화와 성숙 외에 또 다른 유사하고 이상한 자기 해석이 섞인 복음과 힐링 같은 인본주의적 위로도 넘쳐나고 있다.

대도시화와 고도성장은 억압의 시대를 낳아 정신질환이 난무한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한 사회에 살면서 목말라 보이는 이들을 보면 영성과 정신은 함께 성장한다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이 우리 삶 가까이에 있지 않은가 싶다. 다들 허둥지둥 살고 있는 날들 속에 말이다.

사랑하는 청년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러한 궁금증들 하나하나 나누다 보면 어느덧 행복한 가랑비를 피할 길이 없다. 급히 매우 깊어진다. 이미 깊은 물에 풍덩 뛰어들어 물장구라도 치듯 놀랍도록 변해있다. 그렇게 가까워지고 친해진다.

늘 다양한 이들을 만나면서 참 많은 사례를 마주하는 삶, 넓고 깊은 삶의 곡절들과 이야기들을 접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고 행복이다. 적어도 그들의 사회 속 아픔과의 깊은 공감과 라포르는 예수님을 닮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픔을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하실 때, “그래, 그랬구나. 참 힘들겠다. 조심했어야지.” 하는 정도의 가벼운 위로가 아니다. 처세술이나 무분별한 인본주의적 접근으로 툭 뱉을 수 있는 그런 말이 아니며 쉽고 가볍게 잡담 같은 떠나는 버스에서 외치는 외마디 대화나 짧디짧은 30분 설교에 녹여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위로하시는 차원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의 아픔을 아신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안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강하게 끌어안는다. 병든 이들을 대하시고 작은 소자를 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의 상태를 체휼하신다는 것, 몸으로 깊이 체험하고 마음속 깊이 긍휼히 여기시는 그 넓음이고 깊이가 아닌가.

리암은 원두의 볶음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색을 꺼내보기에 바빴다. 마지막으로 볶아야 하는 생두가 로스팅 기계 안에 돌고 있어서 가볍게 목 인사만 나눴다. 프로 로스터의 모습이 참 멋지다 생각하면서 말했다. “곧 예배 때 봐요. 커피 감사합니다.” “예, 마지막 배치이니 이것만 볶고 바로 갈게요. 아침 나눔! 너무 좋았어요!” 그러고는 기분 좋게 헤어졌다.

로스터리를 나와 걸으면 이른 여름 아침 꽃향기는 온두라스 커피의 베리 향과 참 잘 어울린다. 차에 앉아 출발하고 신호등을 두 번 지나 세 번째 신호에 멈췄다. 네추럴 프로세스로 커피빈 안에 깊이 잘 배어있는 신선한 과일 향은 정성스레 로스팅에 집중하고 수고한 리암의 모습이 담겨 그윽한 향을 품었다. 신호 대기하며 멈춰 서서 마시려고 텀블러를 열자 그 향기가 차 안에서 가득히 진동한다.

이제 두 시간 뒤면 10시 오전 예배 준비팀이 교회에 도착한다. 나흘 전부터 외우고 있는 주일 설교가 입에 잘 붙는지 혼자서 기도하는 것처럼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 스스로에게 설교하며 선포한다. 나에게 먼저 닿을 주일 설교 속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바꾸고 공동체와 지역사회와 이 도시와 나라를 바꾸는 꿈을 꾸면서 기도하듯 선포한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굳어져 버린 어릴 적 믿음이 꿈틀꿈틀 살아서 피어나도록, 얼어있는 마음 구석구석을 두드려 내 온 존재를 깨워주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풀 향기 가득한 남반구 이른 여름의 주일 아침을 연다. 키리에 엘레이손(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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