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은혜입은 종이 드리는 마지막 인사

2013년 7월 28일, 뉴질랜드의 겨울! 홀로 11시간 비행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이민 목회! 상쾌한 공기를 호흡하며 다짐했습니다. “감사함으로 기쁨이 넘치게 하리라.”

해외 경험이 없는 48살 중년의 목회자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 지 그 때는 몰랐습니다. 짐이 도착하지 않은 텅 빈 집에 냉기가 도는 침대에 누워 수많은 밤을 창밖에 보이는 별들을 세었습니다.

이취임 예배 후 한 달 동안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며 첫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천당 아래 뉴질랜드라고 부러워한다지만 안을 들여다보니 눈물과 아픔이 없는 가정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담당목사가 교체될 때마다 성도들은 불안해했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해외 비전교회 담당목사의 임기는 3년이었지만 개척의 때가 지나면서 임기 규정은 사라졌습니다.

임기 3년을 지나 큰아들 덕분에 하나님 은혜로 영주권을 받고 6년을 견뎌내고 마침내 10년 3개월을 정리하는 오늘까지 왔습니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새벽 예배에 갈 때 따라오는 휘영청 밝은 달, 가족들과 함께 산책할 때 길가에 피어 있던 크리스마스 꽃,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매일이 행복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세 번 예배당을 이전했습니다. 밤잠을 설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명기 11장 11~12절)

믿음으로 선포했고 약속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생각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에 넘치도록 채워 주셨습니다. 슬픔의 옷을 벗겨 주시고 기쁨의 띠를 띠게 하셨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감사함으로 기쁨이 넘쳤습니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이 기다리고 있고, 강을 건너면 또 강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10년 목회가 그랬습니다.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을 건너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아내와 함께 바닷가를 거닐며 주께 여쭙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세미한 음성 가운데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저 믿음으로 선포할 뿐 하나님의 행하심은 언제나 옳았습니다. 성도들과 함께하며 가슴 뛰는 소식도 있었고 눈물을 흘리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반복되는 일상이 온다 해도 매일매일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계적인 전염병 확산으로 세상이 고통의 늪에 빠지고 교회가 무너져 갔습니다. 아파하며 낙심한 영혼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강해했습니다.

코로나가 종식되어 갈 때 지친 성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느헤미야서를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질풍노도와 같은 사춘기를 지나 교회는 20대 청년의 때를 맞았습니다. 먼동이 틀 때 쩔룩거리며 걷는 야곱처럼 성도들은 그만큼 성숙해졌고 저 역시 예수님을 더 닮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임하던 날 요한이가 태어났습니다. 요즘 사춘기를 지난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리우는 미숙아로 태어나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맸습니다. 작은 몸으로 큰 수술을 두 번이나 견뎌냈고 지금은 예쁜 소녀가 되었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해 눈물이 마를 날이 없던 자매들이 지금은 다 엄마가 되었습니다.

가슴 시린 장례식도 있었습니다. 죽음 너머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며 인격은 깊어졌고 영혼은 맑아졌습니다. 병을 얻어 두려운 길을 홀로 걸어야 했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울었고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워하며 그 시간을 함께 걸었습니다.

결코 혼자 걸어올 수 없었던 그 길에 착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고지식한 범생이를 목자로 만들어 준 저의 동반자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말씀으로 기경하며 부지런히 SNS라는 나귀에 태워 묵상의 글을 날랐습니다.

넓은 아량과 기다림으로 저를 품어 주시고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섬겨 주신 리더십들도 있습니다. 고단한 몸을 핑계 삼지 않고 손발을 걷어붙이고 영혼들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청소부가 된 성자와 같은 분도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그의 상급은 저보다 클 것임이 분명합니다.

아빠의 열렬한 지지자로 함께 해주었던 자녀들도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일조했습니다. 추억은 시간 속에 멈춰 버렸지만 어느새 그들은 훌쩍 커 성인이 되었습니다. 서원해서 얻은 아들 환, 서원을 갚아 얻은 아들 찬, 하나님이 차고 넘치게 주신 영.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부부에게 뉴질랜드는 모래바람만 부는 황량한 사막이었을 것입니다.

목회자 자녀로서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를 기쁨으로 감당해 주었고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으며 레바논의 백향목에 앉아 노래 부르는 새처럼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 지 모릅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랑이 시작된 거라고 말합니다. 언제부턴가 성도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철이 없을 때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나이를 먹고 보니 모든 것이 다 고맙고 미안하고 죄송스럽습니다.

새문안 교회, 소망교회, 온누리교회와 같은 대형교회에서 겉멋만 잔뜩 들어 뉴질랜드에 왔었습니다. 돌아보면 바보 같은 짓을 참 많이도 했을 텐데 감당해 주고 기다려 준 성도들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지 느껴지기에 요즘은 부탁 하나 드리려 하면 그들의 사정을 헤아리며 한참을 망설이곤 합니다.

지난 10년간 오클랜드에서 만난 목사님들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만난 분들과 달리 한결같이 겸손하고 온유하셨습니다. 왜 다를까? 자문자답하면서 최근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뿌리를 찾아 올라가니 눈물로 기도하며 사랑으로 봉사하신 시니어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계셨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닮아 계십니다. 사역 초기 힘들고 어려울 때 격려해 주신 노회 임원들, 함께 식사하며 아픔을 들어주신 동문들, 아내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신 사모님들, 성숙한 목회자의 본을 보이며 늘 따뜻하게 대해주신 오클랜드 한인목회자협의회 목사님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혜를 이제 새롭게 부임하는 후임목사에게 베풀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뉴질랜드 교회를 위해 한국에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