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음식에 대한 지혜 . 참된 만족

음식에 대한 지혜

잠언 23:3, 6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Do not crave his delicacies, for that food is deceptive. Do not eat the food of a stingy man, do not crave his delicacies;”

삶의 필수 3요소인 의(衣), 식(食), 주(住)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음식이다. 집과 옷은 없어도 생명 유지가 가능하지만, 음식을 먹지 못하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음식은 생존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면서 생명을 단축하거나 연장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100세 이상 장수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습관 중 하나가 바로 ‘식습관’이다. 신선하고 몸에 맞는 음식을 제때에 소식(小食)하는 것이다.

반면 세계적인 의학 저널 ‘랜싯’에서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흡연보다 더 큰 사망의 원인이며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망의 5분의 1이 음식과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음식으로 고치지 못한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요리사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 예찬에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내게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드리죠.”

당시에는 신분에 따라 먹는 것이 뻔히 정해져 있었다. 쇠고기는 고위층 간부와 사업가들이나 먹을 수 있었고 치즈와 과일, 음료도 계급에 따라 달랐다. 더불어 음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공부도 필요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먹는 음식은 신분과 교양의 수준 등을 유추해 낼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지금은 먹는 음식으로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사람의 경제 수준, 건강 상태, 성품, 생활 습관 등 다양한 정보를 유추해 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본문도 음식과 관련된 지혜를 다루고 있다. 요리사 사바랭과 달리 기자는 음식의 관계적인 면과 영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누구와 음식을 먹는 지와 음식 안에 담긴 의도와 마음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잠언 기자는 음식 안에 담겨있는 마음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지혜라 말한다.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먹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음식을 먹으면,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악한 의도로 마련된 식사 자리의 음식을 먹으면, 그 악함을 수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고 고급스러운 음식일지라도 속이는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먹는지도 신경 써야 하지만, 함께 먹는 대상과 그 의도에 대해서도 주의해 살펴야 한다.

사도행전 2장 46절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그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인생과 식탁의 주인 되셔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동체 안에 머물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가정, 직장, 학교 그리고 교회가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이 되기를 축복한다.

참된 만족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마음에 얼굴을 찌푸리며 살고 있는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면 얼굴에는 평안이, 입술에는 감사와 찬양이 머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근심과 불평이 가득할 것이다.

인생이 만족스럽고 불만족스러운지는 외적 요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경제적 수준, 교육환경, 가정의 문화 등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외적 요소는 절대적이지 않다.

만족과 불만족의 여부는 궁극적으로 내적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사람도 끊임없는 욕망과 결핍 속에 살 수 있고, 반대로 가진 것은 없지만 삶 자체에 만족하며 살기도 한다. 결국 마음과 믿음, 곧 내면의 문제다.

오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목자, 자신을 그의 양이라 표현한다. 2절부터 그 목자와 양의 상호관계를 설명한다. 목자는 양을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한다. 내면을 소생시키고 의의 길로 이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한다. 원수의 목전에서 식탁을 차리고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

이는 전적으로 목자가 양에게 베푸는 은혜다. 양이 하는 것은 목자를 따르고 목자되신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사는 것 뿐이다.

참된 만족이란 하나님과 은혜와 사랑의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임을 배운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있기에 만족할 수 있고, 그 은혜에 사랑으로 반응할 때 만족감은 모든 부족함을 삼켜버린다. 이는 늘 쌍방이어야 한다.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하고 변함이 없다. 우리가 그 은혜에 사랑으로 반응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만족의 “족”은 우리가 잘 아는 발 족(足)이다. 이 한자는 명사로는 발을 의미하지만, 형용사로는 ‘채우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우리의 만족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발이라고 볼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발로 주님을 따라갔고 주님과 동행했으며 주님 집에 영원히 거하였다. 온전한 사랑과 신뢰로 주를 따랐고 가까이했다. 이것이 그의 만족의 비결이었다.

이 시대 많은 이들이 인생의 불만족을 호소한다. 이의 본질적인 원인은 목자 되신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이다. 자신이 가는 길이 불확실하고 홀로 외로이 걷는 것 같으며 결국 허무함으로 향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선한 목자 되신 주께서 인도하시고 소생시키시며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실 줄 믿는다. 그 변함없는 은혜를 믿음으로 수용하고 사랑과 순종으로 반응하길 원한다. 그렇게 주님을 따라, 주와 함께, 주 안에서 거할 때 모든 부족함은 사라지고 참된 만족으로 충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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