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의 턱 밑에 달라붙어 사는 빨판상어가 있다. 빨판상어는 상어가 잡아먹다가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다. 상어가 위험에 처하면 빨판상어는 도망간다. 빨판상어는 상어에 더부살이한다. 반대로 상어에 기생하여 피를 빨아 먹는 장어도 있다.
공생과 기생은 자연의 순환 고리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도 공생보다 기생이 기승을 부린다. 스스로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달라붙어 사는 사람이 있다. 겉으로는 공생을 말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철저한 기생이다.
이는 안 주면 안 주었지! 떼어먹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거저 달라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라고 하지만, 결코 꾼 것을 되갚겠다는 생각이 없이 자신의 필요만을 줄기차게 달라는 사람이 있다.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스러운 태도를 가진 뻔뻔함으로 창피와 수치를 모른다.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끈질기게 졸라대거나 귀찮게 졸라댄다. 죄로 인한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는 것에 주술적으로, 기복적으로 주문에 가까운 요구를 한다. 원하는 것이 지나치게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다. 이타적인 배려와 섬김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정말,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종교인이 넘친다”라고 누가복음 23장 34절에 말하고 있다. 기도하는 것을 보면 이기적인 유전자로“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는 것을 알게 된다. 말을 많이 해야 이루어질 줄 생각하는 자가 있다”라고 마태복음 6장 7절에 쓰여 있다.
자신과의 소통과 안 되고 사람과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여 불통의 사람이 된다. 이는 전형적인‘꼰대’로 사람과의 관계는 불통으로 소통하지 못한다.
공유나 공감 능력이 없는 자가 나타나 이곳저곳을 다니며 공생에 관해 말하고 다닌다. 수치가 드러나니 관계를 끊는다. 그동안에 얻은 관계는 싹 무시한다. 배신하고 더 배반하고 있다.
기생은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이러한 맨얼굴을 가진 자가 교회에도 들어와 기생하면서 잘 먹고 잘살고 있다. 과연 기생에서 벗어나 공생을 넘어 상생으로 갈 수 있을까?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연말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정리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이제 셈을 할 때가 됐다.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일에 도전하는 당당함으로 지나온 낯익은 기생에서 낯선 공생을 넘어 상생하라. 이제 남은 한 해에 기생하는 일과 상생하는 일을 잘 살펴보라.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