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수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내용을 완전히 짜고 짜서 액기스로 만들어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들을 영원한 형벌로부터 살리시기 위해 취하신 방법, 그 사랑의 결정판이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셔서 인간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대속의 사랑을 보이신 것입니다.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면 예수님께서 고문당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고문이 얼마나 끔찍한 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을 고문하는 장면은 ‘인간이 저 정도로 악할 수 있나’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채찍에 쇠로 된 돌기들이 달려서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실 때 돌기들이 살에 박히고 채찍을 당길 때에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떨어져 나간 살 때문에 핏줄이 터져서 피가 사방으로 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고문당하신 그 바닥은 피로 온통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참혹한 고문을 허락하셨을까? 고문없이 십자가에 못 박게 할 수는 없었나’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된다면 그냥 못 박으시지 왜 예수님의 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고초를 겪게 만드셨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어기거나 범죄함으로 반드시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로써 흠이 전혀 없는 송아지나 양, 염소, 비둘기를 제물로 바쳐야 했는데, 희생되어져야 하는 제물은 그냥 드려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물은 반드시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하며 피는 제단 사방에 뿌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리는 규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속의 제물로 희생되어져야 했을 때에 그냥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라 살가죽이 찢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서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패였고, 그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위해서 뿌려져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모인 대제사장을 비롯한 무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과 그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한 죄인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을 채찍질하며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니다, 너희가 채찍질하며 피 흘리게 하는 이 자가 바로 내가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 너희에게 보낸 어린양이다’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너희가 말하는 이 극악무도한 죄인의 피가 너희를 살리는 어린양의 피다’라고 예수님께서 처참하게 피를 흘리는 것을 통해서 그 현장에 있는 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은 하나님께 속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함이 사랑의 시작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자기가 아끼는 것을 주기도 하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줍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따뜻한 사랑의 말로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뭔가 필요를 느낄 때마다 그 필요를 채워 줍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잘 표현할 줄 압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잘 표현할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툽니다. 또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잘못된 방법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경험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잘못된 방법으로 그 사랑이 전해지거나 사랑할 줄 모르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다른 것이 차 있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교만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사랑 대신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내 마음속에 속이는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사랑 대신에 다른 사람을 속이게 됩니다. 내 마음속에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으면 그리스도의 사랑 대신에 다른 사람을 낮게 여깁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 대신에 다른 마음들이 있다면 주님 앞에 회개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회개함으로 다 비워 낼 때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채워질 줄 믿습니다. 다른 것을 비우지 않고는 절대 그리스도의 사랑을 채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차고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갑니다.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 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내 안에 다른 것들로 가득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잘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의 일화를 소개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1948년 10월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에 중학생이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반란군에게 죽임을 당하여 잃게 되었습니다.
당시 계엄군에 의하여 살해범이 체포되었지만, 오히려 손양원 목사님은 그에 대한 구명 요구를 통해 그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의 양아들로 삼아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4: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유한한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 가족이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으며 이미 떠난 가족이나 친구, 이웃 등을 생각하며 더 사랑하지 못했음에 대해 안타까워합니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이 넘쳐흘러서 우리의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며,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므로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는 시간을 갖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