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 경험한 감사의 능력
감사에는 많은 기적과 능력이 경험됨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감사를 통해서 기적을 경험한 사건 중의 하나가 바로 여호사밧 왕이 경험한 감사의 능력입니다. 역대하 20장 1절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에서 알 수 있듯이 역대하 20장은 여호사밧 왕의 위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여호사밧은 적군들이 이미 자기의 영토에 침입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습니다(2절). 그들이 어떤 구실로 여호사밧과 싸우려 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만 3절에 보면 여호사밧은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를 하였습니다.
위기에 처한 여호사밧은 자신을 도우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고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목은 20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오직 여호와만을 신뢰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는 거룩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 후 여호사밧이 처한 행동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이상한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21절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여호사밧 왕은 전쟁을 하러 떠나가는 군대 앞에서 완전무장한 군대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가대를 앞세우고 저들에게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찬양을 하게 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에 드리는 감사의 고백이 아닙니다. 적군과 전쟁을 치루러 가는 군대 앞에서 ‘감사’를 외치게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이스라엘 백성이 손 하나 대지 않고 대승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암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대하 20:22). 이처럼 두려운 전쟁 앞에서도 감사를 앞세우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기적을 경험한 사건이 바로 여호사밧이 경험한 감사의 능력입니다.
굶주림 중에 경험한 감사의 능력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 또한 감사가 앞세워진 능력입니다. 오병이어의 감사는 사복음에 다 나오는 감사입니다(마 14:13-2; 막 6:30-44; 눅 9:10-17; 요 6:1-4). 벳세다 들녘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무리들은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천국 복음의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이때 굶주림 가운데 있는 무리들을 보시면서 저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라고 제자들에게 말하지만 저들에게 줄만한 음식은 없었고 단지 소년이 가지고 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전부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마 14:19-20).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예수께서는 문자 그대로 “축사하셨습니다”. 공관복음의 다른 병행구에서도 역시 이와 똑같은 동사가 발견됩니다(막 6:41; 눅 9:16).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감사를 드린 후에”(요 6:11)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의 “축사하였다”라는 말은 “감사하다”라는 의미이므로 그렇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NIV 영어 성경에서도 “축사하시고”를 보면 “He gave thanks”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의 상황을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장정만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다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는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됨을 예수님께서 보여주고 계시며 감사를 직접 언급하시므로 많은 굶주림 가운데 있는 자들 앞에서 감사의 능력을 표현하시었습니다.
죽은 자로 인한 감사의 능력
성경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감사의 능력 가운데 죽은 자를 통한 감사의 능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병들어 죽은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병들어 죽은 나사로는 이미 장사 된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시기 전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가 아름다웠던 까닭은 그 신실성과 단순성과 진지성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심을 받은 분으로 기도했습니다. 즉 그는 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중보자로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 중보자로서 하는 기도의 내용은 다름 아닌 감사의 기도였고 무덤에 장사 된지 나흘이나 되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무덤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 하나이다”(요 11:41).
이 감사에 대해서 알버트 반즈(Albert Barnes)는 예수가 사람들 앞에서 부활의 능력을 보여 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됨을 나타내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데에 감사드린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스코트(Scott)나 헨드릭슨(Hendricksen)은 예수가 나사로를 일으키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나사로를 살려 주실 것을 확신하고 감사드렸다고 해석합니다.
개인적으로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질병임을 알고 계시며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믿음의 반응으로 감사를 하나님께 아뢰며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응답을 확신한 감사기도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결과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일의 과정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더불어 그리스도인들이 감사의 능력을 경험하기 위해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시점을 말씀해 주시며 감사기도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교훈하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