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 노숙인, 신체장애인, 정신지체자, 가택연금자, 실직자,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모든 분류가 기억 나진 않지만 오래전 라누이 캐러밴 빌리지에서 처음 만나게 된 사회복지사는 그곳 주민들을 이와 같이 나누어 구분했다. 그들 각자의 상황을 평가해 WINZ을 통해 수당 신청을 도와야 하는 그의 책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가 보여준 구분표(?)는 너무나 객관적이어서 누구든 그 분류의 항목을 듣고 있노라면 그 날카로움에 쉽게 가슴을 베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 이곳은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가난한 노인이, 장애를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장애인이, 범죄자로 낙인 찍힌 출소자가, 그리고 삶의 일부를 술과 마약에 빼앗겨 시간을 잃어버린 우리 이웃이 서로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그들의 간단치 않은 삶의 여정과 정체성이 하나의 물리적 공동체 안에 모아져 있는 곳. 하지만 공동의 삶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140여 가구의 현재가 너무도 선명히 그려지는 그런 곳이다.
그런 그들에게 다가서며 먼저 친구 되기를 소망했던 내게 지금도 생생히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마디가 던져진 건 아마도 그 마을에서 음식을 만들어 나누기 시작한 일 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뒤일 것이다.
“넌 친구가 아니야.”
극심한 불안장애로 주변 이웃들과 다툼이 잦았던 키위 할머니 한 분과의 대화 끝에 내게 던져진 일성이었다. 푸드뱅크에서 내려놓은 음식 중 작은 치즈 한 조각을 서로 가지려고 다툼이 일어난 상황에서 그들을 중재하려 나선 나의 설득에 보인 그녀의 노기 어린 한마디는 이처럼 강한 거절의 뜻을 담고 있었다. 조금 머뭇거리긴 했으나 명료하고 또렷하게 들렸던 목소리였다.
‘친구가 아니라니…’
그간 새벽잠을 설치며 그들을 만나기 위해 달려온 시간에 대해 스스로에게 남겨놓은 유일한 보상이 ‘그들과의 친구되기’ 였음을 그녀가 알았을 리 만무하지만, 그렇게 뱉어내듯 던져진 그 한마디는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그 마을에 대한 나름의 동질성과 새로운 나의 정체성을 간단히 무너뜨리고 말았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들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일 것이다. 단순히 시간을 나누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서로가 나눌 수 있고, 그 나눔은 믿음의 한 계단 한 계단이 쌓여가듯 서로의 신뢰를 완성하는 도구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신뢰는 마침내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생명까지도.
돌이켜 생각 해보면 내 만족을 위해 스스로에게 보상했던 “친구 됨”의 자격은 그렇기에 이토록 쉬운 무너짐이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쩌면 친구됨의 첫발을 내디디면서도 그 길이 가져다 줄 자격을 먼저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섣부른 친구됨의 욕심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과 민중들 사이에서 보이신 우정의 나눔을 통해 다시 한번 더 철저히 부서졌다.
세상으로부터 쏟아진 적의와 비판이 그들의 삶을 위협하던 그 시간, 예수께서는 그들 곁으로 다가가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들이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을 감싸고 쏟아지는 비난을 변호하며 희망의 빛이 되어 그들과 동행했던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해 그 목숨을 바치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는 요한복음의 말씀은 이제 그 친구됨의 마지막 열매를 엿보게 한다.
사랑이 나누어지고 비밀이 나누어지며 기어이 생명까지 나누어지는 그리스도의 친구됨은 우리가 그동안 가볍게 불러왔던 친구의 모습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넌 나의 친구가 아니야.”
그녀가 던져내듯 뱉어낸 이 한마디에 나의 친구됨은 그렇게 그 순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의 명확한 거절은 반대로 이 사역의 본질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나는 아직 그들의 친구가 아니었다. 어쩌면 난 아직 그들의 친구가 될 준비조차 부족했을지 모른다. 그들 삶의 긴 여정 속 잠시의 시간을 스치고 있었던 나는 그들이 경험했을지 모를 참혹한 어린 시절도, 분리의 고통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그저 그런 외지의 이방인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초대가 우리를 하나의 관계 속에 묶을 때 우리는 그가 허락한 새로운 정체성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서로의 고난을 직시하며 시작된 친구됨의 시간 속엔 더 이상 노숙인도 장애인도 그리고 실직자와 범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이 때론 증오가 되어 비난하는 현대의 모든 관계 속에서 우린 오늘 그리스도로부터 초대받은 하나의 정체성을 나누며 내일의 친구됨을 여전히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