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서는 초등학생부터 70대 어르신들까지 영어 공부를 한다. 다양한 국적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영어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와서 공부를 한다.
어느 날 20대 후반의 한 젊은 여성이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러 왔다. 미혼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교회에도 열심히 나오고 신앙생활도 충실히 했다. 몇 달이 흘러 인간적으로 많이 가까워졌을 때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몇 년 전 결혼을 해서 어린 딸이 하나 있는 데 남편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충격이 너무 커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때 누군가 우리 학교를 소개해 주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모든 것을 잊고 안정을 찾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어린 딸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왔다고 했다. 어떻게 이 자매를 도울까 생각하다 우선 딸을 데리고 오도록 했다. 그리고 우리 장학관에 함께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가 학교를 가야 하는데, 유학생 자녀 신분이라서 학비가 매우 비싸다는 것이다. 마침 인근에 크리스천 사립학교가 있어서 교장선생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학비를 많이 할인해 주었다. 그럼에도 이 자매가 감당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우리가 대신 학비를 내주었다. 몇 년간 아픔을 딛고 잘 생활하였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 자매에게서 유방암이 발견되었다. 뉴질랜드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첫째로 외국인에게는 의료비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쌌고, 둘째는 수술을 하려면 이곳에서는 몇 달 혹은 몇 년을 기다려야 했다. 하루속히 한국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합당한 방법이었다.
급히 두 사람의 항공권을 구입해서 한국에서 수술을 받게 했다. 다행히 초기라 수술이 잘 되었고 회복도 빨랐다. 자매가 한국에서 회복하는 동안 집회차 한국에 갔다가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회복이 되어 딸과 함께 다시 뉴질랜드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뒤 다른 지역에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오랜만에 다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벌써 딸아이가 커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우리 곁에는 항상 어려운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도록 하셨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랍비 아키바에게 어떤 철학자가 물었다. “만일 그대의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사랑하신다면, 어째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돌보시지 않는가?” 아키바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할 기회를 우리에게 베푸시기 위하여 가난한 자들을 항상 우리 곁에 있게 하셨다네.”
하나님은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이것은 창조의 목적이요,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평생 해야 할 사명이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시고 존귀하게 사용하신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선교사 아내의 죽음
한때 우리 학교에 선교사 몇 가정이 와서 영어 공부를 했다. 어려운 형편이라 모두 장학금을 주어 무료로 공부하도록 했다. 한번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본인들의 어려운 형편을 이야기했다.
어느 선교단체에서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데 돈이 없어 치약도 이 집 저 집 빌려서 사용한다고 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큰돈은 아니지만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약간의 돈을 후원하곤 했다.
영어 과정을 마치고 각자 사역을 위해 떠나갔다. 몇 년이 흘러 우연히 어느 집사님으로부터 이곳에서 공부했던 한 선교사님의 사정을 듣게 되었다. 그분은 이곳에서 지난 몇 년간 열심히 교인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몸이 좋지않아 진료를 받았는데 췌장암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 사역을 접고 급히 한국에 치료차 나가 있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췌장암은 아주 치료가 어려운 암이다. 제일 염려가 된 것은 치료와 경제적인 문제였다. 이곳에서도 그렇게 어려웠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병원비를 감당할까 염려가 되었다. 나하고 별다른 친분이 없었기에 여러 경로를 통해서 어렵게 연락처를 알아냈다.
연락을 해보니 염려대로 수술은 했으나 완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남편 선교사 혼자서 늘 병상의 아내를 돌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와 물질적인 후원뿐이었다. 수시로 연락하며 위로하고 병원비를 보냈다. 한국에 집회가 있을 때면 꼭 선교사님을 경치가 좋은 곳으로 불러 함께 식사를 하며 바람을 쐬곤 했다.
투병 기간은 길었다. 1년이 넘도록 병원 생활을 했으나 암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조금씩 후원했던 병원비도 어느새 큰 액수가 되었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사모님은 젊은 나이에 소천하셨다.
아내가 소천한 뒤 한동안 선교사님은 많이 힘들어했다. 이곳저곳 선교지를 다니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 뒤로도 한국을 방문 할때면 가끔 만나서 위로를 했다. 자주 서로 연락은 하지 못하지만 종종 카톡으로 안부를 전하며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가 최근에 반가운 소식을 전해 왔다. 좋은 믿음의 자매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고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직 젊은 나이에 해야 할 사역이 많을 텐데 하나님께서 동역자를 보내 주셔서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을 줄 안다.
축복의 메시지를 보내고 앞으로 더 아름다운 사역을 감당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원치 않는 아픔이 올 때가 있다. 아픔은 함께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함께 나누면 배로 늘어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형제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하셨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주님께서도 죄인된 우리가 받을 형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시고 친히 종의 몸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섬기셨다.
사랑이란 함께 하는 것이다. 기쁨도 아픔도 슬픔도 행복도 함께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할 때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