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말을 아끼는 지혜

잠언 17:27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

“A man of knowledge uses words with restraint, and a man of understanding is even-tempered.”

말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 잘못해 천 냥 빚을 지기도 한다. 특히 요즘같이 우리의 말이 기록으로 남고 또는 녹음되는 사회 속에선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한 번의 말실수로 곤욕을 겪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경 곳곳에서 이 말의 능력과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야고보는 말을 하는 기관인 혀에 대해 무척 비관적으로 말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야고보서 3:8). 그는 이어서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 우리 혀에도 재갈을 물릴 것을 권한다.

수년 전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유행어가 있다. “생각, 생각, 생각 좀 하고 말해.” 경솔하게 말부터 내뱉는 사람을 비꼬는 뼈 있는 말이었다. 이 유행어를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 삶에 적용해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 생각해 보자. 잠언 기자(잠15:28)는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실제 지혜롭기로 유명한 유대인들은 대대로 이를 가르치고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말하기 전에 세 황금 문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김기석 목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 번째 문은 “내 말이 참말인가?” 하는 질문이다. 거짓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내가 하는 말은 참되고 진실된 말일까? 자문하고 분별해야 한다. 두 번째 문은 “꼭 필요한 말인가?”라는 질문이다. 내가 하는 말이 그냥 증발해 버릴 무의미한 말인가, 아니면 사람의 마음에 안착해 열매 맺을 말일인가를 고민해야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마지막 문은 “친절한 말인가”이다. 내 말이 상대방에게 따뜻하게 전달되고 또 도움이 되는 말인가를 앞서 생각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로새서 4:6).

이 세 문을 지나다 보면 내가 하는 말의 상당 부분 걸러질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 채 거짓되고 불필요하고 불친절한 말을 많이 한다. 이를 실천하면, 주변 사람들이 답답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문들을 통과하는 연습을 지속한다면, 우리의 말에는 힘과 생명이 실릴 것이다. 듣는 이에게 감동을 주고 변화를 불러오는 역사를 일으킬 것이다.

오늘 잠언은 말을 아낄 것을 권한다. 강하고 귀한 것일수록 노출하지 않는 법이다. 주께서 주신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이 말의 권능을 지혜롭게 사용하길 바란다.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는 인생
시편 17:14-15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O LORD, by your hand save me from such men, from men of this world whose reward is in this life. You still the hunger of those you cherish; their sons have plenty, and they store up wealth for their children. And I–in righteousness I will see your face; when I awake, I will be satisfied with seeing your likeness.”

자신에게 다음 세 질문을 던져보라. 1) 잠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을 했는가? 2)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무엇인가? 3) 입으로 한 첫 말은 무엇인가?
예상컨대 기억을 더듬어 보지 않는 이상 쉽게 답할 질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도 중요한 연유는 잠에서 깬 직후 하는 생각과 언행은 현재의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기자는 세상에 속한 사람의 삶과 마음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은 불의로 가득하다. 그들의 삶은 명예, 재물, 자녀 등 땅 위에 있는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들의 만족과 불만족은 소유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그러므로 이들이 자고 일어난 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자신의 소유는 무사한지, 자녀들은 건강한지, 미래는 안전한지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최우선 순위에 있거나 삶의 목적과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 믿지 않는 이들도 할 수 있고 자연스레 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은 이와 무엇이 다른가? 기자는 아침에 깰 때 “주의 형상으로 만족한다”고 고백한다.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다.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사실 기자의 형편은 그리 평안하지 못했다.

17편 서두를 보면, 그는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고 울부짖고 있다. 억울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하나님에 대한 정절을 지켰고, 주의 기이한 사랑을 소망했다. 밤새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날개 그늘 아래 감추시며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다렸다. 이 고백은 그의 믿음의 결과요 열매였다.

소유와 자녀, 그리고 미래가 무의미한 죽음의 골짜기에서 그가 붙든 것은 하나님이었고, 이처럼 아름다운 고백이 가능했던 이유는 밤새 자신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 주신 주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깨자마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기에 할 수 있는 고백이다. 밤이나 낮이나 밖으로나 안으로나 그가 사모하고 의지한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었다.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생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며 그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만족하는 다윗과 같은 영성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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