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무거운 짐 내려 놓다

마음의 무거운 짐은 항상 나를 괴롭혔다. 열심히 살면 열심히 사는 대로, 적당히 살면 적당히 사는 대로 무거운 짐에 눌려 있었다. 어쩌면 열심히 살 때가 더 초조하고 불안하고 조급했던 것 같다. 교회가 부흥하고 양적으로 팽창했을 때 그다음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더 신선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 스스로를 옥죄었다.

더 깨끗해야 하고, 더 겸손해야 하고, 더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어려웠다. 성도들이 늘어날수록 그만한 크기의 염려 걱정이 커졌고, 뉴질랜드 걱정, 조국에 대한 걱정, 북한과 미전도 종족에 대한 걱정, 세계 복음화 걱정 등등 마음의 짐은 점점 더 커졌다.

기도할 때는 가벼워졌지만, 기도 후의 근원을 알 수 없는 묵직한 염려는 놓아지지 않았다. 평생을 시달렸다. 하지만, 최근에 아주 작은 말씀 한 구절로부터 근원적인 짐이 쪼개지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태복음 25장의 “지극히 적은 일에 충성,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충성하면 된다.”는 말씀이 나를 해방시켰다.

어머님에 대한 마음의 짐을 벗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아킬레스건이다. ‘어머니!’라는 한 단어가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돈으로도 갚을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나 역시 한없는 사랑의 빚진 자이다. 이민 24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돌보아 드리지 못했다. 큰마음 먹고 10개월 동안 돈을 모아서 한국에 들어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동안 누이 3명이 어머니를 돌봐 드렸다. 홀로된 막내 여동생은 아예 어머님 집으로 들어가서 함께 살고 있다. 기억이 점차 약해지고 2번의 뇌경색으로 겨우 걷고 계신 어머니는 내가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셨다. 그 긴 세월 나 없이도 어머니는 누이들과 더불어 살고 계신다. 아들에게 삶의 전부를 바치시던 어머니는 이제 아들 없이도 살고 계신다. 살면 살아지는 것이다.

이민 생활이 길어지니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같이 모시고 산다고 완벽할 수도 없고, 떨어져 산다고 못살지도 않는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뉴질랜드로 모실 수도 없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모순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머니 살아 계시는 동안 자주 한국에 나가서 어머니와 살아드리는 일이다. 아들의 목회를 위해서 뜨겁게 기도하고 교회를 섬기셨던 어머니의 인생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 드린다.

한국교회에 대한 마음의 짐을 내려 놓다
한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4년을 사역했고, 뉴질랜드에 와서 21년 목회를 했다. 뉴질랜드에 있는 내내 조국에 대한 염려, 한국교회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최근에 교세가 줄어들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다음 세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 때문에 무슨 빚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생각을 바꾸었다. 부흥이 시들어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온몸과 마음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43살의 여목사는 개척의 시대는 끝났다고 절망하는 현실 속에서도 테헤란로 삼성동 한복판에 개척 2년 만에 3,000명의 성도가 모이는 역사를 일구어냈다. 그 역사의 현장에 우리 부부도 참여해 보았다.

한국교회가 성경에도 없는 틀과 형식을 만들어 예배가 화석화되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영적 자유함이 흐르는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찬양은 살아 있고, 찬양과 더불어 드려지는 퍼포먼스는 예술을 뛰어넘는 경배 행위이고, 차분하고 분석적이며 성경적인 설교를 한 후에 드리는 설교자의 기도 인도는 사자 후를 토해 냈다. 그들의 살아있는 예배는 기성세대의 통념을 뚫어내고 있다.

또한 수많은 기독교 석학들이 등장했고, 논리적이고 영감 넘치는 성경 교육은 여기 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젊은 날에 기독교는 사회 저층에서, 빈곤한 생활 속에서, 빈약한 설교와 열정만으로 기독교 부흥을 일구어냈는데 지금은 더 높은 차원의 기독교 운동이 한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염려할 이유가 없다. 염려 대신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올바른 방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도로 응원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모든 모순과 불합리와 극단을 돌파하고 세계 복음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기대를 하며 염려 내려놓고 왔다.

키위 교회에 대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다
현재 내가 속한 Hope Presbyterian Church는 예배의 틀이 없다. 예배 안에는 영적 자유함이 흐른다. 성도들은 교회 올 때 만면의 미소를 지으면서 친정집에 놀러 오는 분위기다. 그래서 교회는 매주 부흥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뉴질랜드 부흥을 위해서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들 한다. 무엇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과 이들의 동반자로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는 통로를 다양하게 열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한국 목사님은 부흥단을 조직해서 뉴질랜드의 시골교회들을 순회하면서 찬양과 교육과 부흥회를 인도하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만의 울타리를 깨고 현지 교회와 함께하는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통로를 여는 열린 마음과 시도가 필요하다.

뉴질랜드 교회에 대한 염려 대신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틈은 생기고, 함께 뜨거운 예배를 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뉴질랜드의 죽어가는 교회만 보면서 염려하지 말고, 뉴질랜드를 살리는 현지인 교회와 성도들을 만나고 교제하고 함께 더불어 뉴질랜드 부흥의 틈을 열어가자.

내가 할 수 있는 적은 일, 작은 자에게 충성하면 부흥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민 목회하면서, 이민자들을 도와야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또한 뉴질랜드 교회가 약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교회가 무언가를 공헌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감이 있었다. 마음의 부담감만 가졌을 뿐, 언어 때문에 안되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힘들다는 생각에 힘겨웠다.

그런데 지금 보니 키위 교회나 이민자 교회는 죽어가는 교회는 죽어 가고 살아나는 교회는 살아난다. 죽어가는 교회만 보면 해답이 없다. 하지만 살아서 펄펄 뛰는 교회들도 많다. 안되는 시대에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된다.

기독교 부흥이 보장된 상태에서 일어난 적이 있는가? 모두가 안된다. 불가능하다고 하는 상황 속에서 주의 능력으로 세계 곳곳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시작은 이름 없는 곳, 이름 없는 사람, 이름 없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자. 염려 대신에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적은 일, 내가 돌볼 수 있는 작은 자 한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는 일에 충성하자. 그러면 그것이 불이 되고 씨가 되어 부흥의 불길을 일으킬 것이라 믿는다. 하여, 모든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는다. 주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실 일을 앙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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