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불편함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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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4: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Where there are no oxen, the manger is empty, but from the strength of an ox comes an abundant harvest.

필자는 성격상 어지럽고 지저분한 것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자녀들에게 아빠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청소하자”로 대답할 정도다. 끊임없이 어지럽히는 아이들, 끊임없이 치우는 부모. 자녀를 둔 부모라면 다들 이해할 것이다.

이제는 자녀들이 조금 커서 때가 되면 알아서 정리 정돈을 하지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집을 치우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지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외쳤던 말씀이 바로 오늘의 잠언 말씀이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

자녀들이 어지럽힌 것을 치우는 것이 불편하고 피곤하지만, 그들에게서 오는 행복은 그와 비교할 수 없다. 이는 인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참된 행복을 주는 것은 대부분 불편함을 동반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신앙이다.

신앙이 없으면 삶은 좀 더 편할 수 있다. 교회에 쏟는 시간, 마음, 돈을 절약하거나 다른 곳에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구약시대의 신앙인들은 더 그랬을 것이다. 수백 개가 넘는 율법과 제사법들을 성실히 따르다 보면, 그들의 몸은 절대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상당수가 우상을 섬기길 선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상을 섬기는 일은 매우 쉽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불편하게 느끼는 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이 생명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 공부나 기도 모임이 있을 때, 참여하지 않고 쉬고 싶은 충동이 크게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잠시의 불편함을 이기고 모임에 나가면, 평소보다 훨씬 더 큰 은혜를 받는 경우가 많다. 어떤 영적 또는 심리적 원리가 배경에 깔려 있는지는 모르지만, 필자의 경험상 늘 그래왔다.

신앙생활 중 불편을 불러오는 또 다른 요인 중 하나는 교회 지체들이다. 많은 이들이 예수는 좋지만, 교인이 싫어서 교회에 소속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교회만큼 아슬아슬한 관계의 줄타기를 하는 공동체가 있을까? 그토록 힘든 용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이나 해야 하고 사랑하고 포용하고 동시에 진리로 견책하고 권고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이 있고 온갖 잡음이 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성도들이 있어야 수확이 가능하다.

그 외에도 인생에 불편함의 원인이 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에서 오는 불쾌감은 잠시 접어두고, 그것들이 주는 유익을 생각해 보길 권한다. 배우자, 자녀, 일, 공부, 신앙, 봉사, 용서와 같이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 평안과 행복을 주는 것들 말이다.

심지어 고통마저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겐 유익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딤전4:4)을 기억하며 감사로 충만한 하루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하나님, 선의 근원
시편 14:1-2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The fool says in his heart, “There is no God.” They are corrupt, their deeds are vile; there is no one who does good. The LORD looks down from heaven on the sons of men to see if there are any who understand, any who seek God.

창조와 진화를 주제로 한 논쟁은 근현대사의 중요한 논쟁 중 하나다. 이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논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가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창조의 편에 선 자들이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진화론의 약점이 있다. 바로 인간의 도덕성의 근거다.

창조론자는 인간의 도덕성의 근거를 창조주 하나님에게 둔다. 하나님은 의로운 존재이며 인간은 의로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라는 진리가 도덕성의 기초다. 하지만 진화론자의 측면에서 볼 때, 미생물로부터 우연히 우월하게 진화된 인간에겐 도덕성을 기대하거나 강요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약육강식의 원리 위에 형성된 생태계에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다.

오늘날 진화론은 우주와 생명의 근원에 대해 가장 과학적이고 세련된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시에 사회의 도덕과 윤리의 기준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 도덕이나 윤리에 매일 필요가 없는 연유에서다.

과학과 기술은 신속하게 발전하고 인간에 대한 정보와 고찰은 방대해지고 있지만 전염병, 전쟁, 기후의 재앙 앞에서 인간의 비도덕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은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하다고 규정한다. 하나님이 없으면 선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 그 자체이다. 유일무이하게 선한 존재이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겐 절망적인 선고를 내리셨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 아, 얼마나 절망적인 소식인가? 그러나 긍휼의 하나님은 늘 그렇듯 소망을 남겨두셨다.

3절을 보자. ”하나님께서 주를 찾는 자가 있는지 굽어살피신다.” 부패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 선으로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하셨다.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매사에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뜻을 물으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기독교적이며 무신론적 사상에 젖은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이 안에서 치우치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으며 선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주님을 간절히 찾는 길뿐임을 기억하고 후대에 반드시 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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