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중부에서 사역하는 동안 가까이 교제하던 가정 중에 후에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목회하는 젊은 베트남 부부가 있다. 이 부부와의 만남은 함께 동역하는 CCC 간사가 우리에게 영어회화를 통해 교회 학생들을 섬기고 싶다는 꽝목사와 짐사모의 사연을 소개해 주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한 주에 한 번 우리 집에서 한국 음식과 베트남 음식을 서로 나누며 교제하였다. 이들 베트남 목회자 부부가 사역하는 지역은 전통적인 베트남 시골 마을로 미신과 토속 불교, 그리고 조상신을 섬기는 공동체로 교회에 대한 박해가 유독 심한 지역이다.
꽝 목사의 부친은 집안에서 처음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내쫓겨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낯선 곳에 터를 잡고 가정을 이뤄 믿음의 유업을 이어 아들이 목사가 되었고 자신들 집 2층을 교회로 개조하여 목회하고 있다. 아내되는 짐사모 가정도 큰오빠는 신학 공부 중이며 가족 모두 신실한 믿음의 배경을 가진 자매이다. 꽝목사는 어려운 교회의 형편과 경제적 자립을 위해 쌀농사와 함께 염소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다.
처음 꽝목사를 만났을 때 아무래도 뙤약볕 아래 농사를 짓다 보니 얼굴은 그을러 구릿빛이지만 베트남 사람으론 큰 키와 운동선수처럼 날렵하고 다부진 체격에 선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꽝목사는 방과 후 놀이 시설이 마땅치 않은 마을 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전도하고 있다. 교회 교인들은 꽝목사처럼 염소나 거위 등 가축을 기르거나 농사를 짓는 가정도 있지만 대다수의 교인들은 산에서 벤 나무들을 마을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종종 이들 부부와 만나면서도 딱히 도움을 주지 못하다가 2021년 중반 뉴질랜드 크리스천 라이프와 다니엘 선교회가 해외 선교지를 돕는 프로젝트에 선정해 주어 꽝목사 교인 가운데 형편이 어려운 2가정에 염소를 구입하여 지원할 수 있었다. 금전적인 지원은 자립의 길을 열어 줄 수 없어 고심 끝에 어미 염소를 구입하게 되었다. 이미 염소를 키우고 있는 꽝목사가 사육 지도를 해 줄 수 있어 감사했다.
이후 그 가정들을 방문할 수 있었는데 염소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출산한 지 1년도 안 된 한 가정은 나무판자로 듬성듬성 지은 집에서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해 부석한 몸으로 어린 아기와 변변한 살림살이도 없이 사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얼마 전에는 그동안 온 가족의 발이 되어준 낡은 오토바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 교회를 못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미국 뉴저지에서 목회하는 동기 목사와 소식을 나누게 되었고 필요한 것을 물어 이 가정의 어려움을 전하였다. 그리고 친구 목사 교회의 후원으로 필요한 오토바이를 구입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젊은 부부가 눈물 흘리며 감사해하는 소식과 사진을 꽝목사 사모를 통해 전달받고 함께 감사를 드렸다.
최근 들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은 이제 하노이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후에와 같은 중소 도시에서도 벤츠와 같은 고급 차량이 다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시골 곳곳에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가정들을 여전히 만나게 된다.
후에에 있을 때는 한인 목회자나 선교사들을 만나 교제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하노이에서는 그런 만남을 종종 갖게 된다. 뉴질랜드 배경이 있는 우리에게는 자연스레 베트남의 특징들이 보이곤 한다.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아가는 교민들의 가장 큰 고충은 안정적 체류를 위한 비자 문제 해결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목회자들의 경우 필요에 따라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지만 이곳 베트남에서는 20년이 넘은 사역자들도 여전히 비자 취득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목회자, 특히 선교사들은 장기 체류 비자를 받는 것이 용이치 않다.
설령 종교 비자를 받는다 하더라도 1년 이하로, 또 부부도 따로 비자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며 매번 적지 않은 비용을 비자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또 하나는 외국인 명의로 건물 구입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교회의 경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한인교회 대부분은 비싼 월세를 지불하며 교회 시설을 유지하는데 이 금액이 예상을 초월한다. 몇 년 치 월세로 건물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이다.
또 하나, 베트남 한인교회의 다른 점은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이 스스로 찾아오기 힘들다는 점이다. 베트남은 대중교통 발달이 열악하다. 그렇다고 매번 택시를 이용할 수도 없어서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만 한인들이 현지인처럼 오토바이 운행을 하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무질서하고 원칙없는 운전을 하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를 겪게 되고 그러다 보면 몸을 사리게 된다. 연세가 있는 교인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자가용을 운행하기에는 차량 구입비가 뉴질랜드보다 2배 이상 비싸다. 이유는 해외에서 차량을 수입하다 보니 세금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차량값만큼 지불해야 하는 현실이다. 어렵게 차량을 소유해도 직접 운전하다 사고가 나면 외국인들은 편파적인 대우를 겪다 보면 차량 유지를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베트남에 있는 한인 교회들은 예배 시간마다 임대한 셔틀 차량을 운행해야 하고 이것은 과다한 지출로 이어지는 난감한 현실이다. 사정이 생겨 차량 운행을 하지 못한 주일에는 교인 절반 이상이 나오지 않은 적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지난주 우리는 소속되어 있는 기성 교단 선교부로부터 선교사 사역 연장 신청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현재 우리 부부의 신분은 ‘디아스포라 협력 선교사’이다. 해외에서 장기 목회하는 사역자 중 자비량으로 사역할 수 있는 목회자들을 교단 선교국장의 추천을 통해 선교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선교사로서 협력하도록 만들어진 제도이다.
우리는 2년마다 선교 사역 보고와 함께 다음 기간 사역 계획서를 제출하고 교단 선교부로부터 재연장을 받는다. 교단 선교사이지만 선교부의 재정적 후원을 따로 받지 않고 선교사로서 신분만 인정받는 구조이다.
우리는 뉴질랜드에서 사역하는 20년 동안은 선교사 신분이 아니었다. 2016년 교단 선교국장의 추천으로 ‘디아스포라 협력 선교사’가 되었고 마음속에 늘 선교사로서의 부담을 가지고 뉴질랜드에서 디아스포라 협력 선교사로서 목회해 오던 중 지금은 인도차이나 베트남 땅에 오게 되었고 몇 가지 사역 방향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그중 하나는 장기간 베트남에서 사역을 감당해 온 기성 선교사들의 사역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협력 선교사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 기존 선교사들이 정착하기 어려운 곳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다 보니 한인 교민이 적고 현지 교회 중에서도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게 되었고 베트남 중부 도시 후에를 사역지로 정착하게 되었다.
베트남 대도시에는 한국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까닭에 한국인들의 이주가 많아졌고 호치민과 하노이 그리고 다낭과 같은 대도시에는 교민들이 많아 한인교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외국 선교사들에게는 현지인 복음전도가 여전히 제한적이어서 대도시를 벗어나면 베트남 현지인들도 교회 개척에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 개척보다는 영어와 한국어 교육을 통한 사역으로 현지 대학생들을 접촉하여 제자화 사역을 해오고 있다. 젊은이 사역을 위해 후에의 유일한 베트남인 복음주의 교회에서 만난 CCC 선교단체 리더와 협력하여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다. 또한 후에시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하는 동안 지난 30년 목양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트남 목회자들을 코칭하며 후원하고 있다.
우리 부부의 바램 중 하나는 뉴질랜드와 호주에 있는 선교 자원을 동력화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아직 출발 선상에 있는 늦깎이 선교사이지만 선교지 현장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 부부는 더 많은 교회와 젊은이들이 열방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작은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