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찰스 웨슬리에 이어 존 웨슬리의 회심으로
감리교 운동의 시작이 된 웨슬리 회심 28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연합성회가 지난 6월 7일(수)부터 9일(금)까지 뉴질랜드광림교회(정명환 목사)에서 있었다.
존 웨슬리 목사의 회심일(5월 24일)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이번 집회는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를 초청하여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예배하며, 말씀, 기도, 찬양으로 은혜가 충만한 시간이 되었다.
사진/ 강사 박동찬 목사
웨슬리의 성령운동으로 시작된 영국의 감리교회는 한국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기독교대한감리회를 이루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지역별로 행정구역을 나누고 있는데 남태평양지역에 위치한 감리교회들은 서울남연회 남태평양지방(정명환 감리사)이란 이름으로 모여 함께 예배와 선교 및 교육 행사, 기도회, 회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연례 모임으로는 남태평양 지방 내 교회들의 모임인 지방회와 한국 모든 감리교 목회자들이 모이는 서울남연회가 있다. 또한, 한국 감리교회는 2012년부터 뉴질랜드 감리교회와도 형제 교단으로서 협약을 맺고 긴밀히 협력하며 동역하고 있다.
감리교 운동을 일으킨 존 웨슬리 목사의 회심을 기념하는 이유는 존 웨슬리의 회심으로 그의 일생과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의 회심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존 웨슬리의 회심
존 웨슬리의 회심 이전에 존 웨슬리의 동생인 찰스 웨슬리가 먼저 성령의 감동으로 중생의 은혜를 체험하고 회심하였다. 찰스는 성령을 체험한 후 그의 형도 자신과 같은 체험하기를 기도하였다. 그러나 존 웨슬리는 여전히 영적인 만족감이 없는 상태에 있었다.
신앙적 회의와 영적인 갈급함에 있던 존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성경을 읽었고, 정오쯤 되어 또 성경을 읽고 오후에는 세인트폴 대성당에 가서 성가를 들었다. 지금도 세인트폴 대성당에서는 매일 저녁기도회가 있다.
그 후 올더스게이트 거리를 따라가다가 모라비안 신도회의 기도회에 참석했고, 그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 읽는 것을 들었는데 그때 큰 깨달음을 얻고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런 후 찬송을 함께 부르며 영적인 만족감을 얻게 되었는데 이때에 대한 생생한 기록으로 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것을 웨슬리의 회심이라고 부른다.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리스도만이 구원이시며, 그분이 나 같은 죄인의 죄를 사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후 그는 “세계는 나의 교구다”고 외치며 교회 밖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영국을 넘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까지 성령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웨슬리는 일 년 평균 800번씩 약 42,000번의 야외설교를 하였고, 이 야외설교를 위해서 20만 마일, 약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거리를 다니며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존 웨슬리 한 사람의 회심으로 감리교 운동이 시작되어 영국, 스코틀랜드, 미국 그리고 한국을 넘어 전 세계 가운데 복음의 능력이 퍼지게 되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남연회 남태평양지방은 주님께서 존 웨슬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웨슬리와 같이 회심과 성령의 체험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올해도 존 웨슬리 회심 285주년 기념 성회를 열게 된 것이다.
종교인이 아니라 복음 전하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자”(로마서 4:17-22)
첫째 날에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자”(로마서 4:17-22)라는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되었다. 말씀 선포 전 광림교회성가대의 ‘나는 믿네’ 찬양으로 은혜를 나누고 말씀이 시작되었다. 박동찬 목사는 첫 서두를 예배는 귀한 자리인데 예배의 자리가 귀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였다.
존 웨슬리 회심 285주년을 맞이하여 웨슬리가 회심하기 이전 깊이 고민했던 ‘나에게 믿음이 있는가?’의 질문이 회중들을 향해 던져지며 큰 도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내가 진짜 믿는 그리스도인인가? 우리는 정말 믿음대로 말씀을 행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말씀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박동찬 목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으로 세 가지를 전달하였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 안에 살아가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문제들, 상황들이 주어지지만 그러한 것들을 바라봄으로 세상에 붙잡혀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을 감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처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믿음으로 나아갔던 출애굽 당시와 같이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 나가야 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 아니실지라도, 아무것도 없어 보일지라도 다니엘의 세친구와 같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은 아무것도 없어 보일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모든 것이 되어 주실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나의 삶의 모든 자리에서 철저하게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으며, 가까운 곳에 우리가 있는 곳에 계신다. 웨슬리의 마지막 유언과 같이 하나님이 모든 일상 가운데 함께 하심이 가장 큰 은혜이다.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에 하나님의 영(성령)이 수면위에 운행하셨듯, 성령은 우리의 일상에 운행하고 계신다. 성령이 운행하고 계시지만 창세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시작된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 운행하고 계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믿는다면,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순종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세 번째는 믿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투가 벌어졌을 때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하면 승기를 잡았고, 손이 피곤하여 내리면 승기를 잃었었다. 이때 힘들고 피곤하지만 포기하지 않기를 원했던 모세는 아론과 훌의 도움으로 끝까지 손을 들고 기도하여 승리를 가져왔다.
사탄의 무기는 고통과 그 고통을 오래 끌고 가는 시간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참새 한 마리도 주님의 뜻 없이 땅에 떨어지지 못한다. 우리의 믿음은 세상 가운데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용서의 은총과 능력”(마태복음 18:21-22)
둘째 날에는 “용서의 은총과 능력”(마태복음 18:21-22)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되었다. 말씀 선포 전 오클랜드 감리교회 성가대의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의 찬양으로 은혜를 나누고 말씀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열정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선포하기 시작한 박동찬 목사의 둘째 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간절한 믿음으로 예배해야 하며, 믿음의 예배는 모든 것이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가 흘러넘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죄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며, 다른 하나는 용서이다. 죄의 문제는 내가 용서를 받는 것이며, 용서의 문제는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이다. 나의 죄에 대해 용서를 받았다면, 우리는 또한 상대를 용서해야 하는 자리에 이르러야 한다.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용서를 통해서 내가 용서를 받기 때문이다
용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옵션이 아니라 필수이다. 마태복음 18장의 빚을 탕감 받은 자들에 대한 비유와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더 큰 용서를 받은 자들로서 우리도 용서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용서받지 못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용서를 통해서 진정한 축복과 자유를 얻는다
용서 없는 삶으로 아무리 기도해 봐야 축복과 자유가 주어지지 못한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못하고 있다면, 죄의 문제와 함께 반드시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대상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용서하지 못하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 악취가 나는 기도가 될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세 번째로 용서를 통해서 진정한 찬양을 드릴 수 있다
다윗은 진정으로 찬양하는 자였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람도 용서하는 믿음으로 찬양했다. 찬양이란 그냥 노래가 아니다. 내가 죄로부터 용서받았음을 감격하며, 나아가 용서하는 삶이 찬양이다. 진정한 구원의 감격은 용서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용서함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리에 이르게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자는 용서하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를 위해 주어졌다고 믿는 이들에게 용서하지 못할 자는 없다.
“칭찬받는 성도”(요한계시록 3:7-13)
셋째 날에는 “칭찬받는 성도”(요한계시록 3:7-13)의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되었다. 말씀 선포 전 샬롬중창단의 ‘Living Hope’ 찬양으로 은혜를 나누고 말씀이 시작되었다.
박동찬 목사는 회중들에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며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인들에는 다양한 꿈이 있지만, 모두에게 공통된 유일한 꿈이 있다. 그 꿈은 바로 하나님 앞에 설 때 칭찬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람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책망받는다면, 그곳에서는 돌이킬 수 없다.
우리는 그 마지막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인가? 악하고 게으른 종인가? 또는 나는 착하기는 한데 게으르고 충성 안 하는 종은 아닌가? 말로만 하겠다가 아니라, 말로는 못 한다고 할지라도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해내는 자가 칭찬을 받는 자이다.
회심이란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자로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칭찬받는 종이 되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 번째는 악의 자리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아브라함을 본토 친척 아비의 땅에서 불러주심도 악의 자리에 머물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다. 요셉도 죄의 자리를 떠났다. 죄의 독의 치사량은 스치기만 해도 사망할 정도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죄에서 자유할 수 없기에 우리의 죄를 완전하게 도말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기억해야 한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본 적이 있는가? 악의 자리는 철저하게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이 싸움이 거룩이며, 거룩한 삶과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두 가지임을 기억해야 한다. 죄의 유혹이 온다면 오히려 기뻐하고 죄와 치열하게 싸워 이길 때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됨을 믿어야 한다.
두 번째는 주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의 현장에서 세상의 계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빌립이 아니라, 믿음으로 예수님께 오병이어를 가져온 안드레의 모습이 필요하다. 내 기도와 헌신이 세상의 기준으로 아무리 작아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시고 크게 사용하여 주신다.
요한복음 3:30의 세례 요한의 고백과 같이 나의 삶이 쇠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흥하심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내가 먼저 나의 대적이라고 할지라도 축복하는 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까지도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는 놀라운 칭찬과 축복을 누리게 됨을 믿어야 한다.
세 번째는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한다
고린도전서 9:16의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있음을 기억하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에 우리가 어떻게 전하든 복음은 전해진다. 복음을 전하지 못함으로 하나님께 책망받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최고의 길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우리에게 믿음이 있든지 아니면 지혜가 있던지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믿음도, 지혜도 없음을 깨닫고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종교인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용서의 은총과 능력으로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함께 걸어감으로 하나님께 칭찬받는 성도로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집회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이 누렸던 은혜를 이 땅의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리길 소망한다.
‘존웨슬리 회심 기념 연합 성회’ 후기/곽만영 권사<함께걷는교회>
보통은 3일 동안의 집회 중에 어떤 주제의 말씀이 더 기억에 남거나 하는데 이번 성회는 매일의 주제와 말씀이 다 큰 은혜가 되었다.
첫날 말씀부터 가슴이 뛰고 두근거렸다-예배에 최선을 다하라!- 모태신앙으로 자라나며 교회에서 부모님께로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말씀이었지만 성인이 되어서야 예배를 지킨다는 게, 거기다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깨닫고 수없이 고뇌했던 청년 시절을 기억한다.
20년 전 한국에 있을 땐 미용사 직원이 주일성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이곳저곳을 전전긍긍하다가 기도와 고민 끝에 삶의 터전을 과감히 옮겨 내 직업으로 주일성수를 할 수 있는 외국으로 나오게 되었고 그것이 이곳 뉴질랜드 삶의 시작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머니에 딱 $500불과 배낭 하나로 시작된 아주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예배를 지키고자 하는 그 마음 하나를 하나님께서 귀히 보셔서 지금껏 고된 이민 생활 속에서도 늘 지키시고 함께하시는 축복으로, 그리고 덤으로 처음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믿음의 성장과 가정과 사업체 안에서의 큰 축복과 은혜를 부어주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예배에 최선을 다하라’는 그 말씀이 마치 긴 터널을 지나서 듣는 하나님의 확증과 보상의 메시지처럼 들렸고, 내게 어렸을 적부터 그런 신앙을 심어주셨던 부모님께 더욱 감사하며, 나아가 내가 내 아이들과 자손들에게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물려줘야 할 가장 귀한 유산이라는 다짐의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