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통하여 땅을 팔아 주시고 500만 달러를 주셨다. 돈을 주신 목적은 5년 전부터 약속하신 영어학교와 선교센터 빌딩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이 두 가지 목적에 맞는 빌딩을 찾아다녔으나 500만 달러를 가지고는 어떤 빌딩도 살 수가 없었다.
몇 달을 찾아 헤매다 850만 달러짜리 6층 빌딩을 보았다.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고 옆에 공원이 있어 두 가지 목적에 너무 합당했다. 이 빌딩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빌딩이라고 생각하니 세상을 다 얻은 것같이 기뻤다.
은행과 상의하여 융자를 얻기로 하고 바로 오퍼(구매 계약서)를 냈다. 그런데 반드시 나에게 올 것이라고 믿었던 빌딩이 그만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 그때 그 상실감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이 돈으로는 다시 이런 빌딩을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많이 낙심이 되었다. 그런데 며칠 뒤 알지도 못하는 한 에이전트가 나를 찾아왔다. 어디서 들었는지 학교에 합당한 좋은 빌딩이 있다고 소개를 해주었다.
11층 되는 멋진 유리빌딩이었다. 가격을 물어 보니 천만 달러가 훨씬 넘었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포기하고 며칠이 지났는데, 하나님께서 그 빌딩에 오퍼를 내도록 강한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금액까지도 알려 주셨다.
다시 에이전트를 불러 하나님이 알려 주신 700만 달러짜리 오퍼를 제시했다. 에이전트는 금액을 보고는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장난이냐고, 어떻게 반값에 오퍼를 낼 수 있냐며 그냥 가려고 했다.
본인은 절대 이 오퍼를 주인에게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를 붙들고 간절히 부탁을 했다.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한참을 애원했다. 너무나 간절한 부탁에 에이전트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 오퍼를 주인에게 가져가면 다시는 주인이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간절하게 원하니 한 번 오퍼를 갖다 주겠습니다.”
에이전트가 답을 주기로 한 마지막 날,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다. 그런데 밤 12시가 되도록 아무런 답이 없었다. 사실 그다음 날 내가 한국에 가기로 되어 있어서 그날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벽 2시에 팩스로 서명된 계약서가 들어왔다.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6층짜리 빌딩을 놓치고 절망하고 있던 나에게 더 저렴한 가격에 두 배나 크고 아름다운 11층 유리빌딩을 선교센터로 주셨다.
첫 번째 빌딩을 놓치고 가장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그 빌딩 바로 옆에 조그만 공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학교를 할 때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쉴 공원이 있으면 캠퍼스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간절한 바람도 그냥 넘기지 않으셨다.
구입한 빌딩 옆에 처음 보았던 빌딩의 공원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크고 아름다운 공원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빌딩 옆에 대형 쇼핑몰도 있어서 학교로서 이보다 위치가 좋은 곳은 없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을 넘어 최고의 빌딩을 준비해 두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5년 전 주셨던 약속대로 이 빌딩에 영어학교와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주셨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렘 32:27)
축복의 유산
196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은 매우 어려웠다. 밥 세끼를 다 먹지 못하는 가정이 많았다. 우리 집은 그 당시 다른 집들보다 더 가난했다. 나의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 일곱 자녀를 키우느라 여간 고생을 하신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늘 배고픔에 시달렸다. 유일한 낙이 길거리에 쇠붙이를 주워다 엿을 바꿔 먹는 일이었다.
식사 시간에는 온 식구가 양푼에 꽁보리밥을 함께 퍼먹곤 했다. 반찬이라곤 김장 무를 젓가락에 꽂아 조금씩 뜯어 먹은 것이 전부였다. 그 당시 모두들 참 가난했다. 매일 아침 어려운 우리 가정에도 어김없이 밥을 구걸하는 걸인들이 찾아오곤 할 정도였다. 어린 시절 온통 내 마음은 먹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어머니는 10리 길 되는 산간 마을에 늘 복음을 전하러 다니셨다. 어린 시절에 종종 어머니를 따라 함께 예배를 드리곤 했다. 겨울밤에 10리 길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칠흑 같은 어둠과 살을 도려내는 듯한 바람은 고통 그 자체였다. 어머니는 예배를 인도하러 이 길을 밤마다 다니셨다.
종종 머리 위에 떡 광주리를 이고 가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먹이시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늘 불만이 많았다. 우리도 못 먹는 떡을 마을 사람들에게 갖다 주는 것이 너무 속이 상했다.
나이가 들어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참 믿음의 사람이셨다. 선행을 삶으로 늘 실천하고 사셨다.
몇 년 전에 울산에 있는 큰 교회로부터 집회 초청을 받았다. 그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은 어머니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이었다. 당시 신학생이었던 목사님은 어머니가 마을에 복음을 전하러 다니실 때 종종 함께 가서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사모님은 어머니가 마을에서 전도했던 처녀 성도였는데 두 분이 어머니 덕분에 만나 결혼을 하셨다. 어떻게 나와 연결이 되어 집회에 초청해 주셨다.
그때 사모님이 어머니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모님이 청년 때에 어머니께서 마을의 청년들을 주일날 본 교회로 인도하고 예배가 마치면 꼭 집으로 데려가서 푸짐히 점심을 먹여서 보냈다고 했다.
점심을 먹을 때 우리 형제들이 가까이 오면 멀리 쫓아내셨다고 했다. 그 당시에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 혹시라도 청년들의 음식이 부족할까 봐 식사가 끝날 때까지 못 오게 하셨다고 했다.
이제 목회자가 되어 어머니의 삶을 되돌아보니, 어머니야말로 내가 가장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델이셨다. 오늘 내가 누리는 이 큰 복은 어머니가 심어 두신 선행의 열매임이 분명하다.
오늘 많은 부모들은 내 자녀들을 이 땅에서 안락하게 살게 해주려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일류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아끼고 절약하며 엄청난 돈을 교육비에 투자한다. 신앙을 가진 부모조차도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성경은 어디에도 복이 세상의 것으로부터 온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녀에게 오는 복은 부모가 뿌린 선행의 씨앗에서 싹튼다. 내 자녀가 진정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면 선행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 37:2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