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잠언 7:13-15)
She took hold of him and kissed him and with a brazen face she said:“I have fellowship offerings at home; today I fulfilled my vows. So I came out to meet you; I looked for you and have found you!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가 화제다. 이단들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며 이단의 추악함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마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동시에 온갖 거짓과 유혹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있어야겠다는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

오늘 묵상할 본문은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는 젊은 청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혜자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그를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소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주목해볼 점은 음녀가 청년을 속이는 방법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음녀의 유혹방식은 마귀가 사람을 유혹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마귀는 매우 교묘하여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사람을 미혹한다. 그중 본문에서 사용한 두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이들은 가장한다(Disguise)
사탄이 가장 잘하는 것이 속이는 것이다. 사탄은 뱀으로 가장해 하와에게 접근했고, 마치 하나님의 속마음을 잘 아는 듯한 언행을 일삼았다. 본문의 음녀도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여인은 때마침 오늘 서원한 것을 갚았고, 때마침 너를 만났다고 말한다. “때마침”이란 단어에 주의하자. 이는 운명적인 만남을 가장하기 위해 거짓으로 사용된 단어일 뿐이다.

우리는 때로 운명과 같은 상황을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지표로 여기곤 한다. 무언가 필요했을 때 때마침 그걸 얻게 되면 하나님의 공급하심이라 여기지 않겠는가?

이단의 특징은 그런 운명적인 상황을 인위적으로 연출한다는 것이다. 그것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특히나 우리의 믿음과 양심에 비추어봤을 때 옳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마치 운명 같은 기회나 문이 열린다면 이를 경계해야 한다.

둘째로 이들은 과장한다(exaggerate)
16절부터 21절까지의 여인의 말을 보면 모든 것이 과장되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 몰약과 침향과 계피, 보름이 지나야 돌아올 남편 등 다채로운 단어들을 과장하여 사용하여 젊은 청년의 마음을 유혹한다. 이미 가장법에 미혹된 청년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가장과 과장.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세상은 악을 선으로 가장한다. 정신을 차리고 경계하지 않으면 깜빡 속을 수 있다. 세상은 추악함을 아름다움으로 과장한다. 본질을 보지 못하면 넘어갈 수 있다. 이 가장과 과장을 분별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필요하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 말씀으로 반격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참된 것과 거짓된 것,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분별하는 지식을 제공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본질과 비 본질을 구분하고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눈을 제공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 세상의 유혹을 분별하고 이겨내는 우리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진리를 사수하고 생명의 길을 걷는 우리 되기 축원한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편7:11)
God is a righteous judge, a God who expresses his wrath every day.

오늘날 분노조절장애는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장애로 인한 범죄들이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고 범죄의 수위가 매우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도 대체로 분노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 그렇다고 분노라는 감정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이 표출하신 분노를 확인할 수 있고, 성전에서 화를 내시며 장사꾼들을 내쫓으신 예수님의 모습도 잘 알려져 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성경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보다 진노하시는 모습이 훨씬 더 많이 그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오늘 시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아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온유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다.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고 말씀하셨지만, 시편 기자가 경험한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는 분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진노는 정당한 것인가? 그렇다. 시편 기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곧 그의 분노는 의로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분노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쾌감으로 인해 생기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지금껏 하나님은 부당하게 분노하신 적이 없다. 늘 원인은 사람에게 있었다. 사람의 불의가 의로우신 재판장의 분노를 야기한 것이다.

온갖 좋은 선물과 은혜를 받았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으며 약자를 돌보지 않는 불의한 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하셨다. 북이스라엘, 남유다, 에돔, 블레셋, 바벨론, 이집트 가릴 것 없이 불의에 가득한 이들에게 진노를 쏟아부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의뿐 아니라 불신에 대해서도 분노하신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시험한 연유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믿음 없는 언행을 했을 때도 분노하셨다. 수많은 이적과 표적을 보여줬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인간의 불신에 진노하신다.

그렇다. 우리의 불의와 불신이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낸다. 그가 매일 분노하신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에 불의와 불신이 가득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온갖 불의와 불신의 열매들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일까? 먼저 내 안에 불의와 불신은 없는지 세밀히 살펴야 하겠다. 모세와 같이 중보의 기도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 진노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증거한다면, 불같이 타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시원케 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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