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세상은 합격을 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원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도했다. 합격을 위한 기도지만 합격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이 힘든 과정에 도전하도록 권했을 때에 했던 말들이 있다.

“너희들이 아무리 어려운 치과 대학에 붙고 세상에서 뭔가를 이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끝장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죽는다.”
“공부가 네 인생을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니고, 치대 합격이 너희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아무리 성공하고 출세해도 하나님이 불어 버리시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너희들이 수고해도 모든 것이 헛것이다.”

이 말들은 자식뿐만 아니라 늘 목회의 대상이었던 청년들에게도 했던 말이다. 그래서 기도했다. 역사와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달라고.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단 2:21)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역사와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는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자녀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만 제대로 알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진정한 합격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존경하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합격 소식은 없다.

이 세상을 살기 위한 모든 지식과 지혜의 시작은 학교 공부가 아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다. 똑똑하다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자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자가 똑똑한 것이다.

치대 합격을 위해 기도하지만 치대 합격보다도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합격이 진정한 합격이기에 이 합격을 위해 기도한다. 혹시나 실패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믿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니 언제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좋은 대학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합격은 가장 기대하는 소망일 것이다. 직장을 원하는 자들에게 합격 소식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에 있을까? 부모로서 자식이 좋은 대학교에 합격하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

무엇보다도 다 들어가고 싶지만 경쟁률이 너무 심하여 들어가지 못하는 그곳에 자식이 합격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그 합격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은 합격이라는 열매에 열광한다. 합격을 위해서 예배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합격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리스도인들은 합격이라는 열매에 열광하면 안 된다. 그 열매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열광해야 한다.

나는 청년 사역자이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부모 때문이다. 자식들이 교회를 떠나는 데는 부모들의 영향이 크다. 자식이 교회에서 멀어지고 예배에서 멀어지는데 좋은 대학교에 합격했다고 좋아라 한다.

역사와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내 자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내 자식이 좋은 대학교에 합격하여 혹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될 것 같으면 크리스천 부모는 ‘하나님! 내 자식 떨어뜨려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한다.

내 자식이 대기업에 합격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될 것 같으면 ‘하나님! 내 자식 불합격시켜 주세요’가 크리스천 부모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도 합격을 원하고 그리스도인들도 합격을 원한다. 합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없는 합격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데 이 세상에서 판·검사가 된들, 의사가 된들, 큰 기업의 CEO가 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은혜다. 이것이 성공이고, 출세이고, 행복이다. 사람들은 그 어려운 학과에 합격했다고 칭찬하지만 나의 칭찬은 따로 있다. 나는 내 자식들이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을 원하고 있기에 칭찬하고 싶다.

아니, 도대체 예배가 몇 번이야? 공부는 언제 해?
나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셔서 두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한 군데는 담임 사역으로, 또 한 군데는 동역 사역으로 두 교회를 섬기다 보니 예배가 많다.

주일에는 오전 10시, 오후 1시에 예배를 드리고 담임 사역지로 와서 3시에 일꾼자 예배를 드리고 4시에 본 예배를 드린다. 주중에는 수요일과 금요기도회, 토요기도회를 기본으로 하며 지금은 코로나로 인하여 줄었지만 청년 사역을 하다 보니 매일매일 예배와 기도회가 있다.

아빠가 사역을 하니 자식들은 자동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감사한 것은 어릴 적부터 그 많은 예배를 참석하면서 싫다 소리를 한번도 안 했다는 것이다.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도 예배가 있는 날은 항상 예배가 최우선이었다.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믿음이 생기게 된다. 창조주가 있구나, 모든 만물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구나, 역사와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인간의 생사화복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구나,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믿게 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너무 크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렇게 예배가 많으면 공부는 언제해요?’ 공부요? 공부는 본인의 몫입니다. 부모로서 공부하라는 말은 잘 안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혜를 주십니다. 예배를 사랑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니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지혜도 주시고 지식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단 1:17)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칠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식을 주시며 지혜를 더해 주셨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 역사와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도우신다. 남들 10시간 공부할 것을 2∼3시간 안에 할 수 있도록 집중력도, 암기력도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자식들의 합격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싶다. 물론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잠 못 자며 공부했고 토하도록 공부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가 많고 바빠도 예배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여 하나님을 섬기니 하나님이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갑절의 지혜와 지식을 허락하셨다고 믿는다.

좋은 대학교, 좋은 학과일수록 경쟁률이 치열하다. 1차 UCAT 통과, 2차 인터뷰 통과 그리고 3차 성적까지 다 통과하였는데, 만약 합격 정원 30명 안에 들지 못하고 31번째가 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안타까울 것 같았다. 32등도 그렇고 33등도 그렇다. 저들도 분명히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 텐데….

그때 정말 아깝게 떨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말 많은 학생들이 치열하게 공부한다. 공부할 양이 너무 많아서 줄일 수 있는 시간들을 다 줄여가며 죽어라 수고하고 공부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수고한 대로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는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수고의 열매를 맺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부하는가! 얼마나 많은 직장인들이 수고의 열매를 맺기 위해 고생하는가!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정말 수고하지만 수고한 대로 먹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합격 대기자 명단에 있는 딸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존경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딸에게 수고한 대로 열매를 먹게 해 주세요. 그 열매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경험되게 해 주세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 128: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그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합격을 경험한다. 정말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도 있고, 엄청 노력하여 합격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저들은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 11:28)

하나님을 의지해야 살 수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결국 패망한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는 그 은혜를 경험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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