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Before & After

치열하게 살았고, 후회없이 일했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책도 수천 권 읽었다. 죽을 고비도 3번 이상 넘겼다. 산전수전 다 겪은 후, 목양하는 일이 가장 익숙해지고 잘하는 일이 되었을 때, 문득 교회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살아 보고 싶었다.

결단하고 내려왔을 때, 기본적으로 보장받던 것들이 사라지고 인생 초보자, 이민 초보자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공적인 나는 허물어졌지만, 개인적인 나의 삶은 새롭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런 변화들을 나누고자 한다.

소확행을 알게 되었다
목사의 실수는 공동체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언행을 항상 조심해야 했고 표정까지도 신경 써야 했다. 설교에서 비속어를 써서도 안 되고 모든 것이 반듯해야 했다. 내 스스로 반듯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설교는 완벽을 추구했다. 교회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내 탓이요!’ 를 외치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하지만 공적인 삶에서 내려온 이후에는 스스로에게 자유를 주었다. 2년간 머리를 기른 후, 파마를 했다. 베토벤 머리 스타일을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아들이 건네준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스포츠를 해 보았지만 나에게는 골프가 딱 맞았다. 골프 칠 여유가 없는 성도들 생각하면 골프 칠 때마다 괜히 미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교회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텃밭을 만들고 12그루의 과일나무를 심었다. 거기서 얻어지는 채소들과 열매들이 쏠쏠한 재미를 준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Uber Driver를 선택했다. 목회를 내려놓고 보니 직업적으로 보았을 때 목회자로서 나는 딱 맞는 직업이 아니었던 같다. 죽을 힘을 다해서 억지로 해 냈다.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35년 간의 목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목회의 길을 내려놓아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을 때 그분의 위대하심과 크심을 새롭게 느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어마어마하게 크신 분이시다.

목회 이외의 다른 실력이나 기술이 없는 사람이 새로운 직업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새로운 직업을 위해서 도전해 본 것만 해도 7-8가지가 된다. 쉽지는 않은 과정이었지만 결국에는 우버를 선택했다. 8개월 해 보니 적성에 맞는 직업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부르심이 있지 않는 한 계속할 생각이다.

새로운 일을 해 보는 것은 항상 즐겁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매일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 그런 변화 DNA가 우리 안에 있다. 산 위에 사는 이들은 하루도 똑같은 하늘을 보지 않는다.

매일 신선함을 누린다. 나이 듦은 책임감에서 벗어나는 시간이기에 더 안전하고 신선하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좋은 때다. 우버를 넘어 또다른 직업의 변화도 꿈꾸어 본다.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게 되었다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내 안에 있는 참 자아,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외면한 채 가짜 자기를 살기 때문이다. 억지로 웃어야 할 때가 있었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정직하게 산다.

이제는 성경을 읽을 때도 무언가를 얻어서 설교해야 한다는 고민을 안 해도 된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으면서 나 스스로 놀란다. 말씀을 나에게만 적용하면 된다. 그 파워와 깊이는 매일 새롭다. 그래서 나는 진짜 예수님께 반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놀라고, 성령의 터치에 감동한다. 오롯이 내 안에 채워진다.

333전략대로, 잘 놀고, 열심히 일하고, 주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성하고 있다. 자존감은 점점 높아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커져서 영생까지 보게 된다.

인간관계의 열매를 맛보고 있다
거품이 거두어지고 본래의 내가 서 있게 되니 인간관계가 저절로 정리된다. 이해관계로 만났던 사람들은 주변에서 멀어져 간다. 소식이 없다. 그런데 애정을 갖고 있던 이들은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사적인 모임에서 만났을 때 이전에 나누어 보지 못했던 깊은 감정의 교류가 생긴다.

특히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감정으로 나를 대해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나를 챙겨주고 자리를 내주고 기회를 일부러 만들어 주는 의리 맨들이 있다.

낮은 자리에 내려와 있으니 진짜 삶을 공유할 사람들이 보인다. 억지로 만들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똑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이들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사람의 감정은 바이러스와 같이 전염된다. 가장 큰 행복은 좋은 가족관계이다. 예배를 인도하는 자리에 있을 때는 가족과 함께 옆에 앉아서 예배드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 주일 가족들과 옆에 앉아서 같이 예배 드리고 있다. 예배 끝난 후에 가족끼리 식사를 나누며 오늘 들은 말씀을 공감하고, 예배의 감동을 되새김질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즐거움이 이리도 좋은 줄 몰랐다. 키위 교회에 출석하면서 키위들과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 지지는 않지만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저절로 주변에 모인다. 은퇴한 70대 목사 부부가 그렇게도 우리 내외를 따뜻하게 살펴 주고 마음을 나누어 준다.

은혜는 은혜를 부르고 행복은 행복을 부른다. 행복해지려면, 행복을 주는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매주 은혜를 느끼고,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고, 영적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교회를 찾아낸 것이 감사하다. 키위 교회 죽지 않았다. 샘물처럼 은혜를 솟아 내는 교회들이 도처에 있다. 오히려 한국 교회들이 경직되어 가는 듯하여 안타까울 때가 있다.

20여 년 전 이민과 유학이 왕성할 때, 한국 교회는 매일 잔치 집이었다. 무슨 규칙이나 틀이나 부수적인 것들이 거의 없었다. 모일 때마다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잔치하고 흥겨웠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는 한계선을 거두어 내고, 교회만 가면 행복해 지고, 눌려 있던 결박이 풀리고 영적 자유함을 마음껏 누리는 틀에 갇히지 않는 교회들로 다시 잔칫집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요사이 나는 매일 ‘나에게’ 이론이 아닌 삶으로 말하는 설교를 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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