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한 마을의 중심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식수로 사용할 정도로 깨끗한 물이었다. 그 시냇물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마을 주민들이 갑작스레 심한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에 마을의 원로들은 급하게 조사단을 꾸리고 원인을 파악하는 일에 착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시냇물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단히 애썼지만 복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만 갔다. 머리를 맞대어 해결방안을 고민하던 중, 이들은 물줄기를 따라 상류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한참을 올라가니 그 시냇물에 있는 바위에 사슴의 사체가 걸려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즉시 그 사체를 치웠고, 며칠 뒤, 그 물을 시험해보니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예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척 단순하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근원으로 올라가보면 해답이 있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잠언의 기자는 생명의 근원이 우리의 마음에서 난다고 선언한다. 생명의 근원지는 바로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이다. 마음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오만가지 훈련 프로그램들이 지속적으로 생기고 있다. 암보다 무서운 것이 마음의 병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오늘날 이 마음의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이 무수히 많으며, 그 마음의 병들은 육신의 병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화병, 우울증, 중독, 불면증, 트라우마 등은 현대인들 중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마음의 병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마음의 상태가 이 지경까지 된 것은 마음을 잘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홀대를 당하기 쉽다. 더럽혀지거나 상처입은 채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마음을 하나의 성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성 안에 무엇이 출입하는지 세밀하게 살피고 지켜야 한다.
말씀이라는 문지기와 믿음이라는 파수꾼을 세워 눈과 귀를 통해 우리 마음에 출입하는 모든 것들을 걸러내야 한다. 아무런 경계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면 마음은 곧 혼란 가운데 무너지고 오염되어 악취가 가득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참되고 영원한 것보다 거짓되고 일시적인 것으로 둘러싸여 있고 영혼은 온갖 거짓과 미혹에 노출되어 있다. 눈과 귀를 통해 접하는 수많은 정보와 소리 중에는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깨어 근신해야 한다. 경계하고 분별해야 한다. 보고 듣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 묵상과 침묵으로 내면을 살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지켜야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샘을 흘려보낼 수 있다. 그렇게 정돈되고 경건한 마음에 성령께서는 즐거이 머무시며 채우신다. 우리가 유익하다고 착각했던 것들, 우리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들은 모두 해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 채우는 성도 되길 축원한다.
마음에 두신 기쁨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편 4:7)
You have filled my heart with greater joy than when their grain and new wine abound.
저명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존 파이퍼 목사는 그의 저서 [여호와를 기뻐하라-Desiring God]에서 그리스도교적 쾌락주의(Christian Hedonism)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 개념은 복음주의 진영안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쾌락”과 “향락”을 의미하는 Hedonism이란 단어가 도덕, 윤리 정절, 경건 등을 추구하는 그리스도교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 죄와 율법에 매여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천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자극하고 깨우기에 매우 적절한 단어로 보인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 그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다(요한복음 15:11). 우리는 세상의 쾌락이 아닌, 예수님의 기쁨으로 사는 존재다.
오늘 시편 기자도 하나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을 고백하고 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 때 느끼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참되고 영원하며 관계적인 기쁨이다.
참된 기쁨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 가운데 공급되고, 정직하고 경건한 자에게 주어진다. 영원한 기쁨은 주의 임재 앞에서 떨며 범죄하지 않은 자의 소유이며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의 것이다. 관계적 기쁨은 주의 얼굴 빛을 항상 구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쁨을 풍성히 누리지 못할 때가 많다. 대표적인 원인은 바로 죄와 율법주의다. 죄는 기쁨이 싹트는 것을 막으며, 독이 담긴 열매를 맺게 한다. 율법주의는 기쁨의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에 더해 세상의 암울하며 슬픈 소식들은 기쁨을 사치로 느끼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이유는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 불안하고 불의한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주신 이유도 마찬가지다.
주를 믿는 모든 자의 마음에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이 있다. 그 샘을 찾고, 그 안에서 흐르는 기쁨의 생수를 매일 마셔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성도로 살기로 다짐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