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리더십 연구학자 데빈 보딕카 (Devin Vodicka)는 신뢰감을 형성하는 네 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영어로는 모두 철자 C로 시작되는 단어들이다.
1) Consistency 일관성
2) Compassion 동정, 연민
3) Communication 소통
4) Competency 능력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이 네 요소가 서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관성이 없거나, 정이 없는 사람, 대화가 안통하고 무능한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 기준을 토대로 가장 신뢰할 만한 존재는 누구일까? 잠언 3장은 하나님을 가장 신뢰할 만한 분으로 제시한다. 보딕카의 네 요소를 적용해보자.
하나님은 일관성이 있으신 분이신가?
그렇다. 하나님은 영원불변한 존재다. 영원히 성실하시고 신실하신 분이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일관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야고보서1:17).
하나님은 동정과 연민을 가지신 분이신가?
맞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다(에베소서 2:4).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다(히브리서 4:15).
하나님은 소통하시는 존재인가?
신구약에 계시된 하나님은 언제나 소통하셨다. 선지자들과는 직접 대화를 나누기도 하셨고, 말씀과 성령을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그는 우리를 친구로 불러 주시고 그 속내와 계획을 숨김없이 표현하신다. 나아가 우리의 기도에 늘 귀를 열어 두고 계신다. 그 어떤 역사나 신화에도 이토록 사람과 친밀하게 소통하는 신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가?
이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다. 창조와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했다. 잠언 기자는 우리도 동일한 길을 걷기를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범사에 그를 인정하게 된다. 인정한다는 말은, 주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권위를 인정하면, 경청하고 그 지도하심에 순종하게 된다. 주님은 이런 자들의 인생을 곧게 만드신다.
운전을 할 때, 굽은 길이 계속되면 피곤하고 경직되며 어지러워진다. 순간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자신의 인생이 곡선길에 있다고 느껴진다면, 잠시 달리던 차를 멈추고 나는 무엇을 신뢰하고 인정하며 경청하며 순종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바르고 곧은 길을 달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시편 3:5-6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잘 자고 잘 일어나는 것은 참 복된 일이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 성인 인구의 10%가량이 불면증을 앓고 있고 한다. 이웃 나라 호주의 경우 성인 60%가 불면증을 경험했다는 조사도 있다.
그 원인은 스트레스, 만성 통증, 갑상선 기능항진증, 카페인 섭취 등 다양하다. 그중 가장 큰 요인은 불안감이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이들도 불안감으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일에 대한 불안감, 실패에 대한 불안감, 죽음에 대한 불안감 등은 우리의 몸과 정신을 쉬지 못하게 괴롭힌다. 잘 자고 잘 일어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은 참으로 큰 복이다.
오늘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자신이 자고 깨는 것이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기에 가능하다” 고백하고 있다. 사실 그는 평안히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도망을 다니던 중에 어찌 긴장을 풀고 눈을 붙일 수 있었겠는가?
무방비 상태에서 반란을 겪었기에 압살롬이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치러온다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불어 아들에게 배신당한 그의 내면에선 당혹스러움, 수치스러움, 미안한 마음, 분노, 후회 등의 여러 감정이 끊임없이 소용돌이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누워 눈을 붙인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안식으로 몰아넣는다. 그의 믿음은 천만인에게 둘러싸여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만들어 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믿음과 양심을 무너뜨리려는 대적들이 늘 도사리고 있다. 악한 영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는 자들의 방패, 요새, 산성,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다.
불면증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평안과 꿀잠을 선물로 주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