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허물을 벗다’

곤충은 성장하기 위해 껍질을 벗는‘탈피’ 단계를 거쳐야 한다
탈피 주기는 대체로 1년에 1번이다. 탈피 못 하면 어떻게 되나? 예를 들어, 바닷가재는 매년 10-15%는 탈피하는 과정에서 지쳐서 죽는다고 한다. 탈피는 해를 거듭할수록 힘들어진다.

사람도 허물을 벗어야 산다. 고정관념이라는 허물을 벗어야 산다. 나이 들수록 어렵지만 생각의 허물을 벗겨 내야 원더풀 라이프를 누린다. 생각이 굳어버린 노인은 죽어가는 목숨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도망간다. 나이 들수록 ‘나’를 버리고 예수님을 품고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초월적인 삶을 이루어야 이 땅에서의 천국을 누릴 수 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은퇴로 인해 이제까지의 경험과 지식과 관계가 단절되는 추락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 추락은 다시 날아오르기 위한 허물 벗는 과정이다. 목회자로서, 설교자로서 최고의 정점에 있을 때, 3년 앞당겨 조기 은퇴를 결정했다. 그래야만 내가 살고 교회가 산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민 목회 10년 동안 교회를 건축하고,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관을 건축했다. 1,000명 시대를 대비하는 시점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5년 지났을 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이들 중에 허물 벗는 일에 실패한 이들은 병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분들을 돌보다가 나 또한 10여년이 지나갈 무렵 몸과 마음은 병들어 버렸다. 허물을 벗지 않으면 나도 죽고 교회도 더 깊이 병들어 갈 것이 자명했다.

나도 살고 교회도 살리기 위해 은퇴를 결단했다. 은퇴 후 1년간은 설교 준비가 안 돼서 당황하는 악몽을 꾸었다. 몸이 고될수록 그런 악몽이 반복되었다. 꼬박 2년이 지나니 결박이 풀렸다. 시간이 때론 보약이다. 잘 놀고, 잘 공부하고, 잘 살았더니 2년 후에 새살이 돋아났다.

추락하는 허무함과 지워지는 고통을 견뎌내야만 새것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새로운 발돋움은 값을 지불한다. 교회라는 울타리를 떠나는 순간, 모든 보호막이 사라졌다. 천 길 낭떠러지기에 떨어지듯 끝도 없는 추락을 경험했다. 나의 사역들이 지워지고 잊혀지고 사라져 갔다.

목사에서 일개의 구도자로 one of them으로 묻혔다. 당연한 일이지만 평생을 목회자의 자리에 있던 나에게는 너무도 생경한 시간이었다. 2년이 지나니 직분이라는 무게, 책임져야 하는 책임자라는 무게,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났다.

성 속의 울타리가 걷히다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경계선이 허물어졌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세상에 대해 부정한 것으로 정죄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거룩이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거룩이다.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면 거룩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부정한 것이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던 거룩이 교회 밖에서의 거룩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교회가 성경에도 없는 규칙과 규범에 갇히는 것은 허물 벗지 못하는 곤충과도 같은 위험한 상태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신학이나 윤리 규범들을 벗어 버려야 숨 쉬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평생 목사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회 일 이외의 다른 일을 하면 죄가 되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것이 목회자의 거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반의 영어 공부 끝에 Uber Driver가 되었다. 1500번 이상의 손님들을 태웠다. 교회를 돌보고 성도들을 돌보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서비스했다. 교회 밖에 있는 수천 명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람 대하듯이 정성을 다했다.

개중에는 감동하는 이들도 있고, 혹은 고약한 사람들도 있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교회 밖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사람들의 성품은 거의 비슷하다. 상대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으면 평안하고 거룩이고, 내가 하나님과 떨어져 있으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불안하고 무의미하고 부정하다. 교회 안에서의 삶과 교회 밖에서의 삶의 경계선이 없어지고 있다.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수확이다.

내려놓을 때가 됐으면 내려놓자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자. 그것이 믿음 아닌가! 은퇴하면 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줄 알았다. 난센스다. 교회를 떠나고 2년 동안 딱 한 번(장로임직식) 방문했다. 잘 돌아가고 있다. 오히려 30, 40대 교인들이 많이 늘어났고 새로운 교회로 탈바꿈하고 있다. ‘내 교회’라는 착각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목회자뿐만이 아니라 평생 교회를 위해서 헌신한 이들도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끄신다.’는 진리를 하루빨리 받아들이고 좀 내려놓자. ‘내려놓아야 하는데…’라는 신호가 왔으면 토씨 붙이지 말고 그때부터 시간을 두고 준비하자.

왜 허물을 벗지 못하고 있는가? 다음 세대에게 맡기면 그들은 그들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사로잡혀 잘 해낼 수 있다. 제발,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집착하지 말자.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됐을 때 내려놓으면 나도 살고 너도 살고 교회가 산다.

하지만 내려놓음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6개월 전부터 공포하고 내려왔어도 잡음이 많았다. 책임감 있는 마무리도 필요하다.

구원론의 허물을 벗다
지난 6개월 동안 1500번 2천 명 이상의 손님을 태웠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인도 청년이다. 인도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지울 정도로 확 트인 성품과 깨끗한 인격과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20대 중후반의 청년이었다. 그렇게 시원하고 깨끗하고 호감 있는 사람일 수가 없었다.

너무 좋아서 ‘어떻게 당신은 이런 삶의 자세를 갖게 됐느냐?’ 물어보니 ‘자신이 인도에서 공과대학을 다닐 때는 마약하고 음주하고 온갖 향락에 빠져 살았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소망도 없는 엉망이었다. 그런데 예수님 만나고 나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목사의 눈으로 보았을 때, 완전히 거듭난 신자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어느 종파의 교회를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가톨릭’이라는 대답이었다. 충격이었다. 신학을 공부할 때 가톨릭 신자 중에 3-4% 거듭난 신자가 있다는 학습은 했지만, ‘온갖 혼합 종교에 물든 가톨릭에 무슨 구원이 있을 수 있나?’라고 생각하였었던 구원에 대한 경계선이 허물어져 버렸다.

분명 그는 거듭난 신자임이 틀림없었다. 가톨릭이 아무리 의식화되었고, 혼합 종교가 되었다고 해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면 완전한 거듭남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위력이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영생이며 우주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신 예수를 믿고 영혼에 모시게 되면 눈이 열리고 우주를 품게 되고 영생을 품게 된다.

은퇴 후, 경계선을 허물고 한 개인의 구도자로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발견하고 나를 완성해 나가는 자유함이 나를 미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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