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NZ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신대원 학생으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뉴질랜드 ‘티타임’ 문화를 가져다 직접 대학원 친구들과 학부 동생들에게 나누고 싶었다. 손수 챙겨간 뉴질랜드의 티로 모닝 티타임과 오후의 티타임을 갖는 것에 푹 빠져 지냈다.
한국에서의 숨 쉬지 못할 정도로 무더운 여름날 목을 시원하게, 또는 손발이 꽁꽁 얼어버린 추운 날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는 티타임은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뉴질랜드의 티를 즐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겠지만 몇 차례 목으로 넘기면 그만일 음료가 티타임의 전부가 아니지 않았겠는가. 티타임은 티를 마시는 그 행위 자체를 뛰어넘어 신학생에게는 다양한 대화의 장이 되었다.
가볍게 웃고 떠드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때로는 몇 시간씩 신학적 논의에 빠질 때도 있었고, 또한 선후배 사이의 깊은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나눠지는 그런 시간들로 채워졌다. 후담은 함께 티를 나누던 몇몇은 강의가 없는 날만을 기다렸다 한다.
‘티’라는 서로 공유하는 문화에 본질을 담기 시작하니 그 문화는 힘을 얻은 고속 기관차가 되어 시간이 어찌 흐르는 것도 잊은 듯이 이곳 저곳을 아주 빠르게 쉼 없이 달려간다. 신이 났거나, 진지하거나 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흘러 현재 ‘티’타임이 ‘커피’타임이 된 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스리랑카에서 커피를 볶으며 또 산을 넘으며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하고 있는 대학원 동기이자 사랑하는 친구 목사 때문이다.
당시 신학생이었던 친구를 통해 커피를 ‘영접’ 했던 그날도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잊지 못할 커피로의 충격적인 초대가 이뤄졌다. 코나의 커피였고, 칼리타 수동 그라인더로 곱게 갈고,종이필터가 있는 작은 드립퍼와 포트로 이제는 많이 알려진 핸드드립, 푸어오버를 내려주었다.
그날 커피 ‘영접’ 후 약 10년이 지난 지금은 매일 직접 갈아서 마시는 것이 성에 안 차 결국 직접 커피 빈을 볶기까지 하는 커피 매니아가 되었다. 그것뿐만인가. 그렇게 볶고 지지고(?) 아니 내린 커피는 다른 이들과 함께 마신다. 웃으며 감동하며 울며 함께 말이다.
필자의 커피 스토리는 대략 여기까지면 충분할 것 같다. 어떤 이는 ‘커피는 사치이니, 가능한 멋지게’라는 글을 낡은 흑백사진 위에, 요즘 MZ 세대들의 표현처럼, ‘간지’가 흘러 넘치게 대충 적은 글이 기억난다. 가만히 생각했다. 어떻게 마셔야 ‘간지’가 나는 걸까? 커피를 나누다 보면 멋지지 않은 모습들도 있겠고 어쩌면 추한 모습도 있을 것인데 말이다.
커피 인생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필자가 만난 커피 선생들은 조금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글의 흐름을 결정했다.
지금까지 만난 커피 선생님들, 나의 친구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1.5세대 코리안 키위 목사인 필자와 커피 문화와 역사를 찾아가고 있는 좌충우돌 바리스타 청년들과의 가상 대화로 풀어가 보도록 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구석구석 살펴보면 세계 역사와 교회사, 인문학, 신학, 종교개혁, 또는 글로벌 미션과 목회상담/영성신학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필자는 지난 20여 년간 음악으로, 또한 최근 10여 년은 서핑과 같은 젊은 문화를 통해 선교해 왔다. 커피는 이 같은 문화선교의 다른 도구들과 비교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지 싶다. 2015년과 16년 두 해 동안 이곳에 기록했던 청년문화선교의 시즌 3정도가 될 것 같다.
지난번 음악과 서핑, 그리고 신앙을 중심으로 이야기 나눴던 글들을 살펴보면 이번 커피와 신앙 이야기는 2023년 현재 청년들에게 나누는 우리 가족의 현주소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어쩌면 소설처럼 아니면 일기처럼 술술 적어 내려가는 글에는 우리의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더불어 눈물도 웃음도 감동도 깨달음도 있기를 바래본다.
개인적으로는 문화 선교의 일환으로 커피와 함께 살아왔던 지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겠다. 뻔한 이야기들도 있겠고 새롭게 느껴지는 이야기들도 있겠으나 결국 우리 뉴질랜드 한인 크리스천들의 울고 웃던 이야기들로 채워질 것이다.
커피와 신앙 이야기를 가상 인물들의 대화라는 플롯으로 풀어가는 이유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첫째는 글을 가볍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다. 홀로 하는 독백에서 시작하여 두 명 이상의 등장인물들이 함께 커피와 신앙 이야기를 나누는, 마치 누에를 따다 실타래를 만들 듯 슬슬 감아가 보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된 커피와 신앙 이야기를 삶에 적용해보고 싶다. 이것은 마치 전통 베틀장에 앉아 비단으로 쓸 명주를 감은 물레를 끼우고 독자와 주변의 가족을 포함한 이웃들에게 저고리,목도리,명절의 한복으로 만들어 나도 입고 이웃에게도 나눠주자는 이야기다.
삼베면 어떻고 무명이면 또 어떠한가.비단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쓰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던가.다만 애도하는 자리에 잔칫집 옷을 입고 가서는 덩실덩실 춤추고 있는 꼴이라면 비난을 면치 못한다.
우리의 신앙도 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신앙이든 커피든 문화선교든 스스로의 환경에 맞게 지혜로이 응용하여 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묶어 나아갈 것이다. 딱 그 단순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진주가 서 말이나 있는데 어지러이 두어서 되겠는가! 다듬어 보배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가 들은 그 많은 신앙의 이야기들을 꿰어서 값진 보배가 되게 하고 돼지에게나 던져 밟히고 상하는 일이 없게 해야겠다.지명과 인물 등의 설정은 모두 상상 속에서 이뤄지지만 그 안의 이야기들은 필자가 경험하고 느끼고 있는 혹은 생각했었던 현대 젊은이들의 세계관 혹은 가치관과 사역 현장 및 사회 흐름에 따른 반영이 주를 이룰 것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들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물론 아래의 내용은 추가 또는 변경 될 수 있다. 바리스타와 커피, 로스터와 바리스타, 커피와 신앙, 커피 볶는 목사, BAM 비즈니스 선교, 커피역사, 선교역사 속의 커피, 커피와 상담, 커피(오롯이, 커피), 그리고 돈이 되는 커피 말고 버림받고 외로운 그 한 영혼을 위한 위로의 커피 등과 같은 내용들이다.
다음은 이러한 내용들에 어울리는 제목과 소제들이다. 근데 왜 바리스타가 된 거야? 어떤 바리스타가 될 거야? 선교면 선교지 비즈니스 선교(BAM)는 또 뭐야? 일하면서 진짜 어려운 상황들이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지금 고민을 얘기해줘 등. 이러한 커피와 그 주변 현대 문화 안에서 우린 올 한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그 나눠지는 이야기들 안에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 각각의 삶과 환경과 현장에 하늘로부터 깨달음과 감동과 도전이 불일듯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2023년 새로운 해를 바라볼 때, 우리의 시작은 어쩌면 아직 다가올 예측 불가능한 어떤 한계를 몸부림치며 달려 나아갈 태산과 같다.또 그 역경과 슬럼프들을 뚫고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 같은 것이다.
그러한 의지는 지혜, 능력, 경험, 영성, 관념, 철학적 사고, 신학적 성찰, 복음에 입각한 성경 중심적 혹은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들이 반짝이는 다윗의 물맷돌과 같으니 어쩌면 우리의 주머니에 가득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우리 주께서 성령의 감화감동의 역사하심으로 모두의 삶과 그 중심인 생각과 마음에 일하여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렇게 전통에 가득한 살과 같이 가죽 주머니에 가득한 물맷돌을 들고 일어나 이 길을 나서본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는 우리가 사는 생활문화 속 우리가 행하는 일거수일투족 그리스도께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영광이 된다면 심지어는 내가 머리를 기르고 자르는 것도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우신 주님을 닮아 가난한 이웃과 버려진 마음들을 품고 아바 아버지 품에 안기게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손에 들고 만들고 가꾸며 빚어가고 싶습니다. 주님 올 한해 그렇게 살도록 인도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내가 마시는 작디작은 150ml 유리잔의 커피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가뭄이든 논밭에 추수를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아이스 믹스커피와 같은 나와 우리가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이 지면의 기도문을 읽고 있는 우리 모든 독자들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