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새 포도주는 새부대에…

마가복음 2장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율법의 형식에 갇힌 자들이 참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하셨다. 나를 지배하는 오래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진실을 깨달을 수 없고 변화에 대해 대처할 수 없다.

양봉 월력으로 보면 뉴질랜드는 다시 새로운 시즌이 시작됐고, 꿀벌들은 열심히 꿀을 따기 위해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꿀박스에 꿀이 가득차야 할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올해 날씨도 작년과 비슷한 것 같다. 아니 더 좋지 않는 것을 느낀다.

올 11월에 비가 많이 와서 12월에 날씨가 좋을 것을 내심 기대했지만, 예상 밖이다. 여름이 점점 늦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오염으로 인해 기후변화가 생겨서 전세계의 해수면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봄과 가을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져 가고 이에 따라서 밀원이 많은 뉴질랜드도 날씨의 변화가 생긴 것은 확실하다. 양봉인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양봉은 1차 산업중의 하나이고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양봉기술에 대한 변화는 그리 많지 않다. 꿀벌에 대한 영양제나 해충에 대한 약제, 그리고 약간의 편리 도구 및 시설만 늘었을 뿐 기초적인 기술은 변화가 없다.

여전히 양봉의 주요 수입은 꿀 생산이고 꿀 생산은 날씨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요즘은 부가가치를 늘리기 위해 로얄젤리, 프로폴리스, 그리고 봉독을 생산하는 농가들이 늘어나기도 하고 2차 생산품을 개발하는 농가들도 많다.

뉴질랜드는 이러한 제품들을 생산하는 과정이 상당히 엄격하고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많은 농가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고 그러기에 발전이 느려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도 이러한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왕벌 생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벌통이 어느정도 규모가 되면 여왕벌 생산을 대량으로 할 생각이다. 꿀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큰 회사들은 해마다 여왕벌을 새로운 여왕으로 바꾸어 준다. 그래야 산란을 많이 하고 꿀을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왕벌 생산은 노동의 강도가 꿀을 생산하는 것 보다는 훨씬 적기도 하다.

꿀이 들어오는 시즌에 꿀박스는 25-30kg의 무게에 달한다. 벌통 한통에 높게는 4층까지 꿀박스가 올라가는데 체격이 작은 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그에 맞는 양봉기술과 변화가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 것이다.

생산과정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아주 오래전에 출판된 책으로 주의 종이 되기 위해 신학교에 다니는 신학도들에게 필수도서인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라는 책이 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할 부분들과 하나님에 대한 소명의식을 다룬 책이다. 목회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된 소명, 즉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인생을 살아가는 여정 가운데서 늘 잊지 않고 삶의 목표가 되어준다.

2022년 5월 섬기던 교회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8년간의 사역을 하면서 눈물과 기쁨으로 함께했던 교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말 못할 무언가가 밀려왔다. 그리고 6월 중순에 아내는 난소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지금이야 수술도 잘되었고 항암치료도 잘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앞이 깜깜해 보였다.

난소암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이고,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이라서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다. 수술 전 여러 번의 응급실행, 입원이 반복되면서 아내도 가족들도 지쳐갔다. 아직도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14살 딸과 6살 아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고, 지금까지 고생만 시킨 남편으로서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 살려 달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님을 비롯 많은 분들의 눈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힘들고 어렵다는 항암치료도 잘 이겨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마음 가운데, 너 그래도 이 길을 갈래? 라는 물음이 왔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저마다 부르신 소명을 끝까지 완주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디모데후서 4장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이 땅에 오신 그 분의 소명을 온전히 이루신 것을 본받아서 우리도 각자,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잊지 않고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그동안 6번의 연재 글을 통해서 보잘것없는 목사의 “어쩌다 양봉”을 읽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비전을 품고 하나씩 이루어 가는 모습을 천천히 지켜보며 기도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끝>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