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당신을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말이지만 너무도 남발이 심해 안타깝게도 그 본래의 귀한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티브이에서 영화에서 손안에 있는 휴대폰에서까지 사랑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흔해 길거리의 구호처럼 아무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남과 여, 부모와 자식, 나와 남 사이의 진실한 사랑이 너무도 아쉬운 이때 문득 오래전 어디에선가 읽었던 누군가의 신음 같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이 생각났습니다.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의 고백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였던 그는 2차대전 때 위생병으로 징집되었다가 독일군에게 붙잡혀 독일 괴를리츠(Görlitz) 근처의 스탈락(Stalag VIIIA)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혹한의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던 그가 신(神, 하나님)에게 부르짖은 말은 “대체 왜 이러십니까”의 절규가 아닌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고백이었습니다. 그가 고백한 ‘사랑’이야말로 부활 뒤에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일 것입니다(요한복음 21장).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메시앙은 어떻게 이런 위대한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바로 그 포로수용소에서 작곡하고 그 수용소에서 3명의 동료와 같이 초연을 했던 그의 유일한 실내악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를 들어보면 고난 속에 사랑을 발견했던 메시앙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Quatuor pour la fin du Temps)’
1941년 1월 15일 독일 동부 괴를리츠(Görlitz)에 있는 포로수용소는 영하 20도의 추위 아래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수용소에 임시로 지어진 천막 무대로 꾸역꾸역 포로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수용소에 잡혀 있던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 수용소에서 작곡한 곡을 동료들과 같이 발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유럽 전역은 독일과의 전쟁으로 포화가 한창일 때였고 메시앙의 조국인 프랑스도 독일의 침략을 받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포로들은 극도로 사기가 떨어져 있었지만 다행인 것은 메시앙이 잡혀있던 수용소의 독일 감독관들은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메시앙이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인 것을 알자 그의 노역을 면제해주고 오선지를 마련해주므로 작곡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마침 이 수용소에는 첼리스트 Etienne Pasquier, 바이올리니스트 Jean Le Boulaire, 클라리네티스트 Henri Akoka가 같이 붙잡혀 수용되어 있었고 이들 모두가 자기 악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메시앙은 이들과 함께 연주할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의 빈 막사에서 그는 추위와 외로움을 견뎌내며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곡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첼로와 클라리넷이라는 특이한 악기 구성의 사중주인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입니다.

요한계시록 10장 1~7절
“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2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3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4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그날, 혹한의 추위와 눈에 파묻혀 있던 수용소 천막 무대에서 울려 퍼진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메시앙이 요한계시록에서 감명을 받아 작곡한 곡이었습니다. 메시앙은 항시 작곡한 곡의 악보 첫머리에 작곡하게 된 영감과 동기를 메모했는데 이 곡의 악보에는 ‘요한계시록 10장의 구절’을 적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많은 종교 작품을 써왔던 작곡가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힘든 포로수용소의 삶 속에서도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빛을 보았기에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고 이런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의 종말은 끝이 아니라 영원으로 가는 출발점
당시의 상황은 수용소 밖이나 안이나 절망적이었습니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게 계속되고 있었고 흉흉한 소문만 들려오는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말’이 가깝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극한의 상태 속에서도 신앙심 깊은 메시앙은 ‘종말’을 종말로 보지 않았습니다. 계시록을 통해 영감을 받은 그에게 ‘종말’은 끝이 아니었고 종말 너머의 약속된 영원으로 가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 속에서 작곡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였기에 이 곡은 모두 8악장이라는 특별한 구성으로 되어있습니다.

8은 성경에서 ‘부활’을 뜻하는 숫자입니다. 6일간의 천지창조 다음에 오는 제7일은 신(神)의 안식일로 성화 됩니다. 7은 완전수(完全數)이지만 무궁(無窮) 속에 연장되어 영원과 부활을 뜻하는 8이 됩니다. 메시앙이 이 곡을 8악장으로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끝나서 사라지는 종말이 아니고 영원의 출발점이 되는 종말입니다.

모두 표제가 달린 8개의 악장은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1악장 수정체의 예배 오전 3~4시 잠 깬 새들의 노랫소리. 하늘의 해탈의 정적을 의미한다.


2악장 시간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을 위한 보칼리즈 힘찬 피아노 소리가 천국을 상기시킨다.


3악장 새들의 심연(深淵) 독주 클라리넷이 노래하는 슬픔과 권태의 때, 심연에 새들이 대립한다


4악장 간주곡 피아노가 빠진 3중주가 선율적으로 새의 소리를 흉내 내며 서로 주고받는다.


5악장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송가 첼로가 길고 느리게 ‘말씀’이신 예수의 영원성을 찬양한다.


6악장 7개의 나팔을 위한 광란의 춤 4개의 악기가 동시에 강하게 공포의 최강음을 연주한다.


7악장 시간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을 위한 무지개의 착란 비현실 속을 황홀히 걷는 중 초인적인 색채의 소용돌이인 착란의 무지개가 떠오른다. 힘이 넘치는 천사들을 둘러싼 무지개이다.


8악장 예수의 불멸성에 대한 송가 이 마지막 악장에 대해 메시앙은 “이 곡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부활한 예수와 인간에 대한 것이다. 느린 템포의 바이올린으로 격양되는 마지막 곡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의 아버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신적인 존재가 천국으로 나아가는 것을 담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최상의 연주
그날, 수용소에서 이 곡을 초연하기 전에 메시앙은 이 곡에 담긴 요한계시록의 의미를 설명한 뒤 피아노 앞에 앉아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연주했습니다. 포로수용소의 음악가 네 명이 갖고 있던 악기들은 모두 조악하였습니다. 조율이 안 된 피아노는 몇 개의 건반이 주저앉아 있었고 첼로에는 세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악기를 가지고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의 연주자와 청중이어서 그랬을까요? 연주가 계속되면서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신비롭고 독특한 음악에 청중은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훗날 메시앙은 이 초연을 회상하며 “그 뒤 어디에서도 그토록 대단한 이해와 관심을 보여준 무대와 관객을 보지 못했습니다.”고 회고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최상의 연주였던 것입니다. 이 곡의 초연이 끝나고 독일군은 메시앙을 석방했고 그는 프랑스로 귀환하여 전후의 방황하는 세대들에게 새로운 음악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는 그에게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Daniel Barenboim이 피아노 연주를 맡은 네 명의 사중주 연주로 들었습니다
Luben Yordanoff/Violin, Claude Desurmont/Clarinet, Albert Tetard/Cello, Daniel Barenboim/Piano의 아주 뛰어난 연주입니다.

벌써 12월이고 곧 연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연말을 끝으로 생각 마시고 다가오는 2023년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으로 생각하시고 기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Happy New Year! <끝>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