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완벽한 육아가 아닌 행복한 육아를 한다

“어머, 다른 집들 보면 아침마다 엄마들이 아기한테 예쁜 옷 입혀주겠다고 난리인데 은율이 엄마는 진짜 재밌는 사람이야.” 산후 도우미 아주머니가 웃으며 한 말이다. 전날 입고 있던 지저분한 옷은 계속 입히면서도, 응가하는 아이 옆에 붙어서 책 읽어주기는 우선인 새댁, 텔레비전도 없는 집에서 동요 대신 클래식 음악 틀어놓기를 좋아하는 나를 보며 아주머니는 늘 ‘희한한 사람’이라고 했다.

손재주도 없고 서툰 새댁인데 아이를 지극히 예뻐하고, 순수하다며 나를 많이 챙겨주었고, 나도 그런 아주머니를 잘 따랐다. 양가가 멀어 육아의 도움을 받기 힘들었던 시절, 남편마저 늦게 퇴근하는 난감한 때에는 당신의 귀가조차 미루고 곁에 있어 주었다.

돌봄 일을 그만둔 후에도 지나는 길에 들러서 밥을 차려주곤 했다. 올해 생일에도 아주머니로부터 은율이 옷 선물을 받았다. 그 분이 왜 옷을 보내주는지 알기에 웃음이 나곤 한다.

완벽할 수 없기에 행복을 마음먹었다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아이와 그저 행복해지자고 마음먹었다. 한때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옷이며 육아템을 야무지게 챙겨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기저귀조차 잘 빠트리고 다니는 엄마다 보니 일찌감치 포기하게 되었다.

“여보 기저귀는?”, “분유?”하는 남편의 말에 “어… 여기 하나 있었는데…”, “아…타 놓고 안 가져왔나…”하는 게 주특기였다. 은율이조차 “엄마, 물 챙겼어?”, “엄마, 기저귀 가져왔어?”라고 묻기 시작하는 해프닝은 일상이 되었다. 남들은 분유 물의 온도까지 맞추어 다닌다는데, 나는 그런 면에서 할 말이 없는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바랄 것이 없었는지 은율이는 까탈스럽지 않은 아기였다. 상온에 탄 분유를 잘도 먹었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잘 잤다. 지하철이든, 예배 시간이든, 교회 소그룹 모임이든 어디서든 잘 적응했다.

추억, 추억, 추억을 쌓자
은율이가 세 살쯤 되던 어느 날이었다. 은율이랑 나들이를 갔다가 버스를 타고 동네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창밖으로 보이는 것을 화제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앞에 앉으신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가 돌아보셨다.

“아기 엄마랑 아기랑 나누는 대화를 들으니까 내가 너무 행복해져요. 아름다운 영화의 필름이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요. 애 키우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하루하루가 낭만적인 순간만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아이 옆에 붙어 있어야 했던 돌쟁이 무렵, 살림도 손에 익지 않은 나는 식사를 못 할 때도 많았다. 배가 몹시 고팠던 터라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햄버거 하나를 사 왔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벗기는 순간, 바스락 소리에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겨우 다시 재우고 차갑게 식은 햄버거를 우겨 넣는데 엉망인 거실과 설거지가 잔뜩 쌓인 싱크대가 눈에 들어오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린아이처럼 거실 한가운데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하루하루가 아까울 만큼 행복했던 육아의 시간이었지만, 비참함이 느껴지는 힘든 순간도 늘 공존했다. 그래서 불가능한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시선만 돌리면 쉽게 잡을 수 있는 행복한 육아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 무렵 찍은 사진들 속 은율이는 대부분 실내복 또는 잠옷 차림이다. 그러나 사진 속의 은율이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행복해 보인다.

은율이가 서너 살 때 단둘이 즐기던 한낮의 데이트는 우리 관계를 단단하게 해주었다. 집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 들고 오전부터 동네 도서관과 공원을 누볐다. 벤치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또다시 뛰어놀았다. 그러다 지루해질 때쯤 되면 박물관, 공원, 과학관 등을 찾아다녔고 시댁에도 들렀다.

몸에 나쁜 것은 잘 먹지 않던 나도 그 무렵은 은율이와 토스트 가게에 종종 갔다. 그런 곳에 엄마랑 가면 어른이라도 된 듯 은율이는 들떠 했다.

어느 날은 문득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는 아이가 다 커버릴 것 같았다. 휴대폰에 담지 못하는 시간 기록을 위해 단골 스튜디오에 가서 엄마 딸 커플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남편을 위해서도 완벽이 아닌 행복한 육아
남편이 먼 곳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출퇴근 시간이 늦어졌다. 아빠와 놀기를 좋아하는 은율이는 저녁 늦도록 잠을 자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일찍 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그저 그 시간을 즐겼다.

특히 여름 밤의 산책은 가장 행복한 기억 중의 하나이다. 산책하면서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아이와 뛰어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은율이는 잠들곤 했다.

아빠와 둘만 저녁 산책을 하다 돌아오기도 했는데, 남편 호주머니에서 은율이와 먹었을 법한 과자봉지를 발견하면 나는 눈을 흘기고 남편은 머쓱해했다.
어느 날 초등 교사인 친구에게 그 일을 얘기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아빠랑 둘이 나가서 간식 먹는 일이 얼마나 재밌겠어? 아이한테는 행복한 추억일 거다. 아빠에게도 그렇고.” 그 조언을 들은 후부터는 웃어넘기게 되었다.

은율이는 밥을 먹다가 잠들기도 하고 내 옆에서 책을 읽다 앉아서 잠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모든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안다. 아이가 바라는 것은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자신이 이미 행복하기에 그 행복을 엄마가 같이 누려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엄마, 이거 봐!”, “엄마 여기 와봐!” 할 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가 눈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자. 아이가 부르는 그곳에 완벽함을 대체하고도 남는 행복이 있다.

아이와의 추억만큼 인생에서 아름다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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