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9월 10일이 추석이었습니다. 타향에서 지내는 추석이지만 여러분 모두 추석 잘 쇠셨는지요? 코로나의 여파가 아직도 끝나지 않아 아쉽게도 이번 추석에는 화요음악회로 모일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모일 수는 없었지만 만일 모였다면 다음과 같이 추석 특집으로 진행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내년에는 꼭 코로나 없는 세상에서 이처럼 화요음악회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제 마음속에서 화요음악회 회원 여러분과 상상으로 같이 꾸몄던 2022년 추석 특집 화요음악회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치 음악회에 참석한 것 같은 마음으로 읽으시며 같이 동요도 부르고 음악도 듣고 시도 읽으면서 저녁 한때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추석(秋夕) 하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나는 것이 가을밤을 밝게 비춰주는 보름달입니다. 까마득한 어린 날에 추석날 저녁이면 가족이 모두 대청마루에 모여 솔잎에 싼 송편을 먹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시절 우리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던 동요가 있습니다. 바로 ‘달 달 무슨 달’로 시작하는 ‘달’(윤석중 가사, 권길상 작곡)이라는 동요입니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달달 무슨 달 낮과 같이 밝은 달 어디 어디 비추나 우리 동네 비추지
달달 무슨 달 거울 같은 보름달 무엇 무엇 비추나 우리 얼굴 비추지”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손과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화요음악회 회원들이지만 이날엔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입을 모아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처음엔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하다가 나중엔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흥겹게 불렀습니다. 여러분도 유튜브의 다음 링크를 클릭해서 같이 들으며 따라 해보시기 권합니다. https://youtu.be/LgSHJXVOnfA
잠깐 동안이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입을 동그랗게 모아 ‘달 달 무슨 달’을 부르고 나자 회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서로 “추석 잘 쇠세요,”하고 덕담을 주고받았습니다. 모두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흘렀고 머릿속으로는 지나간 추억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한 분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지요. 배고프던 그 시절 추수가 끝난 뒤 맞는 추석 명절이 얼마나 좋았으면 이런 말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한 분이 그 말씀을 받아서 다음과 같은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맞습니다. 이제는 풍요의 시대가 되어 그렇게까지 배고프던 시절은 지났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을 잘 둘러보면 우리 주변엔 아직도 응달 속에 힘겹게 살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잠깐 우리말 ‘같이’의 의미를 살펴보면 어떨까요? 조금 전 우리는 쟁반 ’같이’ 둥근 달, 낮과 ‘같이’ 밝은 달이라고 노래하고 또 어느 분은 한가위만 ‘같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의 ‘같이’의 의미는 모두 ‘처럼’이라는 뜻이지만 ‘같이’라는 말은 또 다른 뜻을 갖고 있지요. 즉 ‘함께’와 ‘고르게’라는 의미이지요. 만일 우리’같이’라고 한다면 우리 ’처럼’이라는 뜻도 될 수 있고 또한 우리 ’함께’, 그리고 우리 ’고르게’라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
같이라는 말에 이렇게 좋은 뜻이 있는 것 같이 적어도 한가위에는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모두가 ‘함께’ 그리고 ‘고르게’ 지낼 수 있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이분의 의미심장한 말씀에 모두가 잠깐 숙연해지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추석에 듣는 달의 음악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추석날이니 당연히 달과 관련된 음악을 들어야겠지요. 그래서 먼저 고른 곡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입니다.
베토벤은 모두 32곡이나 되는 피아노 소나타를 남겼는데 그중 가장 인기가 높은 작품 중 하나가 월광 소나타입니다. 특히 1악장의 분위기가 너무도 아름다워 베토벤 사후에 음악평론가 렐슈타프(Ludwig Rellstab)가 “달빛이 비치는 스위스 루체른 호수 위의 조각배 같다”고 표현해서 ‘월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곡입니다.
너무도 유명한 곡이기에 이 곡이 생기게 된 유래에 관한 소문도 많습니다. 베토벤이 산책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눈먼 처녀를 만나 그녀에게 달빛을 소리로 알려주기 위해 썼다는 소문이 가장 유명하고 가슴에 와 닿지만 사실은 아니라고 합니다.
비록 사실이 아니지만 오늘 우리는 추석을 맞아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가 있는 추석 달이 있다고 생각하고 월광 소나타도 베토벤이 눈먼 처녀를 위해 썼다고 믿으며 아름다운 1악장(아다지오 소스테누토)만 듣겠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명장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입니다.
계속해서 달에 관한 음악을 한 곡 더 들었습니다. 달빛(Clair de Lune)이란 곡입니다.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Debussy)의 대표작입니다. 이 곡은 원래 피아노곡이었지만 지금은 관현악으로 편곡되어 연주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 곡을 듣노라면 달빛의 반짝이는 느낌이 우리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드뷔시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의 시(詩) ‘하얀 달’을 읽고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지만 오늘 우리는 ‘하얀 달’ 대신 우리의 보름달을 생각하며 이 곡을 감상하겠습니다. Eugene Ormandy가 지휘하는 Philadelphia Orchestra의 연주로 듣습니다
추석이면 떠오르는 어머님 생각
모두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옛날 어린 시절 달 밝은 가을 하늘 아래 마당에 돗자리 깔아 놓고 온 식구가 한데 모여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 것 같은 편안한 마음과 몸자세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짧은 곡이지만 머리 위에서 달빛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듯 그 아름다운 선율 따라 어딘가로 서서히 발길을 옮기는 느낌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음악이 끝나자 어느 분 하나가 말씀하셨습니다.
“참 좋은 음악이군요. 하지만 추석엔 누구나 마음속에 떠오르는 분이 계시지요. 어머님이죠? 둥근 달보다 더 환하고 다정하게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분이 바로 어머니입니다. 여러분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모두가 박수로 환영하자 그분이 앞으로 나오셔서 나직한 목소리로 정대호 시인의 보름달이라는 시를 암송해 주셨습니다.
동쪽으로 걷는데 산 위에서 환히 웃으며 솟는 얼굴
내 어린 날 벼 베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얼굴
머릿수건을 벗어 치마의 먼지를 털며 골목으로 들어서는 환한 얼굴
온 들의 벼가 넘실대는 얼굴 한 해의 노동이 익어서 돌아오는 얼굴
안타깝게도 우리 화요음악회 회원분들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보름달이라는 시를 들으면서 모두가 가슴 속에서 환히 보름달처럼 웃으며 나타나시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참이나 자유롭게 모두가 어머님 살아계셨을 때 있었던 이런저런 일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오늘 끝맺음은 성경 말씀 대신 찬송가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를 불렀습니다. 다같이 입을 모아 가사를 음미하며 부르는 사이에 돌아가신 부모님도 헤어져 사는 동기들도 그리고 항시 우리와 같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 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와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여러분 모두가 방금 부른 찬송과 같은 매일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