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동안 사람이나 짐승이나 제 새끼를 걱정한다. 하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생명은 살아온 세월의 크기와 무게만큼 나이테처럼 켜켜이 상처의 흔적을 남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본 대로 산 대로 곱씹으며 살게 된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본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살면 그 배신의 아픔으로 평생을 살게 된다. 그 외로움은 뼛속까지 스며들어 마음이 다칠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부모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과 여건 때문에 자녀는 늘 배가 고프다. 결국 아이는 희망원에 맡겨지고 부모는 고단한 삶을 이어가다가 생을 마감하고 만다.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는 돈에 노예처럼 매어 살다가 이미 죽은 생을 몸으로만 이어간다. 달려드는 돈의 가난으로 인해 그 덫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그늘을 이고 지고 살다 보니 보는 사람도 알아버린다.
사랑받지 못한 구석은 감추어도 느껴진다. 그 외로움의 자리는 표가 난다. 빈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늘 관심받고 주목받고 인정받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손 내밀면 잡을 만한 거리에는 언제나 ‘관종’(관심받고 싶은 종자의 신조어)이 있다.
민낯이 드러나 미워도, 싫어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의 관계가 있다. 짧은 시간 동안의 만남이 있기도 하고 더러는 좀 더 긴 시간 동안 인연을 이어 가기도 한다. 그늘의 빚은 쌓여만 간다. 고단한 삶은 모질고 질기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마음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살면서 심장이 뛰는 일을 하면 좋지만, 더 좋고 신나는 것은 심장이 뛰는 사랑을 할 때이다. 사람은 울면 슬픈데 이상하게 아기가 태어날 때 울면 사람은 웃으며 기뻐한다. 이런 아기가 자라 떠나지 않고 곁에 머물러 줄 때 마음이 놓인다.
살다가 죽어가는 순간에 오래된 기억을 펼쳐 들면, 사고와 사건의 지문이 숨겨져 있다. 기억의 미로를 따라가다 보면 상처 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럼, 그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에서 지우려고 한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었던 사실과 진실을 숨기려고 한다.
상처로 얼룩진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눈을 감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가 있다. 누구나 이 땅에서 잘 살았는지 알려면 그 사람의 임종을 통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면 된다.
지나온 삶이 아프고 괴롭고 슬프고 외로워도 모두 가슴에 품고 떠난 사람을 보면서 메마른 가슴으로라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기억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보라.
뻐꾸기가 뱁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떠나더라도 뱁새는 뻐꾸기알도 품어 살린다. 살기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버려져 상처 난 뻐꾸기알 같은 사람을 끝까지 품어 살리는 뱁새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치열하게 살아내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