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이제 하다 하다 못해”

“신학과 학생 맞아요?”
“네, 신학과 맞습니다!”

신학 공부하는 내내 듣던 소리 가운데 하나가
“신학과 학생 맞느냐?”는 소리였습니다.

거룩해 보이지도 않고,
성스럽게(?) 보이지도 않고,
은혜롭게 보이지도 않고,

더군다나 성령충만은 커녕
세상 것으로 충만해 보이는
나의 모습이
영~ 은혜롭지 않은 지
한 번 푹! 찔러 보듯 말을 해봅니다.

그럴 때마다 나 역시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욕을 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것도 성경말씀을 인용해 가면서 말이지요.

“아이고, 지는 얼마나 거룩하고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며 인자하심이 풍부해서?
그래서 성령충만이 철철 넘치시는구만?”

하기야, 신학생이면 신학생답게
좀 은혜롭게 보인다든지,
은혜롭게 보이지 않는다면 좀 거룩해라도 보인다든지,
거룩해 보이지 않는다면 좀 성령충만해 보인다든지……

어느 것 하나 들어 맞는 것 없이
붉은 긴 퍼머 머리 풀어 헤치고
진한 눈 화장에
붉은 립스틱 찐하고 바르고
너풀거리는 옷 걸쳐 입은 내 모습이

그 당시의 거룩하신(?) 분들 눈에는
거룩은 물 말아 어디서 먹었는지 보이진 않고
세상 것으로만 충만해 보였겠지요.

“누가 오고 싶어서 왔나?
우리 아버지만 안 데려가셨어도
절대 절대 안 오지……”

모태 신앙으로 교회둥이로 자란 나는
부모님이 건축하신 교회 첫 부흥회에서 은혜받고
덜컥 주의 종으로 서원했던
일생의 가장 큰 실수(?)로 인해
하나님께 발목이 잡힌 바람에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세상을 등지고
아버지의 병상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버지만 살려주시면 주의 종의 길을 가겠나이다”

교육전도사 시절! 규제가 참 많았습니다.
고향이 이북 개성이신 담임목사님의 요구사항은
제멋대로 자유분방한 나에겐
힘든 요구사항들뿐이었습니다.

머리는 항상 묶을 것!
요란한 화장이나 요란한 옷차림은 안 됨!
옷은 항상 정장으로 할 것!

“아이고, 그럼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 입고
머리는 팍! 올려서 비녀 끼고 다니란 말이여?”

교회 갈 때마다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이 옷 입었다 저 옷 입었다,
립스틱 발랐다 지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도 하도 딱해 보이셨는지
한복집을 운영하시던 집사님을 통해
여름 께끼 개량 생활한복을 서너 벌 맞춰 주셨습니다.

정말 참 내!
이제 하다 하다 못해 한복까지 입히시네요.
그래도 감사하게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는 아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집사님의 성의에 감사해서 동정 없이 리본을 대신한
진보라와 하얀 께끼 개량 한복을 입고
담임목사님의 염원대로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주일날 교회에 갔습니다.

얌전하게 한복을 입고 나타난 아가씨 전도사를 본
교인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21세기 첨단시대에,
그것도 20대 젊은 처자가 얌전히 개량 한복을 입고
턱~하니 나타났으니 놀랄 수 밖에요.

미니스커트, 짧은 반바지가 유행인 시대에
개량 한복을 입고 거리를 걷거나 지하철을 타면
내 주위가 숙연해짐을 느낍니다.
도사님(?)이 타신 줄 알구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는데
개량 한복을 통해 천방지축인 나를
좀 얌전하게 길들이셨습니다.
한복 입고 발차기는 할 수 없잖아요.

지금은, 내 일생의 가장 큰 실수(?)가
내 인생의 가장 큰 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량 한복 입은 내 모습에 반한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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