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북한지역 서구 개신교 선교사의 활동

한국 선교 전초기지 의료 선교, 광혜원 설립
한국에 파송된 개신교 선교사들이 사용한 선교정책 중에 하나는 의료선교였다. 광혜원의 설립으로 초기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에게 한국 선교를 준비할 수 있는 전초기지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 선교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며, 또한 광혜원이 서양 의술의 보급을 통해 왕실과 일반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기독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한국인들에게 심어주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1886년에는 감리교 여선교사 하워드가 한국 최초의 부인병원 보구 여관을 개설하고, 가난한 여인들을 치료해 주었다. 1887년에는 여성들을 위한 의료 사역이 감리교 선교부의 여성분과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현재의 아현동에 ‘시약소’를 개설하여 환자들에게 약을 공급하였다.

감리교 선교회는 서울에 부인병원을 계속 운영하는 한편 인천, 평양, 원산, 공주에도 병원을 개설하여 가난한 대중들에게 서양의 뛰어난 의술을 베풀며 선교에 동참했다.

보건 및 사회사상에 큰 변혁
의료 선교 사역은 한국의 보건 및 사회사상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병의 발병이 음양오행, 풍수, 잡귀와 관련 있는 것으로 믿어오던 한국인들은 공중위생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선교사들이 심혈을 기울인 교육 선교
의료선교 못지않게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심혈을 기울인 것은 교육을 통한 선교였다. 이화학당이 스크랜톤에 의해 1886년 5월에 설립되었고, 6월에는 아펜젤러에 의해 배재학당이, 같은 해에 언더우드에 의해 경신학교가 설립되었다. 평양 대부흥운동을 전후하여 수많은 학교들이 세워졌다. 북쪽 선천으로부터 남쪽 목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고등학교들이 세워졌다.

문서 선교, 한글 성경 간행, 성서공회 개설
문서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한 초기 선교사들은 한글 성경의 간행이야말로 한국 교회의 선교를 위해서는 시급한 과제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리고 정확한 번역, 표준 용어 채택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한국 선교의 실정에 맞는 번역 작업이 추진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888년에 스코틀랜드 성서공회가 부산에, 1895년에 영국 성서공회가 서울에 보급소를 개설하고, 그리고 1895년에 미국 성서공회도 서울을 방문하여 A. A. Pieters를 매서인으로 세워 두어 성서번역 사업은 더욱 활기를 찾았다.

1938년, 개역된 신약전서와 신구약 합본 “개역성경” 발행
초기 한글성경 번역은 개인역–수정역–시험 역본–최종 공인 역본이라는 과정을 거쳐 1900년도에 신약성경 번역을 완료하였다. 이후 1906년에는 재 개역 과정과 수정을 거쳐 1906년에는 한국 최초의 공인 역본 ‘신약전서’가 나오게 되었으며 1910년에 구약 전체의 번역이 완료되었다. 이후 1936년에 구약 개역 작업이, 1937년에 신약 개역 작업이 완료되었고, 1938년에는 개역된 신약전서와 신구약 합본 “개역성경”이 발행되었다.

선교사들은 일반 대중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았고, 대중의 구원에 어울리는 선교 정책을 구현했다. 언더우드가 고백한 것처럼 처음부터 선교사들은 보통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성경 번역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일관된 원칙을 세우고 노력하였다.

초기 성경 외에도 한국 교회 문서 선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찬송가이다. 복음이 우리의 심성을 거쳐야 하듯이 찬양은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정서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1890년대부터 1900년대 초반, 서구 선교사들이 제작한 선교 문서
한영문법, 한영자전, 한영사전: 언더우드, 한국어회화입문, 사과지남, Korean, Grammatical, Forms, 한영 대자전, : 게일, Fifty Helps for Beginners in the Use of the Korean Language, 한국어 기초 : Mrs. Annie L, Baird, Every Day Korean 한국어 교본: H. H. Underwood, Present day English Korean, 한영사전: 게일, An English Korean and Korean English List of Parliamentary, Ecclesiastical and some other terms 의회정치, 교회력 및 각종 용어: W.M. Biard, Korean Tales, 한국인 우화, Chronological Index,연대별 색인, Korea, Fact and Fancy, 한국의 사실, 공상: Horace N. Allen, Everyday life in Korea, 한국 일상생활: D.L. Gifford, Korean Sketches, 한국인스케치(풍물,환경,역사), The Vanguard 선교사역의 환경, 주변여건, 조건들 : James S, Gale, Fifteen Tears among the top-knots 선교초기부터의 선교사역 역사: Mrs.L.H.Underwood, Tommy Tompkins in Korea 한국에서의 미국선교사 자녀의 삶: Mrs.L.H.Underwood, A Decade of God’s Doing at Daiku, Korea, 선교사역: J.E.Adams, The Call of Korea, 선교사역: The Religious of Eastern Asia, H.G.Underwood, The Korea Pentecost, 선교사역: W.N.Blair, Daybreak in Korea,
선교사역 Inside View of Missionary Life `:Mrs.A.L.Blair, The History of the Korean People, 한국인 역사, KMF 원고단행본: Underwood of Korea 선교사역:Mrs.L.H.Underwood, The Korean Church and the Nevius Methods,
네비우스선교사역, Religions of Old Korea, 고대 한국종교: Charles Allen Clark, Korea, the Hermit Nation and Its Response to Christianity, 한국소개: T.S. Soltau,

복음은 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시대적 정황 속에서 문화를 변혁시키며, 문화 전반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하심이 실현될 수 있도록 만드는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복음을 통해 문화와 민족과 국가를 바라보도록 만드는 복음 본래의 특성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 후 북한 주민들에 대한 세계관의 변화를 위해 문서선교의 전략은 필수적이다.

1900년대 복음 전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선교지 분할
선교 초부터 한국에 입국한 선교사들은 선교의 중복을 피하고 복음 전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선교 지역을 고려하였다.
선교지 분할 협정에 따라 북 장로교는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과 경상북도 지역을, 캐나다 선교회는 함경도 지역을, 호주 선교회는 경남지역을, 남 장로교는 전라도 지역을, 북 감리교는 서울과 충청 일부와 평양 지역을, 남 감리교는 경기북부와 개성과 원산 지역을, 영국 성공회는 인천과 서울을, 침례교는 강원도, 성결교는 서울과 평안도, 구세군은 서울에 선교구역을 정하였다.

선교지역 가운데 놀라운 부흥을 보였던 함경남도 원산
함경남도 원산은 선교지역 가운데 놀라운 신장을 보였던 선교지역이었다. 1903년 원산 부흥운동의 발원지 원산은 개항장이었던 관계로 여러 선교회에서 점거하려 하였다.

당시에 원산항은 외국의 상선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한 가장 부요하고 번영한 항구 도시였다. 이 때문에 여러 선교회가 일찍부터 관심을 가져온 선교지역이었다.

이곳에 첫 세례가 시행된 것은 1894년 8월이었으며, 원산 지역 기독교인들은 일찍부터 조상 숭배를 반대하고 복음과 일치된 삶을 강조하며 그것을 실천에 옮겼던 지역이었다.

만주 지역
1892년 John Ross가 북 장로교에 자신에 의해 시작된 선교 사역을 인계 맡을 것을 요구해 왔고, 한국 교회는 독노회가 조직되면서 이곳 선교에 관심을 가진 후 1924년 이전까지 장로교 총회가 이곳 선교지를 관할하다 그 후 감리교와 선교지를 분할하여 선교를 하였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