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명령하지 말고 대화하라

배우 최수종 씨가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자녀 교육법을 공개했다. 그의 비법은 바로 자녀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이었다.
반말을 따라 쓰지 못하게 하려고 시작한 존댓말이 습관이 되었다고 한다. 호명할 때도 최민서 씨, 최윤서 씨라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거친 말로 대들거나 말대꾸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국민 배우를 통해 들으니 새로웠다.

은율이와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지인의 고민을 소개한다. “이거 식탁에 갖다 놔.”, “색연필 갖고 와.” 같이 남편이 아이에게 명령하듯 하는 말투가 마치 강아지를 대하는 것 같이 들려 불편하다고 했다.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와도 잘 놀아 주기에 싸움거리를 만들기 싫어 참는다며 한숨지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쉽게 반말을 하게 된다. 사실 반말과 존댓말 중 어떤 것이 유익한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나도 아이에게 반말을 훨씬 많이 한다.
하지만, 최수종 씨처럼 존댓말까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명령어만큼은 자제하는 게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그 지인에게 먼저 남편과의 대화 방식을 돌아보면 좋겠다고 했다. 최수종 씨는 아내 하희라 씨 와도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바쁘다 보면 남편에게 부드럽게 부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바쁘게 외출해야 할 때, 또 한창 정신없던 아이의 갓난아기 시절에 그랬다. 남편은 이해심이 많은 편이지만 나의 말투가 반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다짐해 본다.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그리고 딸에게 존중의 언어를 쓰기로 말이다.

~까 ~어때? ~할래?
존댓말을 자주 쓰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쓰는 말투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는‘~까?’이다. 카페에서 원고 작업을 하는데 은율이가 이모와 함께 왔다. 엄마가 조각 케이크를 사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맛있게 케이크를 먹고 집으로 가는 길, 가을 밤바람이 무척 시원했다. 아이는 눈처럼 떨어지는 은행잎들을 보며 신이 나 소리쳤다. 나도 그렇게 많은 은행잎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건 아빠 은행잎, 이건 엄마, 이건 은율이”하며 조그마한 손에 은행잎을 가득 쥐었다. 나는 “은율아, 저기도 예쁜 은행잎 있네. 주워 봐.”라고 하려다가 멈칫하고 “저기 예쁜 잎 주워 볼까?”라고 했다. 명령어가 나오려고 하면 내가 잘 쓰는 말투는 “~까?”이다. 은율이는 엄마도 주워 보라며 성화다.

한참을 노는 은율이에게 “인제 그만 가는 거 어때~?”라고 물어보았다. 그렇다. 둘째는‘~어때?’이다. 은율이가 세 살 무렵부터 “우리 인형놀이 하는 거 어때?”, “엄마, 우리 곰 잡는 놀이하는 건 어때?”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을 보며 그것이 내가 자주 쓰는 말투이고 은율이가 이를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율이는 조금만 더 줍겠다며 그곳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았다.

나는 은율이를 업고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걸어왔다. 은행잎을 쥔 손으로 엄마 목까지 안으면 힘들 것 같아서 “은행잎 엄마 줘.”라고 하는 대신 “은행잎 엄마 줄래?”라고 했다. 마지막은 바로“~래?”이다.

“~까?” “~어때?” “~래?” 이 세 어말어미만 써도 대화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존댓말이 어렵다면 청유형과 질문을 던지는 화법부터 시작해 보자. 사랑스러운 엄마와 딸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통하는‘구나 구나’매직 워드
명령어는 대화를 닫아버린다. 한 사람이 명령하고 다른 사람은 따르거나 반항을 하는, 일방적인 형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청유나 물음, 또는 공감하는 말은 열려 있다. 상대방이 계속해 말할 수 있게 해준다.

그중에서도 “구나”의 말투는 자녀를 키우는 분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매직 워드이다. 존중과 배려의 육아로 유명한 푸름 아빠 최희수 씨에게 어느 날 아들인 푸름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빠, ‘구나, 구나’ 그 말 좀 그만해요!” 얼마나 자녀에게 그 말을 많이 쓰셨으면 아들이 그런 말을 했을까?

사실 ‘구나’라는 말은 상담학이나 대화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익히고 가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심리 상담학을 필드에서 배우는 일과 같다. 아이의 마음을 읽고,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도록 언어로 표현해 주고, 또 나의 마음이 아이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구나’ 용법은 자녀와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매직 워드이다.

첫째는 공감의 “구나”이다. 은율이는 잠잘 때 무섭다는 말을 자주 한다. 미등을 켜둔 방에서 내 팔에 안겨 “엄마, 먼저 자지 마.”라고 한다. 쓰러질 것처럼 피곤할 때 아이의 그런 감정에 공감해 주기가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작은 아이가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하면서 “깜깜해서 무섭구나. CD 틀어줄까? 들으면서 잘래?”라고 묻는다.

둘째는 의도를 읽어주는“구나”이다. 아이들은 실수를 많이 한다. 잘해보려고 하다가 야단을 맞기도 한다. 아이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의도를 모른 채 야단치면 “엄마 도와주려고 한 건데!”라며 제법 자기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며칠 전 햄스터가 케이지를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나는 탈출한 것도 몰랐는데 눈이 밝은 은율이가 “피아노 앞에 햄스터다!”라며 소리쳤다. 은율이는 먼저 달려가 햄스터를 잡으려다 놓쳤다. “엄마가 먼저 잡게 놔두지 그랬느냐?”라고 나무랐다. 혹시나 어디 갇혀 굶어 죽기라도 할까 봐 예민해져 아이를 탓한 것이다.

사실 은율이가 먼저 햄스터를 발견했고, 좋은 의도로 한 것인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은율이가 빨리 구해주려고 한 건데 엄마가 몰랐구나. 정말 미안해.” 다행히 햄스터는 잠시 후 나왔고 나는 내 말투를 돌아보게 되었다.

은율이가 마트에서 사 온 짐을 혼자 풀다가 밀가루를 쏟거나 치즈를 찌그러트릴 때가 있다. 그럴 때 “엄마 도와주려고 그랬구나.”라고 하면 내 마음도 가라앉는다.

셋째는 칭찬의 “구나”이다. 아이를 관찰하다가 구체적인 칭찬 거리가 있으면 아낌없이 칭찬한다. 어느 날 저녁 은율이와 아빠는 서로 탁자 맞은편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여보, 은율이 그림 좀 봐! 토끼를 거꾸로 그렸어. 아빠 보라고 거꾸로 그렸네.”

상대방을 생각해 거꾸로 그림을 그려준 은율이를 마음껏 칭찬해 주었다. “은율이가 상대방을 생각하는 맘이 너무 기특하고 예쁘구나.”

엄마가 되니 공부할 것이 너무나 많다. 먹거리 공부, 심리 공부, 신체 발달 공부, 그리고 돈 공부도 해야 한다. 결혼 전의 심플한 삶과는 달리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고 아이를 낳게 되니 더욱 세심 해져야 했다.

이 많은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엄마의 말 공부인 것 같다. 공부는 기초가 중요하다. 명령어부터 청유형이나 의문형으로 바꾸고 그다음에 “구나” 용법을 사용해 보면 어떨까? “엄마, ‘구나, 구나’ 좀 그만해요!”라는 아이의 행복한 투정을 듣고 싶다

엄마의 말투만 바꾸어도 아이는 훨씬 성숙하게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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