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형통한 사람 요셉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창세기 39:2)”

“복(福)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복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기독교를 기복 신앙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복을 주시고”(창세기 1:28)이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소유나 물질의 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존재의 복, 즉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의 복은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변하거나 제한되지만 사람이 복되면 환경을 뛰어넘어 상황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소유의 복 존재의 복
그래서 시편 1편에도 ‘복 있는 사람은 악한 자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한다’고 하며, 예수님께서도 팔복을 설명하실 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며 참된 복이란 물질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의 대표라면 요셉을 꼽을 수 있다. 그를 축복의 또 다른 표현인 ‘형통의 대명사’라고 부르고 싶다. 창세기 39장을 펼치면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 팔려 노예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나 색동옷을 입고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환경에서 색동옷이 찢기고 손발에 밧줄이 묶인 채 남의 집에 종살이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만약 환경이 좋은 것을 복이라고 했다면, 요셉을 절대로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은 이 상황에 처한 요셉을 형통한 사람, 즉 복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셉이 처한 환경은 최악이었으나 요셉이 형통한 사람이 되니, 그의 범사가 형통하고(창세기 39:3), 그로 말미암아 그가 속한 가정과 모든 소유에도 하나님의 복이 미치게 되었다(창세기 39:5).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형통하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된다. 그가 복되면 그를 통해 축복이 유통되게 되는 것이다.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이 하면 잘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하면 잘못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형통의 숨겨진 의미
여기서 형통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의할 필요가 있는데, ‘막힌 것이 뚫리는 것’을 의미한다. 고속도로에 뚫려있는 터널이 형통을 잘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여호수아 1장 7절에 “네가 형통할 것이요 네 길이 평탄할 것이다”라고 할 때 형통은 가로막힌 산이 뚫리는 것이요, 골짜기에 다리가 놓아지는 것이 평탄이다. 환경적으로 아무런 어려움이나 장애물이 없는 것이 형통이나 평탄이 아니다. 요단강이 도도히 흐르고, 여리고성이 떡 버티고 서 있어도 강 사이로 길이 나고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이 평탄이요, 형통이다.

요셉이 형통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환경이 아무런 걱정, 근심 없는 편안한 상황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먼 이국땅에서 노예가 되고 그것도 모자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살길이 생기고, 왕의 앞에 설 수 있는 지름길이 뚫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임마누엘과 코람데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형통한 사람, 즉 복된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창세기 39장을 잘 읽어보면 형통한 사람이 되는 두 가지 조건이 나온다. 2, 3절에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형통한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많이 배운다고,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한다.

이것은 임마누엘(IMMANUEL)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요셉은 최악의 환경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범사가 복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모든 사람에게로 흘러가는 복의 유통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약속은 신구약을 관통하는 변함없는 약속이다.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확신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함께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창세기 39장 9절에 보면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요셉을 유혹하여 동침하기를 요구할 때 하나님 앞에 이 큰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며 그 유혹을 뿌리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요셉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그 앞에서 자신을 지켜내었다.

이것을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믿음의 자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형통하게 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코람데오(CORAMDEO)의 신앙이다.

요셉은 ‘임마누엘의 약속’과 ‘코람데오의 신앙’으로 형통한 사람이 되어 그를 통해 이스라엘이 큰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큰 민족을 이루는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물질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요셉의 형통함에 대해 영적인 눈이 열린다면 믿음으로 이 시대를 역류하여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큰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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