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라

제목을 보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인정, 존중, 사랑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받고 싶은 것이다. 햇수로 5년 째인 육아를 돌아보니 이는 나의 육아 좌우명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에 이르는 공통된 방법은 ‘공감’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불안함을 줄 때도 있었다. 버릇없이 자라는 것은 아닐까? 나중에 애 잘못 키운 엄마라는 말을 듣는 것은 아닐까? 제아무리 유능한 교육전문가라 해도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자식을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네 살 무렵, 은율이는 새벽까지 책을 읽다 잠들어 늦게 일어나곤 했다. 기관도 다니지 않고 엄마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산책하는 등 여유롭고 느긋한 삶을 살았다. 그런 우리를 보며 주위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 나중에 학교 갈 시간에 안 일어나면 어떡할 거야?”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어쩌지? 아이랑 그런 문제로 다투고 싶진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편이 나의 교육관을 지지해 주었고 책과 더불어 자라나는 은율이의 변화를 보며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육아 동지가 나를 인정해 주었기에 나 역시 은율이를 인정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아이의 욕구는 발달과정에 필요한 것이며 그 욕구 가운데 부정적인 것은 없다는 전제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른이 되면서는 점차 외부적 요인에 의해 내면화된 필요가 뒤섞인 욕구를 가진다. 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욕구에 충실하다. 그래서 “내 꺼야!”라고 외치는 세 살 아이에게 “왜 이렇게 이기적이니?”라고 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가 된다.

아이는 소유 개념을 형성하는 중이다. 원형질 인간인 아이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 신기해 이 무렵 육아서를 많이 읽었다. 주로 가족이 자는 새벽 시간에 독서에 몰두했다. 육아에 지쳐 졸음이 쏟아져도 내 사랑하는 아이에 대해 알기 위해 밑줄을 그어 가며 탐독했다.

덕분에 은율이의 짜증과 찢어질 듯한 울음에도 웃는 낯으로 꼭 안아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아이의 마음을 남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울음소리에 예민하던 남편도 점차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은율이를 키우며 참 잘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아이가 울 때 윽박질러본 적이 거의 없다. 미운 네 살, 다섯 살 같은 단어는 우리 집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딸과 단단한 관계가 형성된 남편은 아이의 마음을 곧잘 읽을 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은율이는 아빠랑 단둘이서 노는 게 더 좋다고 말할 때도 있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초반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일정 궤도에 오르면 육아가 갈수록 쉬워진다.

감정을 존중받으면 공감 능력이 커진다
은율이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인격 대 인격으로 대화할 날을 늘 그려보았다. 딸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딸은 엄마의 친구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 부부는 갓난아기 은율이에게 책과 시를 읽어줄 만큼 인격체로 여겼다. 하지만 남편이 출근한 뒤 말 못 하는 아이와 단둘이 있으면 가끔은 외로웠다.

은율이가 15개월 무렵이었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내 오른쪽 옆에서 은율이는 유아 식탁 의자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발라준 생선 살을 내 밥그릇에 얹어 주는 것이 아닌가! 울컥했다.

아이와 둘만 남은 집에서 느꼈던 외로움에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에 가슴 뭉클했고, 비로소 인격체로 발돋움해 가는 은율이를 확인하며 감격했다.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갓난아기 은율이 옆에서 아이의 반응에 늘 귀 기울였다. 자신의 말을 엄마가 듣고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작은 옹알이라도 하면 받아주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과하다 싶을 만큼의 리액션을 해주었다.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보니 멀미가 날 것 같은 때도 있었다.

그런 노력 때문이었는지 은율이는 또래보다 훨씬 일찍부터 정확한 발음과 다양한 어휘로 말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인데 발음이 이렇게 정확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했다.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말조심을 했다. 물론 나도 많은 실수를 했다. 공감은커녕 “엄마 피곤한데 왜 자꾸 그래!”, “배고프다고 해서 밥 차려 놨더니 먹지도 않고!!” 하면서 그릇을 개수대에 처박아 버린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엄마의 사랑을 잃는 것이 무서워 풀이 죽은 아이에게 사과하며 실수를 무한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괜찮아. 엄마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라고 격려해 주었던 생선 사건 이후로도 은율이는 나를 여러 번 감동시켰다.

최근에 은율이는 새끼를 밴 구피 한 마리를 작은 어항에 따로 분리해 주었다. 얼마 후 어미가 보이지도 않는 좁쌀만 한 새끼를 낳았을 때도 이를 처음 발견한 것은 은율이었다.

다음 날 집에 놀러 온 이모에게 은율이는 새끼 구피를 자랑했다. 이모가 새끼들 생일파티를 해 주자고 하자 은율이는 이렇게 말했다. “물고기에게도 파티 해주자. 아기 낳은 거 축하한다고.” 친정 언니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뭉클한 미소를 지었다.

밤에는 새끼 낳기 전까지 잠시 분리해둔 어미 물고기를 어항에 넣어주며 “엄마 물고기가 갑자기 물고기들이 많은 데 들어가면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라고 하기도 했다. 은율이는 아직 숫자 세는 것도 서툴고 아는 글자도 몇 개 되지 않지만 공감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고, 그것이 참 감사하다.

아이는 엄마의 소유가 아니다
30대 중반 뉴질랜드에서 YWAM이라는 선교 단체에서 진행하는 가족상담학교를 할 때였다. 그곳의 공기 냄새가 마치 어제 머문 듯 생생하다. 베이스캠프의 마당에는 숙소들이 스머프 마을처럼 모여 있었다. 내 방 옆에는 온유한 뉴질랜드인 스태프 노부부가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남자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곡괭이와 여러 도구로 주변을 열심히 가꾸던 그분은 자신을 은퇴한 교사이며 ‘스튜어드’라고 소개하였다.

이름이 스튜어드인 줄 알고 배가 산으로 가는 대화를 하는 중에 이를 눈치챈 그분은 베이스에서의 임무가 steward 즉, 청지기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얼마나 자랑스럽게 말씀하는지, 영문학 전공자로서 스튜어드라는 단어를 모를 리 없던 나에게 그 단어는 완전히 새롭게 와 닿았다. 넓은 선교단체 부지가 자신의 것이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기쁘게 가꾸는 모습은 청년처럼 싱그러웠다.

아이를 키우며 7년 전 이 일을 떠 올릴 때마다 청지기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겼다. ‘청지기의 마음가짐’, 바로 그것이 치우치지 않는 양육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지기’란 주인이 맡긴 것들을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는 위탁관리인을 말하는 성경적 표현이다.

사랑으로 포장된 욕심이 느껴질 때마다 청지기란 단어를 떠올리며 마음을 고쳐먹곤 했다. 은율이는 나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귀한 존재다. 그 스태프 할아버지처럼 나 역시 딸의 청지기이다.

딸의 삶에서 선한 것들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성실한 청지기 엄마 역할을 하고 싶다. 아이가 내 소유가 아님을 기억하며 귀한 손님 대하듯 청지기의 사랑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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