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제3의 생명체가 부서 사역을 맥을 추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제3의 생명체는 무엇일까요?
이것을 우리는 ‘떨태기 부모’라고 부릅니다. 삼태기 혹은 망태기 아닙니다. ‘떨태기 부모’입니다. 뜻은 “떨궜다 태워가는 부모”라는 것입니다.
떨태기 부모는 다음세대를 신앙으로 양육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이거 안하면 다음세대가 몰락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언제 알까요? 주일 아침에 압니다. 주일 아침에 떨태기 부모는 말합니다.
“다음세대여 일어나라”, “어서 옷 입고, 어서 밥 먹고, 어서 차에 타야지?”
떨태기 부모는 교회 와서 막내는 유아유치부, 둘째는 유초등부, 셋째는 청소년부에 떨궈 놓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오전예배를 드립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떠드는 애가 있습니까? 장난치는 애가 있습니까? 코 파는 애가 있습니까? 방귀 끼는 애가 있습니까? 어른들끼리 모여서 우아하게 앉아서 어른들만의 표현으로 들으니 정말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어른들끼리 예배하고, 어른들끼리 교제하고, 어른들끼리 밥 먹고, 어른들끼리 공부하다가 다 끝납니다. 주일 오후 3시가 됩니다. 집에 가야 합니다. “어? 우리 애들이 어딨지?”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 로비와 교회 주차장에 있습니다.
애들을 부릅니다. 차에 태웁니다. 그리고 교회 역사상 유래가 없는 해괴한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부서사역이 생기기 전인 60년 전에는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오늘 뭐 배웠니?” 그 전에는 이런 질문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함께 예배드렸으니까요. 부모세대와 다음세대가 함께 예배드리고 말씀들었으니까 그런 질문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늘 뭐 배웠니?” 라는 질문에 막내가 말합니다. “오늘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서…” 부모가 말합니다. “어, 그거 알아. 골리앗 마빡 깨졌지? 내가 알아.”
둘째가 말합니다. “사무엘이요, 말씀하옵소서. 듣겠습니다.” 부모가 다시 말합니다. “아 그래? 근데 나는 사무엘이랑 다니엘이랑 늘 헷갈리더라. 음 좋아. 첫째 너는?”
첫째가 말합니다. “어, 바울이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갔는데요.” 부모가 말합니다. “아, 3차 전도여행? 그래? 바울이 그렇게 했데? 아빠는 뭔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모두가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들은 바쁩니다. 이민 생활이 절대로 만만치 않습니다.
이 나라는 일하지 않으면 살기 쉽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가 시키는 것이고, 부족하면 애프터 스쿨에 보내면 됩니다. 부모들은 열심히 돈 벌어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면 됩니다.
신앙 교육은 어떨까요? “뭐 우리 전도사님, 목사님들이 기가 막히게 설교 잘 하시는데. 우리 부모들이 신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사례비까지 드리면서 그분들을 모셨는데 그분들이 하셔야죠. 굳이 부모까지 나서서 그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일주일 동안 아무 일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더 바쁩니다. 학교가고 애프터 스쿨에 가고 나름 놀다보면 하루가,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부모도 일하고 와서 지친 몸을 달래며 나름의 휴식 시간, 취미 시간 갖고 TV, 인터넷 검색하다 보면 시간이 없습니다. “무슨 부모가 애들에게 신앙을? 에이,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보면 주일이 옵니다. 주일이 얼마나 빨리 오는지, 돌아서면 주일입니다. 자, 주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떨태기 부모는 다음세대를 일으켜 세우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일어나야지, 교회 가야지?”, “니가 교회가지 않으면 어디서 말씀을 듣겠니?”, “어서 일어나, 어서 차에 타”, “주일학교 전도사님이 너를 위해 말씀을 잘 준비하셨단다. 어서 교회가자. 이거 안 들으면 죽어. 어서 교회 가야지.”
그래서 교회 가서 애들을 떨굽니다. 막내는 유아유치부, 둘째는 유초등부, 첫째는 청소년부. 그리고 어른들끼리 예배하고, 어른들끼리 밥 먹고, 어른들끼리 목장하고, 봉사하고, 그리고 오후3시에 만나서 차에 태웁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오늘 뭐 배웠니?” 그리고 일주일간 아무 일도 없습니다. 떨태기 부모는 자기 자녀를 신앙 교육할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신앙교육은 교회학교에 보내면 저절로 일어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떨태기 부모는 신양교육과 기독교 신앙전수 책임에 대해 주일학교 사역자인 교회교육 전문가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이 사명을 방관, 방목, 방치하는 오늘날 나름 열심 있다는 크리스천 부모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전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평상시에 살면서 믿음의 부모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믿음의 부모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일주일 내내 보여주었던 부모가 있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부모들과 함께 예배하고 말씀 듣고 성경 배우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예배드리고 말씀 듣고 교제하는 이 한 번마저도 부모 세대와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살아가고 자기들끼리 예배하고 공부하는 극단적인 단절과 방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 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주일학교 교사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주일학교 교역자들에게 문제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전도사님이 경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멋들어진 교육 시설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교회 프로그램이 재미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부모 세대가 어떻게 믿는지를 볼 수 없고, 부모 세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볼래야 볼 수 없는 극단적 단절과 방임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가 답이 아닙니다. 누가 이런 말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학원, 학교가 답이 아닌가요?”, “맡겨서 잘 된 애들도 있지 않습니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즘 교육이 어떻습니까? 사실 교육이 아니라 입시를 배운 아이들이 정작 입시를 통과하면 공황상태에 이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살고 어떤 것을 위해 살지에 대해 보여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와 학원에 가둬두었으니까 말입니다.
청소년 자살률은 계속 올라갑니다. 지난 15년간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언제 자살을 많이 하는지 아십니까? 입시 앞두고? 입시 끝나고? 아닙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끝나고 자살합니다.
“내가 이러려고 대학에 왔나?” 지난 20년간 그렇게 고생해서 입시를 통과했더니 확정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것입니다.
몇 년 전 SBS 스페셜에서 ‘대2병’에 대해서 방영했습니다. 수능 만점 맞아서 서울대 간 아이가 대2병에 걸린 것입니다. “나 왜 살지? 나 뭐하는 거지? 나 어떻게 살아야 하지?”
살면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고 보여주지 않아서 인생의 공황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수능 만든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수능 만든 사람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합니다. 군대 가면 인간 된다더라. 그런데 뉴질랜드는 군대도 가지 않습니다. 한국 엄마들이 아들 손을 잡고 논산훈련소에 데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교관에게 맡깁니다. “우리 아이 잘 맡아 주세요. 남자 만들어 주세요. 사람 되게 해 주세요.”
교관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이 20년 동안 안 된 일을 내가 어떻게 몇 개월 동안에 남자로 만들겠습니까?” 어떻게 군대 간다고 사람이 되겠습니까?
평생 사람 되어가는 일이 어떻게 기관에 맡긴다고 되겠습니까? 신앙은 더더욱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삶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마주보고 칠판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은 뒤통수보고 쫓아가는 것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모세대와 나눠지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가?
“네. 위험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