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

당장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평탄할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갈 때 삶에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우리는 당황하고 긴장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현실의 어려움이 닥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인정하면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을 명하신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하라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분의 명령에 따랐으니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평탄한 길로 인도하실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평탄한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출애굽기 13:17-18)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가까운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라고 일컬어지는 지중해를 따라 뻗어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이미 도시가 발달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교통로였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고생을 하지 않고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홍해의 광야 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으로 가기에 거리도 멀었고, 장애물도 많았습니다. 홍해 바다를 건너야 했고 사막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전권을 주고 네가 알아서 가라고 했다면 결코 그 길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길로 인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멀고 험한 길로 인도하신 데에는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먼 길, 고달픈 길, 위험한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 길이 최선의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도하신 광야 홍해 길은 어떤 길이고 왜 좋은 길이겠습니까? 17절 하반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먼 길로 돌리신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지중해를 따라가는 길에는 도시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곳곳에 이미 블레셋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길을 200만 명의 사람들이 행진해 갈 때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환영할 리가 없습니다. 분명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강력한 무기로 장착한 호전적인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이제 막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겁에 질리게 될 것이고 모두 도망가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이 벌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형편을 아시고 다른 길로 인도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은 고달픈 광야 길이요, 시간이 더 걸리는 먼 길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길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그 길이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고난이 닥치고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진행이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당장에는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가 그 고난으로 인해 신앙의 중심을 잡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면 그 길은 우리 인생의 최선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은 빠른 길과 바른 길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편한 길’이나 ‘빠른 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편하거나 빠른 길이 무조건 바른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길은 편하거나 빠른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만일 블레셋 길로 가면 블레셋과의 전쟁을 이기지 못하고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블레셋은 이미 이스라엘보다 고도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생을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이 화려한 블레셋 문화를 접하게 되면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냥 거기에 주저앉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블레셋 사람의 길은 얼핏 보면 가나안 땅을 가는 가장 빠른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른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이 쉽고 빠른 지름길을 제쳐 놓고 홍해로 향하는 먼 길을 가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세가 아무리 백성들에게 설명을 해도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납득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백성을 친히 인도하신다는 분명한 사인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인이 무엇입니까? 구름기둥과 불기둥입니다. 하나님은 매 순간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불순종해서 문제이지, 순종만 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안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것만 알고 있지 명확히 어떤 길이 준비되어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1년 후의 일이나 10년 후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걸음걸음을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집회를 인도할 때마다 항상 찬양으로 그 집회를 돕던 킴윅스라는 사역자가 있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이런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할 때 내 앞에 무엇이 있다고 늘 확인해 줍니다. 지금 1m 앞에 돌이 있어요. 계단이 있어요. 조심하세요.”

자기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천 미터 앞에, 2천 미터 앞에 무엇이 있다고 인도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도 자기의 한걸음 한걸음 앞을 인도해 가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녀가 백 미터, 천 미터 앞을 알지 못해도 1미터 앞을 인도해 주는 사람을 믿고 나아갈 때 안전한 길을 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앞으로 우리에게 벌어질 일을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결국 안전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없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식으로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십니다. 당장에는 주님이 제시하는 그 길이 고난의 길이고, 돌아가는 길 같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살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가장 바르다는 것을 믿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장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욕심에 미혹되어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뿐이지 순종하기만 하면 반드시 좋은 길로 갈 뿐 아니라 결국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세상의 빠른 길, 편한 길 찾아 헤매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진정한 지름길이 없습니다. 당장에는 멀고 험해 보여도 그 가운데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우리를 안전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힘든 길을 가도 결국 승리하는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천국 가는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녀로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믿고 순종하며 오늘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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