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아이에게 억울함, 분노가 쌓이게 하지 마라

얼마 전 카페에 앉아있는데 학원 선생으로 보이는 여성 셋이 내 근처에 있었다. 한 여성이 버릇없는 학생과의 일화를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길래 본의 아니게 대화 내용을 듣게 되었다.

“요즘 애들 핸드폰 보면 엄마 욕이 진짜 많대요. 딸 핸드폰에 자기 욕이 너무 많아서 어떤 엄마는 기절했다잖아.” 그 문자 내용을 인용했는데, 듣기 민망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이 무슨 억울함과 분노가 그렇게도 많아서 자기 부모에 대해 험한 욕을 주고받는단 말인가?

엄마들은 분명 그 시간에도 자식 잘 되라고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을 터였다. “엄마, 엄마!” 하며 귀엽게 따라다녔을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없이 귀엽던 아이가 상스러운 욕을 해대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된 억울함 같은 감정 때문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입사한 일터에서 오해와 갈등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며 점차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조직 생활이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성실하게 일했는데도 오해가 생기면 분노가 쌓이게 마련이다.

존중받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폭발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엄마 욕을 하듯 직장인들은 상사나 동료 욕을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 때 분노나 억울함을 느낄까? “애가 갑자기 달라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청소년 자녀를 둔 한 엄마는 집을 나가고 싶다는 말도 했다.

“정말 말 잘 듣는 아이였고, 하라는 대로 공부만 했는데 갑자기 학원도 안 가고 늦도록 친구들끼리 돌아다녀요. 아침에는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아요.”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들이 많다. 문제아로 전락해 엄마가 학교에 상담을 가고 자퇴만은 하지 말아 달라며 애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영유아 시절에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먼저 물어보고 싶다. 혹시 아이에게 억울함과 분노를 자주 느끼게 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아이에게 억울함과 분노를 주는 요소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화, 그리고 둘째는 무시이다.

‘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웨인 다이어의『모든 아이는 무한계 인간이다』라는 책을 보면 갓난아이에게 화를 내며 야단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유인즉, 큰소리로 야단을 치면 아기의 마음에 분노가 쌓인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자신에게 향하는 폭력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에도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며 사랑스러운 말로 속삭이는 것이 최고의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이는 스스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양육 환경에 의해 인격이 형성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했으면 한다.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지나치게 소심하고 불안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하거나. 반대로 폭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효리 씨가 토크쇼에서 남편에 대해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시부모님은 금슬이 좋으세요. 남편은 한 번도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못 봤대요. 그러니까 ‘화’라는 것이 남편에게 들어올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라며 남편이 온유한 성품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은율이가 아무리 어려도 은율이 앞에서 남편과 다투거나 남들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토크쇼를 보더라도 이런 부분에 귀가 활짝 열리는 것을 보면 난 자녀 양육에 참 관심이 많은 엄마다.

양육은 착한 아이 만들기 프로젝트가 아니다
‘무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양육을 ‘착한 아이 만들기 프로젝트’ 정도로 이해하는 부모를 만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 부모가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가 내 말을 들을 때이고, 고민의 순간은 내 말을 안 들을 때이다. 어릴 때는 아이의 의견이나 감정을 무시함으로써 그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는데 커갈수록 마음대로 안 된다.

아이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간다는 것이 그분들의 주된 호소인데 아이들이 이상해져 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싫다는 것을 아이에게 억지로 시킨 적은 없는지, 엄마의 스케줄에 맞춘 채 허덕이게 한 적은 없는지, 또는 비교하는 말로 아이를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엄마가 하고 싶은 말도 못 하느냐’, ‘바쁜데 그럼 애가 하자는 대로 다 하라는 말이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가 친구나 다른 성인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자명하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에서도 “조용히 해!”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직장 상사도 직원에게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꾸준히 무시당해온 아이는 똑같은 방식으로 부모를 대할 것이다. 점점 자아가 형성되고 신체적으로도 강해지면서 그동안 당했던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에 폭발한다. 아주 어려서부터 아이를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말을 내내 강조하는 이유이다.

무시라는 것은 단순한 윽박지르는 말만 일컫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앞부분에서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일이 육아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나의 경험을 통해 나누었다. 아이의 의견을 묻고 존중해준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존감과 독립심도 길러줄 수 있다.

오늘부터 아이 대신 선택하는 일을 멈추고 먼저 물어보자. 운전을 가르치고 배울 때는 장모와 사위처럼 ‘대하기 어려운 사람’끼리 하라는 말이 있다. 편한 사이에서는 “어휴 답답해! 그렇게 하면 어떡해! 핸들 줘 봐!” 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절제하지 못하고 화를 낸다. 배우는 사람도 “너한테 안 배워!”라며 차에서 내려 버리기도 한다.

우리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이렇지는 않은 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내가 더 많이 아니까 아이에게 자꾸 화를 내게 되고, 아이와 내 삶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니 사랑한다는 이유로 분노를 포장하기도 한다.

성경책을 읽어주자 미소짓던 갓난 아기 시절

그럼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는 어떤 상사를 가장 좋아하는가? 바로 대화가 잘 되는 상사이다. 대통령 역시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을 온 국민이 원한다. 내가 약한 위치에 있을 때 나에게 친절했던 윗사람을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한다.

아이는 결코 아이로만 머물지 않을 것이며, 차곡차곡 부모로부터 받은 것들을 저장한 후 만기일에 그대로 부모에게 돌려줄 것이다. 그것도 이자까지 붙여서 말이다. 그것이 복리가 가산된 기분 좋은 채권이 될지 변제기가 도래한 숨 막히는 고리사채가 될지는 부모의 선택에 달려있다.

주위의 나쁜 친구 탓도 교육 기관 탓도, 시댁이나 처가의 유전자 탓도 아니다. 반항하기 시작해 걷잡을 수 없는 아이를 보며 쩔쩔매는 부모가 아닌, 어릴 때부터 아이를 존중해 주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자.

“머리 굵어진 아이가 반항하기 시작하면서 쩔쩔매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어릴 때부터 존중해 주어야 한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