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사람이 자기의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 같이 나오지 못할지며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상관하지 아니하면 그를 속량하게 할 것이나 상전이 그 여자를 속인 것이 되었으니 외국인에게는 팔지 못할 것이요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 같이 대우할 것이요 만일 상전이 다른 여자에게 장가들지라도 그 여자의 음식과 의복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말 것이요 만일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먼저 여자에게 속전을 내지 말고 거저 나가게 하라”
(출애굽기 21:1-11)
자유와 평등의 새 세상을 꿈꾸며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이었지만 약속의 땅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출애굽기 21장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노예에 관한 규례입니다.
첫째, 노예제도의 규례
남자 노예의 경우 주인을 위해 6년을 일했다면 몸값을 내지 않더라도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주인의 집에 머무를 수도 있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한 이들은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배고픔을 면하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노예제도는 창조 질서가 아닙니다. 노예라고 해서 생각과 인권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그들이 자유인으로 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7년째가 되면 노예를 해방하되 자립할 수 있도록 넉넉히 베풀어야 합니다(신명기 15:13~14).
남의 딸을 노예로 샀을 경우는 문제가 좀 복잡해집니다. 주인이 아내로 삼으려고 그녀를 노예로 샀지만 금방 싫증이 나서 여자를 내보내려 한다면 몸값을 얹어서 친정으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 그를 이방 민족에게 파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만약 아들에게 주려고 여종을 샀다면 종이 아니라 딸처럼 대해야 했습니다. 또 주인이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맞이한 경우 첫째 아내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아내의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했습니다. 만약 능력이 없다면 몸값을 받지 말고 친정으로 돌려보내주어야 했습니다.
왜 여종의 규례가 이렇게 다른 것일까요?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부모에 의해서 노동력과 성적 노리개로 사고 팔리는 일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여성은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되었고 침묵과 인내와 희생을 강요당했습니다. 성경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 규정을 두었습니다.
둘째, 스스로 노예 된 자
성경은 노예해방의 예외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주인과 아내 와 자식을 사랑하니 나가고 싶지 않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주인은 그를 재판관에게 데려가 법적으로 계약을 맺고 그의 귀를 송곳으로 뚫어 영원한 종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누가 영원히 노예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나 주인을 존경하고 가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스스로 영원한 노예가 되었습니다. 사랑과 자유 사이에서 서슴없이 사랑을 선택하고 자유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사랑의 종이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자유와 해방을 약속받은 7년째 되던 해 그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순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6년 안에 낳은 자식이니 아이들이 얼마나 어리겠습니까? 아내와 자식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뻤겠습니까? 그는 가족들을 두고 자유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주인은 스스로 영원한 종이 되기로 결심한 그의 귀를 송곳으로 뚫었습니다.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는 징표입니다. 귀가 송곳으로 뚫렸다는 것은 사랑 때문에 자원하여 자유를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수치와 굴욕의 징표가 아니라 당당하고 떳떳한 사랑의 표식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노예였지만 그 영혼 안에는 자유인들이 가지지 못한 깊은 사랑으로 충만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자유를 포기한 노예. 더 놀라온 것은 이렇게 스스로 종이 된 자도 희년 즉 50년이 되면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노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는 사랑으로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유인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자유를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반납하고 종의 멍에를 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으로 살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 때문에 스스로 노예가 되어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이지만 진정한 자유와 만족을 누리며 살기에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면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격하며 그분의 종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기꺼이 주님의 종이 되어서 즐거이 주님이 가신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사는 인생은 결코 노예의 삶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의 종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혀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종이 되어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더 깊은 인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 세상의 그 어떤 종이 아니라 오직 사랑의 종이 되어 이 땅에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