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우리 집 창 앞에 겨울 매화는 피었던가요?

엊그제가 구정(舊正)이었습니다. 고국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명절에는 고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생각이 납니다. 설날이면 가족이 모여서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던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고향 생각이 더욱 나는 이럴 때는 그 옛날 성당(盛唐) 시대의 시인인 왕유(王維)가 고향 사람을 만나 썼다는 시(詩)가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君自故鄕來(군자고향래) 應知故鄕事(응지고향사)
來日綺窗前(래일기창전) 寒梅著花未(한매저화미)
그대 고향에서 오셨으니 고향 소식 잘 아시겠지요.
떠나시던 날 우리 집 창 앞에 겨울 매화는 피었던가요?

신문도 라디오도 없던 그 시절 만리타향에서 고향 사람을 만났을 때 묻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았겠지만 다 물을 수 없어 한마디로 응축된 물음이 ‘우리 집 창 앞에 겨울 매화는 피었던가요?’였습니다. 창 앞보다 창 안의 소식이 더 궁금했겠지만 체면이 있어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는 시인의 아픈 마음이 전해옵니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시인은 시(詩)로, 음악가는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망향의 안타까운 심정을 음악으로 가장 잘 표현한 작곡가의 한 사람이 드보르자크입니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현악사중주 ‘아메리카’는 망향의 절창(絶唱)입니다. 이국땅에서 명절에 들으면 아주 좋은 곡입니다.

드보르자크의 실내악
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자크(Dvorak, Antonin) 하면 그의 유명한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와 ‘첼로 협주곡’이 떠오릅니다. 베토벤처럼 9개의 교향곡을 썼고 하이든과 슈만에 이어 가장 뛰어난 걸작 첼로 협주곡을 썼으니 그를 교향곡이나 협주곡 작곡가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의 진가는 실내악에 있습니다. 어떤 음악학자는 그가 남긴 많은 작품 중에서 한 분야만 남겨야만 한다면 실내악이라고 단언합니다.

드보르자크의 실내악은 수(數)도 많고 종류도 많습니다. 실내악을 대표하는 현악사중주만 보더라도 그는 13곡을 남겼습니다. 현악사중주는 하이든에서 시작되어 모차르트를 거쳐 베토벤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평생 16곡(대푸가 포함, 열일곱 개)의 현악사중주를 썼고 그의 후기 현악사중주의 수준은 절대적이라 할 만큼 완성되었기에 아무도 다시 그 위대한 수준까지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드보르자크가 쓴 13곡의 현악사중주는 모두가 놀라운 수준의 걸작이며 그중의 몇 곡은 베토벤의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평을 듣습니다.

현악사중주 이외에도 그는 현악오중주, 피아노 삼중주, 피아노 사중주, 피아노 오중주 등 여러 종류의 실내악 작품을 써냈습니다. 모두 훌륭한 곡이지만 특히 피아노 삼중주 ‘둠키(Dumky)’와 피아노 오중주 2번 작품 81이 뛰어난 걸작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두 곡과 더불어 오늘 우리가 들을 현악사중주 12번 ‘아메리카’가 드보르자크의 3대 실내악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조국애와 향수로 승화된 실내악
피아노 삼중주 ‘둠키’와 피아노 오중주 2번은 드보르자크가 뉴욕의 국립음악원장으로 초빙받아 미국으로 가기 전에 작곡한 곡이고 현악사중주 ‘아메리카’는 미국 체류 기간에 작곡한 곡입니다.

작곡 시기와 장소는 다르지만 이 세곡을 관통하는 주제는 드보르자크의 고국 사랑과 향수입니다. 피아노 삼중주가 ‘둠키(Dumky)’라고 불리는 것은 6개의 짧은 악장이 모두 둠카(Dumka)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둠카는 우크라이나 지방의 민속 음악으로 민족의 애환과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감성적인 노래입니다. 둠키(Dumky)는 둠카의 복수형입니다.

피아노 오중주 2번은 민족적 색채를 절대음악이란 틀 속에 잘 융합시킨 걸작인데 특히 2악장에 둠카(Dumka)란 부제가 달려있습니다. 앞에서 설명 드린 둠카의 속성처럼 이 2악장을 듣다 보면 드보르자크 특유의 고국 사랑과 향토적 우수가 가슴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드보르자크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고국과 고향에 대한 사랑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외국 생활의 외로움까지 합해져 망향(望鄕)을 노래하는 최고의 걸작으로 탄생한 곡이 바로 그의 현악 사중주 12번 ‘아메리카’입니다.

미국에 체류하면서 고향 생각이 나면 향수를 달래기 위해 아이오와주에 있는 체코의 이민촌인 스필빌을 자주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소외당하는 계층인 흑인과 인디언의 음악에도 눈을 떴습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음악적으로 넓고 깊어지면서 미국에 있는 동안 쓴 곡이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와 첼로 협주곡, 그리고 현악사중주 ‘아메리카’입니다. 이 곡들은 드보르자크를 대표하는 3대 걸작이며 모두가 조국 사랑과 고향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이 아리도록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곡은 현악사중주 ‘아메리카’입니다.

드보르자크의 현악사중주 12번 작품 96‘아메리카’
이 곡은 처음에는 니거(Nigger)라고 불렀습니다. 이 곡 중에 흑인 영가와 비슷한 선율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니거’는 흑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호칭이기에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부르지 않고 흔히 ‘아메리카’라고 부릅니다.

‘아메리카’라는 이름 자체에 큰 의미는 없고 드보르자크가 자필 악보에 ‘미국에서 작곡한 두 번째 작품’이라고 메모를 했기에 나중에 사람들이 ‘아메리카’라고 부른 것입니다.

뉴욕의 국립음악원장으로 취임한 이래 바쁜 매일을 보내면서도 두고 온 고향과 가족 생각에 젖어 있던 드보르자크는 1893년 여름에 처음으로 휴가를 얻어 가족과 함께 아이오와주에 있는 스필빌(Spillville)로 내려갔습니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였고 체코 이민자들이 많이 살던 이곳 스필빌에서 고향과 같은 분위기를 느끼면서 그는 활력과 영감을 아울러 얻었습니다.

드보르자크와 같이 스필빌에 내려온 조수 코바르지크에 의하면 드보르자크는 이 마을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조국과 고향을 떠올렸고 곧장 작품 구상에 들어가 1악장을 시작한 지 불과 사흘 만에 4악장까지 완성하여 초고를 끝냈다고 합니다.

마치 머릿속에 이미 들어가 있던 곡을 그대로 쏟아내듯이 쓴 것입니다. 드보르자크도 너무 기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어 정말 만족스럽습니다,’라고 악보의 마지막에 썼다고 합니다.

모두 4악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악장은 스필빌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작곡가의 감흥이 한데 녹아있습니다. 나뭇잎이 떨리는 듯한 도입부에 이어 비올라가 힘차게 민요풍의 주제를 노래하고 이어서 무언가를 호소하는 향수 어린 선율이 나옵니다.

느린 2악장에서는 바이올린이 정서가 넘치는 지극히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합니다. 드보르자크가 그렇게도 감탄했던 흑인 영가가 많이 떠오르는 악장입니다.

스케르초의 3악장은 활기찬 춤곡풍과 서정적이며 신비로운 부분으로 나뉘는데 작곡가가 숲길을 산책하며 들었던 새들의 지저귐을 묘사했다고 합니다. 4악장은 비교적 자유로운 론도 형식의 끝 악장입니다. 활발하고 밝지만 중간에는 스필빌 교회 오르간의 코랄 선율을 모방한 조용한 구절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체코 음악은 체코 연주자의 연주로
20세기 중반에 체코의 양대 현악 사중주단으로 쌍벽을 이뤘던 스메타나 사중주단(Smetana Quartet)과 야나첵 사중주단(Jamacek Quartet)의 연주가 둘 다 고전적인 연주로 아주 좋습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야나첵 사중주단의 1963년 연주로 들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음악 감상 뒤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히브리서 11장 15~16절입니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 모두는 자라난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고향보다 더한 본향(本鄕)은 땅 위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결국은 없어질 이 땅의 것을 찾지 말고 2022년 새해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하늘의 본향을 찾는 모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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