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엄마가 화내면 순응하는 아이들

화산 폭발.’ 엄마가 화내는 모습을 묘사하는 은율이의 표현이다. 나는 화를 잘 내는 엄마가 아니다. 너무 야단을 치지 않고 키운다고 주변에서 말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은율이는 “엄마는 화를 잘 내.”라고 한다. 가끔 내는 화도 아이들에게는 임팩트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는 엄마가 화를 내고 야단치면 기가 죽어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한다. 은율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가끔 화산 폭발을 할 때 가장 가슴이 아팠던 순간은 은율이가 이유도 모른 채 기가 죽는 모습을 볼 때였다. 아이랑 싸워서 이겨도 그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피곤에 지치고 힘들 때 은율이가 뭔가를 바닥에 쏟으면 화를 내곤 했다.

야단 맞고 큰 아이는 눈치 보는 성인이 된다
내 철칙은 아이가 실수로 한 행동에 대해서는 야단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피곤이 몰려오면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가까스로 짜증을 참는다 해도 얼굴에 다 드러나곤 했다. 그리고 은율이 가 자기 싫다고 할 때, 그 시간이 새벽 한두 시를 넘어갈 때면 “잠 좀 자! 제발!” 하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면 은율이는 금세 풀이 죽었다.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슴이 아팠던 이유는 아이들의 무력함 때문이었다. 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어릴 때는 자신이 한 행동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사실 어린아이가 실수로 우유를 엎지른 일은 야단 맞을 행동은 아니다. 자기 싫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야단을 맞으면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수치감을 느끼게 된다.

우유는 어떤 느낌일까

그러니 야단맞지 않을 것까지 야단을 맞게 되면 불필요한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부정적인 자아상과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눈치 보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 결국 사회에 나갔을 때, 힘 앞에 굴복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화내고 큰소리치는 사람 앞에서 주눅 들고 그의 말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은율이가 야단맞을 일도 아닌 것에 야단맞았을 때 나는 사과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좀 전에 네가 잘못해서 야단맞은 거 아니야.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 은율이도 졸리면 가끔 짜증을 낼 때가 있지. 잠투정 같은 것 말이야. 엄마도 그래서 그랬어. 많이 놀라고 기가 죽었지? 엄마 용서해줄 수 있어? 엄마 앞으로 그러지 않을게.”라고.

하지만 나는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엄마다. 그런데도 은율이는 매번 나를 안아 주며 용서해주었다. 은율이가 나의 사과의 손길을 단 한 번도 뿌리친 적이 없었기에 사과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준 것이 있다. 은율이가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화산 폭발을 하는 것은 엄마의 잘못이라는 것 말이다.

엄마가 심하게 화내면 “엄마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어른이 화내는 무서운 순간에 아이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어느 날 화산 폭발을 한 후 은율이를 붙잡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은율아, 엄마 따라 해 봐. ‘엄마, 그렇게 말하면 나는 기분이 나빠, 엄마가 화내면 무서워. 속상해.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은율이가 신이 나 따라 할 줄 알았는데, 두 문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울어버렸다. 가슴이 몹시 아팠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분노를 표현하지도 못할 만큼 여린 것이 아이의 마음이다. 이렇게 여린 아이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아이는 세상의 전부인 엄마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엄마의 말을 듣는다. 그래서 그 특권을 남용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항상 조심하려고 한다.

당장 내 말을 듣고 내가 정한 규칙에 따라주니 편한 것 같다. 부모로서의 권위도 서는 듯하다. 다른 사람 보기에도 좋다. 하지만, 잘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엄마의 말을 듣는 아이의 모습이 학교와 직장에서 연장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사실이다.

진짜 착한 아이는 꾸중이 아닌 존중으로 길러진다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30대 후반 주부의 이야기다. 그녀는 어릴 때 자수성가하신 엄한 아빠 밑에서 자랐다. 커서도 교수님이나 직장 선배 또는 상사 앞에서 의견을 잘 이야기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어른들을 어려워했다.

속으로는 반항심과 불만이 많았다. 반면,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친구 같은 관계를 지속해온 아이들은 같은 상황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친구들은 뒤에서 부모를 욕하거나 상사를 헐뜯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특히 부러웠던 것은 시부모님과의 관계였다. 겉으로만 착한 며느리였던 자신과 달리, 그 친구들은 시부모님께 자신의 입장도 밝히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내가 참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가끔 은율이가 야단을 맞은 후에 가만히 있지 않고, “엄마, 그게 아니야. 내가…”라며 자신의 입장을 피력할 때이다. 그러면 나는 화났던 마음이 금방 누그러진다. 그리고 은율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평소에 내가 알려준 대로 은율이가 적용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오해하고 야단칠 때 꼭 엄마에게 은율이 입장을 이야기해달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그대로 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내 말을 잘 듣는 것에 대해 칭찬하며 그 자체를
너무 기뻐할 필요는 없다. 바꿔 말하면 내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내 아이가 나를 뛰어넘기를 바란다. 나와 건강한 토론을 할 수 있고, 나를 설득시킬 수 있을 만큼 주관이 뚜렷한 아이로 커가기를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화내면서 이야기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존중과 배려로 대해주고 야단칠 때도 인격적인 무시를 하지 않아야 한다. 부모에게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는 이다음에 부모를 존경하고 존중할 것이다. 그것이 진짜 ‘착한 아이’가 아닐까.

  진짜 착한 아이는 꾸중이 아닌 존중으로 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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