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야단칠 때는 단 한 번만, 반복하지 마라

책을 쓰면서 가장 시작하기 힘든 부분이 이번 장이었다. 현명하게 아이를 야단치지 못한 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 대해 인내심이 깊은 편이다. 주위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한 번 고삐를 놓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무서운 일들이 벌어진다. 한마디 할 것을 두 마디, 세 마디 하며 야단을 치는 것이다.

평소에는 더한 일도 잘 참았는데 한 번을 참지 못하면 줄줄이 소시지처럼 잔소리와 비난의 말이 나온다. 행동에 대해서만 단호히 이야기해야 하는데 스트레스와 푸념 섞인, 그야말로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아차’ 싶을 때는 이미 늦었다.

누군가는 잔소리를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이 글을 시작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바로 어제 그런 잘못을 했기 때문이다.

은율이는 다섯 살이 되면서, 강아지, 물고기, 사슴벌레, 새에 이어 햄스터를 키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분양받은 건강한 햄스터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은율이가 햄스터를 꺼내고 싶다며 케이지 문을 연 것이었다. 아니, 너무 약한 케이지 뚜껑을 만든 제조 과정이 발단이었다고 해야겠다. 책을 통해 햄스터들을 한 번씩 넓은 곳에 풀어놓아 주어야 좋다는 것을 알게 된 은율이는 종종 햄스터들에게 자유를 선물해 준다. 그런데 은율이가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위로 젖혀지는 뚜껑의 한쪽 부분이 깨지고 만 것이다.

하루 동안의 피로가 쌓인 데다 밤도 늦은 터라 짜증이 났다. 뇌에서 감정을 제어할 틈도 없이 “조심하라고 했지? 어떡할 거야 이제! 햄스터가 다 탈출하게 생겼네.”라고 야단을 쳤다.

은율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조그만 손으로 이미 깨진 뚜껑을 맞춰보려 애를 쓰고 있었다. “어떡할 거야, 응? 엄마는 모르겠어. 이제 어떡할 거니?” 그러자 은율이는 “테이프로 내가 붙일 거야…”라며 작은 소리로 겨우겨우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거기서 멈추었어야 했는데 나의 잔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실수로 한 행동에 대해서는 야단치지 말 것, 엄마의 스트레스를 싣지 말 것, 후회할 행동을 하지 말 것, 화내지 말고 단호하게 할 것 등의 원칙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간 지 오래였다.

“테이프로 매번 어떻게 붙이니?” 한참 입씨름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 자신이 한심했다. 세상에 나온 지 겨우 4년 6개월 된 존재랑 마흔이 넘은 어른이 뭘 하는 건지 정말 기막힌 노릇이었다.

그날 밤 은율이에게 나는 여러 번 사과했다. 안아주고 달래주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테이프로 붙이겠다고 말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좋은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리고 어른이라는 이유로 억눌러서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그날은 지방에 있는 친정으로 내려오느라 차를 오래도록 탄 상태라 몹시 피곤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몹시 아프다.

야단맞는 아이의 뇌는 정지상태가 된다
반복적인 잔소리가 얼마나 비효과적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결혼 전 뉴질랜드에서 가족 상담 공부를 할 때 한 뉴질랜드 강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이 어린아이였을 때, 아버지가 야단을 많이 치셨다고 한다. 반복적으로 야단을 맞을 때 자신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으며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야단을 맞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런 어린 자신을 비유한 것이 검은빛의 포섬이라는 동물이었다. 뉴질랜드에는 주머니쥐라 부르는 포섬이 많다. 생김새는 족제비 같으며 캥거루처럼 주머니에 새끼를 넣고 다닌다. 밤에 주로 활동하는 포섬은 헤드라이트의 강렬한 빛에 오도가도 못하고 서 있다 도로에 치여 죽는 일이 많다.

강사는 야단맞을 때의 자신이 꼭 이 포섬 같았다고 했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뇌는 정지했다고 한다. 포섬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지된 표정을 연출하였는데, 그분의 어린 시절 모습을 상상하니 참 안타까웠다.

생각해보니 햄스터 사건 때 은율이의 표정이 딱 그러했다. 5분도 안 되었을 그 시간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길고 힘들었을까. 엄마의 반복적인 잔소리로 무의식 속에서 착한 아이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햄스터를 꺼내주려다가 야단맞았네. 차라리 아무 시도도 안 해서 야단을 안 맞는 편이 낫겠다.’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양육방식이 계속되면 아이는 사고 치지 않는 순종적인 아이로 자랄 것이다.

한 번의 단호한 말에 힘이 있다
1년 전쯤 은율이에게 야단을 친 후 왜 야단을 맞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는 완전히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때 나는 야단치는 것이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야단맞는 이유보다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 집중하며 ‘엄마가 나를 싫어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이론이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감정을 싣지 않은 단호한 한 번의 말은 효과적이었다. 우유를 쏟았을 때 “아이라서 쏟을 수 있어. 하지만 은율이가 쏟은 것이니까 수건 가져와서 닦자. 다음부터는 조심하자.” 하면 잘 알아듣고 바로 닦았다. 물론 야무지게 어른처럼 닦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우리 집에는 지난 성탄절에 입양한 하트라는 이름의 귀여운 토이푸들이 있다. 은율이는 자기와 같은 해에 태어난 하트를 무척 귀여워한다. 은율이의 사랑 표현은 안는 것이다. 엄마가 어떻게 해주는 게 가장 좋은지 물으면 ‘꼭 안아주는 것’이라고 답하곤 한다.

그래서 은율이는 가끔 하트를 힘주어 껴안는다. 하지만 강아지는 그것을 답답해한다. “강아지는 힘주어 안는 것을 싫어해.”라고 하자, 안 그래도 안아주려는 데 도망가버리는 하트 때문에 속도 상하고 엄마한테 야단까지 맞았다는 생각에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강아지를 은율이보다 더 사랑해서 하는 말이 아니야. 강아지는 사람이랑 달리 살짝 안고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해. 그러면 은율이 옆에 오래 안겨 있으려고 할 거야.”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친구에게 사과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같은 질문에 늘 ‘하트를 꼭 안은 것, 하트가 귀엽다고 꼬리를 당긴 것’ 같은 대답을 하고 그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행동을 바꾸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참 만만찮은 일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로 야단친 일보다 칭찬한 일이 훨씬 많은데도 아이가 화를 낸 순간을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이다. 밑져도 이렇게 밑지는 장사가 없다. 그럴 때 나는 건강에 적용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린다.

“몸에 좋은 것을 하기 전에 먼저 나쁜 것을 절제하라.” 보약, 영양제, 특별한 음식을 먹기 전에 술, 담배,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 등을 피하는 것이 백 번 낫다는 뜻이다. 무슨 재미있는 놀이를 할까, 무슨 책을 읽어줄까, 몸에 좋은 걸 뭘 먹일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감정적인 야단치기를 자제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끼는 화단을 망쳐놓은 딸에게 어떤 아빠가 딸을 야단치려고 했다. 그러자 아내가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여보,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지 꽃을 키우는 것이 아니에요.” 참 현명한 아내이자 따뜻한 엄마이다. 화가 나서 야단치고 싶을 때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 일이 아이의 인생이 걸린 만큼 중요한 일인지, 또는 내 인생이 걸린 만큼 중요한 일인지 말이다.

햄스터 뚜껑은 누구의 인생도 걸려 있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한마디에는 아이의 인생이 걸려 있다. 여러 번의 야단치는 말이 아닌,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현명한 한마디의 말을 할 수 있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 당신도, 나도 말이다.

“여러 번의 꾸중보다 현명한 한마디를 하는 지혜로운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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