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청소에 목숨 걸지 마라

나에게 고민을 종종 털어놓는 30대 주부가 있다. 3살 아이를 키우는 그녀의 최대 고민은 청소다. 아이랑 온종일 놀고 나면 집은 엉망진창이 된다. 남편이 퇴근할 무렵이면, 파김치가 된 상태로 저녁 준비하기에도 정신이 없다. 그 사이 아이는 또 이것저것을 꺼내어 논다. 거실 한쪽에서 블록을 와르르 쏟는 소리가 들린다.

밥을 차리면서도 걱정이 되고 남편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휴,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어요. 남편은 저보고 온종일 집에서 뭐 했냐고 해요. 정리를 깨끗이 해야 아이도 정리를 배운다며 제 탓만 한다니까요.”
친구네 집과 비교까지 한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심지어 우울증까지 생겼다. 낮에 아무리 깨끗이 치워도 남편이 올 즈음이면 도루묵이다. 이 지경이 되니 그녀는 너무 억울해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전송했다.

“현재 오전 9시. 거실은 이렇게 깨끗해. 이따가 어떻게 되는지 보내 줄게.” 그러고 점차 아이로 인해 어질러진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에 깨끗하게 치운 거실 사진을 다시 보냈고 퇴근 직전 또다시 엉망이 된 집의 사진을 보냈단다. 그 후로 남편도 점차 아내를 이해하게 되었고 아이가 커가면서 상황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은율이가 네 살이 될 때까지 청소가 늘 숙제였다. 어릴 때는 한창 집을 어지른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정리 정돈에 매우 서툰 성격이다. 정리.수납전문가를 부른 적도 있다.

어릴 때는 호기심이 많아서 기어 다니며 여기저기 물건을 다 꺼내놓는다. 뭘 먹을 때도 잘 흘려서 수시로 닦고 치워야 한다. 돌쟁이 무렵에는 기어 다니는 경우가 많아 바닥에 물건이 즐비하다.

책을 본 후에도 어린아이들이 바로바로 책장에 책을 꽂을 수는 없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남편일지라도 책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한다. 퇴근 후 편안히 쉬고 싶은 마음에서일 것이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아이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들의 이야기다.

어지러운 방에서 창의성이 길러진다
내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정리 정돈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청소 파’, ‘위생 파’ 엄마들이다. 나는 정리 정돈을 못하는 자신이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나의 콤플렉스였다. 그런데 은율이를 키우면서 그것이 나의 장점이 될 수 있음을 알고 감사했던 적이 많다. 은율이가 낮에 자유롭게 놀아도, 뭔가를 쏟아도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덕분에 은율이는 여러 가지 소품으로 마음껏 상상놀이도 하고, 겨울에는 눈을 퍼 와 집에서 놀기도 했다. 책도 보고 싶은 대로 꺼내 얼마든지 읽었다. 싱크대 빈칸에 들어가 마음껏 저지레를 하며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물감을 쏟기도 하고 욕실 타일에 휴지를 붙여 물감 번짐 놀이도 했다.
호기심 넘치는 아이를 막을 수도 없었지만, 사실 내가 청소에 목매는 성격이 아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정리를 못 한다고는 하지만 나도 한때 신혼집을 예쁘게 꾸미던 시절이 있었다. 시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예쁜 복층 집이 너무나 좋아서 임신한 몸으로 동대문을 여러 번 오가며 꾸민 방을 남편은 동화 속 방 같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아이가 집을 어지르는 자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가 청소보다 귀했고, 아이의 호기심과 창의력에 집중했을 뿐이다.

흔히 아이가 정돈된 환경에서 집중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아이도 나중에 정리 정돈을 잘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이제 이 놀이 다 했으니까 깨끗이 치우고 다른 놀이해요.”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유아들은 좀 다르다. 이런 나의 생각에 힘을 실어준 책이 있다.

어느 날 남편이 본인도 육아서를 읽어봐야겠다며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교수의『우리 아이 괜찮아요』를 사 왔다. 거기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정리가 너무 잘된 환경보다는 좀 어질러진 환경에서 이 놀이 저 놀이로 옮겨 가며 창의적인 생각을 키워나간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은율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꼬마 공주님들의 로망인 엘사가 나오는 <겨울왕국>을 볼 때마다 은율이가 하는 행동이 있다. 엘사가 파란 드레스로 갈아입고 주제가를 부르는 장면만 나오면 방으로 달려가 엘사 장갑을 끼고 드레스로 갈아입고 나오는 것이다. 또 동화책을 읽다가 독후 활동도 곧 잘 한다.

말이 독후 활동이지 사실 또 저지레 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장난감 박스를 다 뒤져서 낚싯대를 찾는다든가 옷장을 열어 빨간 손수건이나 막대에 묶을 끈 같은 것을 찾는다. 방심한 사이 방은 온통 그런 독후 활동감(?)을 찾느라 엉망이 된다.

어질러진 방을 대충이라도 정리할라치면 거실에서 또 나를 찾는다. “엄마! 이거 봐, 나 좀 봐! 얼른!” 그걸 기억해보니 정말 서교수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책을 읽기 전에도 아이의 그런 행동이 자연스럽고 건강해 보였다. 순간순간을 놀이로 만드는 호기심 넘치는 아이가 하는 행동으로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싶었다. “꺼내고 나면 정리를 해야지!” 하는 말에 정리하는 사이 엘사의 노래가 지나가 버릴 테니까. 그 호기심에 찬 눈빛도 사라질 게 뻔했다.

모든 것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나는 우선순위에서 정리 정돈을 뒤로 미루어두었다. 호기심과 창의성을 폭발시키는 것을 1순위에 두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신기함과 호기심에 몰입하는 시기가 지나면 아이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정리 등 다른 방향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믿기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AI 시대, 전 세계가 창의성에 목숨을 건다
7세까지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폭발적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시간에 정리 정돈만을 강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아이의 창의성을 죽이는 것이 아깝지 않은가 말이다. 정리는 정리수납 전문가가 대신해 줄 수 있어도 창의적인 생각은 다른 이가 심어줄 수 없다. AI 시대를 맞이하며 전 세계의 교육은 창의성을 기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은율이는 다섯 살이 되더니 정리를 곧잘 한다. 강아지의 집 위치를 달리 배치해보고, 기저귀는 그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또 사슴벌레 사육장을 교구장에 두며 나름의 인테리어를 즐긴다.

또 엄마와 청소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엄마에게서 청소기를 뺏어서 이방 저방 힘차게 돌린다. 손이 제법 야무지다. 걸레는 나보다 더 잘 빨아서 친정엄마가 “벌써 은율이 덕을 보네.” 하실 정도다. 욕실 바닥 청소를 맨날 하자고 성화다.

물론 스케치북이나 색종이 조각들이 거실에 뒹굴 때가 훨씬 많다. 하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사이 정리하는 요령도 많이 늘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물건들을 세분화시켜 정리했는데 이제는 크게 크게 분류해서 정리하는 요령이 생겼다. 또 집이 크지 않더라도 구획을 정해 정리배치 하는 좋은 팁도 터득했다. 이곳은 블록, 이곳은 미술, 이곳은 책 보는 곳 같이 말이다.

왜 깨끗한 집을 원할까? 안정감과 쾌적함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아이도 집의 구성원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 구성원의 취향도 존중해주면 어떨까? 정리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어지르는 것은 나쁘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만 버려도 훨씬 쉽고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다.

아이가 잘 커 주는 것은 덤이다. 남편 눈치가 보이고 본인도 어지러운 것을 참지 못한다면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랑 놀이하듯 치워보자. 박스를 하나씩 가지고 누가 누가 더 많이 담나 게임 같은 것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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