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옆집 엄마가 아닌 내 아이에게 물어보라

은율이가 어릴 때 나는 또래 엄마들과 잘 만나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힘들다는 게 가장 현실적인 이유였다. 한 번은 대학 시절 친구와 연락이 닿았는데 은율이보다 한 살 많은 사내아이를 키우며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약속을 잡고 키즈 카페에서 만났는데 잠시 친구랑 이야기하는 사이 두 돌이었던 은율이가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또 한 번은 그 친구와 레스토랑에서 만났지만, 식사나 대화를 전혀 할 수 없었다. 친했던 사이라 오랜만에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불가능했다. 자기에게 온전히 집중해주길 바라는 두 돌배기 아이한테도 미안한 노릇이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지쳐 집에 오니 낮에 급하게 나가느라 미루어둔 설거지가 쌓여 있고 거실도 엉망인 채였다. 한숨이 나왔다. 그 후로 나는 또래 엄마들을 잘 만나지 않게 되었다.

상.호.존.중.감 두 번째 이유는 육아관이 다른 아기엄마들과의 만남을 자제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육아관은 상.호.존.중.감이다. 5자 성어는 아니고 아이를 키우며 만들어낸 나의 육아 모토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상상력, 호기심, 존중, 중고, 감정 읽기의 머리글자를 딴 표현이다. 나의 육아는 항상 저 다섯 글자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무엇을 아이와 할까, 어떻게 육아의 우선순위를 정할까 할 때 나는 항상 저 모토를 떠올려보았다. 그럼 하나씩 이야기해보겠다.

첫째, 상상력이다 상상력을 극대로 발휘시킬 수 있는 개월 수는 정해져 있다. 구글과 같은 세계적 IT기업들은 직원들의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데 전심전력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늘 창의력이 넘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인가?

둘째, 호기심이다 아이의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지적인 발달은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호기심이 폭발한다는 개월 수에 참으로 여러 밤을 새우며 책을 읽어주었다. 산책할 때 사소한 질문에도 대답해주고 수 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유모차를 밀면서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대답해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호기심을 꺾어버리고 싶진 않았다.

특별한 사교육을 시키거나 기관에 보내는 엄마도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해주고 싶었다. 주도해서 뭔가를 해주기보다는 아이가 필요를 느끼는 것에 대해 성실히 반응해 주려고 했다. 폭발하는 상상력이나 호기심으로 인해 뭔가를 해보고 싶어 하면 적극적으로 반응해주었다.

셋째, 존중이다 존중은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눈을 떠서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나의 입술을 훈련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나의 스케줄에 아이를 맞추어 끌고 다니지 않으려 했다. 그런 이유로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하게 되었다.

넷째는 중고이다 그야말로 중고 물건을 사는 것이다. 책도 중고, 장난감도 중고, 옷도 중고로 많이 샀다. 그 중 중고 책은 아이 교육에 있어 최고의 방편이었다. 은율이는 중고 책을 보며 아주 잘 자랐다. 중고 책은 실수로 찢어도 야단칠 일이 없고 호기심 많은 아이가 낙서를 해도 부담이 없었다.

은율이는 목욕할 때, 밥 먹을 때, 심지어 응가 할 때도 책을 읽어 달라고 조르는 아이였기에 나에겐 중고 책이 효자 아이템이었다. 새것은 수십만 원씩 하는데 중고는 상태가 아주 좋은 것도 5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마지막은 감정 읽기이다 여자아이라 나는 특히 이 부분에 있어 조심했다. 감정은 말로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고 일어났을 때 “얼른 준비하고 나가야지! 어서 밥 먹어.”라는 말 대신 먼저 꼭 안아주었다. 은율이의 눈빛을 읽으려고 항상 노력했다. 시중에 감정에 대한 육아서가 아주 많다. 감정 읽어주기는 아이에게 자신감, 독립심, 그리고 요즘의 화두인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감정 읽기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아이의 행동과 눈빛 따라가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육아관이 다른 사람과 만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불편한 마음이 들곤 한다. 나는 당시 소위 책 육아로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이를 실천하고 있었고 은율이가 무언가를 잡을 수 있는 개월 수가 됐을 때부터는 물감을 주어 장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지 그림

책과 그림, 그리고 상상 놀이 같은 것들로 은율이의 삶은 채워져 있었고 우리의 하루는 그다지 규칙적이지 않았다. 마트를 가다 햇살이 좋으면 놀이터 맨 꼭대기에 올라가 누워있기도 했다. 동네 도서관에서 놀다가 배가 고프면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강아지와 한참을 놀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시간이 늦어지기 일쑤였다. 서너 살 시절의 은율이는 밤새워 책 읽기를 좋아했다. 다음 날 어린이집을 가야 할 필요가 없으므로 아이를 다그칠 필요도 없었다.

그런 나의 육아 패턴은 대부분의 엄마와 맞지 않았다. 한 번은 여러 부부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은율이와 정확히 같은 개월 수의 아이도 있었고, 다들 고만고만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자연스레 육아를 주제로 한 대화로 흘러갔다.

그날 모임에서도 나의 육아 패턴은 환영 받지 못했다. 두 돌쟁이 아이에게 왜 벌써 물감을 주느냐부터 시작해 중고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던 그 아이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른 아기엄마들이 무슨 말을 해도 나는 은율이의 눈빛만 보았고, 은율이가 얼마나 생기발랄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지에만 집중했다.

그 즈음 만났던 ‘푸름 아빠’ 최희수 씨나, ‘웨인 다이어’ 또는 ‘하은 맘’ 김선미 씨의 책들은 내가 바른길로 가고 있다고 격려해주는 마음 잘 맞는 친구였다. 그런 책에서 힘을 얻고 다시 불규칙적이고도 행복한 삶을 살아갔다. 은율이는 또래보다 발달이 훨씬 빨랐다.

19개월에 처음으로 받았던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의사 선생님의 놀라던 표정과 말씀이 기억난다. 첫 건강검진이었고 기관에 가지 않는 탓에 은율이를 비교할 대상도 별로 없었다. “아이가 단어를 몇 개 정도 말할 수 있나요?”라고 묻길래 오히려 놀란 것은 내 쪽이었다. 은율이는 단어뿐 아니라 이미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한 지가 두 달도 넘었기 때문이었다.

“단어는 백 개 이상 말하는 것 같고 문장으로 말해요….” 라고 하자 의사 선생님은 어떤 말을 하느냐고 물으셨다. 은율이가 할 수 있는 문장들을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24개월의 언어보다 빠르다며 놀라셨다.

30개월 물감놀이

세 돌 무렵 “노을 지는 밤바다”, “해지는 저녁 바다” 같은 감수성 가득한 제목을 붙인 수채화도 여럿 그렸다. 감수성뿐 아니라 신체적인 면에서도 잘 자라주었다. 나는 여성 평균 키에 지나지 않고 남편도 특별한 장신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은율이를 또래보다 한 살 더 많은 아이로 보았다.

발달이 빠르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나는 옆집 엄마의 말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가 아닌, 나의 딸에게 물어본다. 지금까지 은율이의 성장을 보며 이 길이 맞는다는 확신이 점점 더 커진다. 혹시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소위 육아의 주류는 어떻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인지 몰라 불안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육아서를 든다. 밑줄을 긋고 마음에 새기고 다시 내 아이를 본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이에게만 귀 기울이기에도 시간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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