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김남조>
내야 흙이 온데
밀랍이듯 불 켜시고
한평생 돌 이온 걸
옥의 문양 그으시니
난생처음
이런 조화를 보겠네
기도할수록 기도하고
사랑할수록 사랑을 더하는
이상한 부푸러기
내 탓은 결코 아닌
참 신비한 부푸러기
주신 것
잎새,
꽃,
때 이르러 열매이더니
오늘은
땡볕에 달궈낸
금빛 씨앗
흙이고 돌인 그런 인생들에게 열매를 맺게 하시더니 금빛 씨앗까지도 품게 하신 신비한 조화를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이 아름다운 시어와 호흡에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왜 나의 기도와 나의 시에는 넋두리와 하소연만 가득하고 정작 하나님을 향한 이런 아름다운 고 백이 없을까요?
지난 달엔 키위교회와 연합예배를 드렸습니다. 찬양팀도 함께 준비하고, 설교는 통역하고, 성경도 두 나라 말로 읽고, 예배 후에는 준비한 점심도 함께 먹고, 서로 인사하고 칭찬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음만큼은 아름다운 연합이었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질감과 형제애(자매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그만큼은 친밀해 지지 못했답니다. 그들은 우리 말을 모르고 우린 그들의 말을 충분히 잘 못 해서요. 젊은 친구들을 데리고 다니며 대화 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말 보다는 진심이면 된다고 하지만, 소통하는 수단으로의 언어는 대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간혹 말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지요. 지나치게 많은 말들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말로 생각이나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어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말이 얼마나 끈끈하게 유대하게 하는지를 잊을 수는 없잖아요.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인 영어를 잘 말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고 속상하기까지 합니다. 다음엔 서툴러도 한번 더 말하고 마주보고 웃고 해야겠습니다.
하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문자를 쓰면서도 구사하는 능력이 차이가 나서 누구는 지루하게 길고, 누구는 짧아도 무겁게 합니다. 누구는 뾰족해서 아프고, 누구는 무턱대고가 아니면서 위로를 줍니다. 누구는 하소연과 넋두리를 하고, 누구는 감격의 시를 말합니다. 예쁘게 가다듬고 따뜻한 온기를 담아 마음을 전하는 그런 말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시인이 그런 것처럼. 오늘은 유난히 시를 말하고 싶습니다. 나비의 하늘하늘한 날개로 날아 그대 가슴에 닿아 한 개의 금빛 씨앗을 떨구는 그런 시를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