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더 많이 놀게 하고 더 많이 안아주라

“아빠 더 놀자~” 거실에 나와 보니 다크서클이 이만큼 내려온 아빠 옆에서 은율이가 조르고 있다. 시계를 보니 밤 열두 시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이 틀림없다.

한 번은 정말 온몸을 불사르며 은율이와 놀고 와 저녁밥을 먹었다. 그 후 집에서 또 뭔가 이런저런 놀이를 했던 것 같다. 시간도 늦었고 해서 이만 자자고 했더니 아이가 엉엉 우는 것이다. “덜 놀았어~ 엉엉.”

아이들의 체력은 유아기에 최고치에 달한다. 낮잠 한 번이면 급속 충전되어 쌩쌩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무렵 부모들은 직장과 집안일로 가장 여유가 없고 피곤한 때를 보낸다.

이렇듯 아이의 무한 체력에 맞추어 놀아주는 것이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럴 때마다 나를 정신 무장시키고 심기일전하게 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다크서클이 내려온 남편에게도 이런 방법으로 정신승리를 하게 한다.

첫째는 아이가 커버려서 같이 놀고 싶어도 놀아주지 못하는 시간이 곧 온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다. 은율이는 54개월로 다섯 살이다. 주변 아이들을 보니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엄마보다 친구들을 훨씬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엄마, 엄마! 나랑 놀아!”하는 껌딱지 시즌이 3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3년이 뭐예요, 학교만 들어가도 엄마 안 찾아요.”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하루하루가 아까워 미칠 지경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곤해서 졸리고 짜증이 나다가도 눈을 뜨고 같이 놀아주게 된다. “그래, 너 이렇게 작고 귀여운 모습 언제 실컷 보겠니? 밤새고 놀아보자!”하게 된다.

둘째는 놀이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푸름 아빠 최희수 씨의 『사랑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면』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아이는 원래 어리면 어릴수록 쾌활하답니다. 쾌활함은 환경의 영향으로 생긴 고통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아이가 쾌활함을 잃지 않게 해주세요…(중략)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아이와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하면 됩니다.”

여자아이들은 상상 놀이를 좋아한다. 은율이도 예외가 아니다. 천 번도 넘게 한 상상 놀이가 있는데 이름하여 ‘곰이 사냥꾼에게 잡히는 놀이’다. “엄마, 오늘은 사슴 놀이하자!” “오! 새로운 놀이야?” “응!” “그래, 어떻게 하는 건데?” 하면 여지없이 동물 이름만 바꾼 또 그 공포의 사냥꾼 놀이다. “엄마는 사냥꾼이고! 난 사슴이야!” 하면서 쫓고 쫓기는 놀이를 무척 좋아한다.

활에 맞아 쓰러지는 딸의 리얼 액션에 옷걸이로 활을 만들어 “쓩~” 소리를 내며 역할 놀이에 몰입하다 보면 ‘이거 하려고 내가 대학원까지 나왔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아빠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함께 놀기
아빠와의 놀이 가운데 은율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림 놀이다. 남편은 중학교 시절『노인과 바다』를 읽고 창문에 산티아고 노인이 황새치를 잡는 장면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을 보신 아버님이 그 생생함에 놀라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남편은 은율이가 두 돌이 되기 전에 물감을 사주고 같이 그림을 그렸다.

낮에 나랑 놀다가 몇 번 “엄마, 강아지 그려줘.”하던 은율이가 어느 순간 내 그림 실력을 눈치챈 후로는 더 이상 그림 그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가 퇴근하면 “아빠, 우리 그림 그리자! 사자 가족 그려줘. 내가 색칠할게.”한다. 커다란 도화지를 펴놓고 일명 ‘은율이와 아빠의 합작품’을 둘이서 그린다.

제주도에서 함께 말 타던 것도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유니콘이랑 둘리도 그린다. 그러다 갑자기 소파에서 뒹굴고 장난을 치고, 또 그림을 그린다. 아빠가 그린 밑그림을 크레파스로 일부러 망쳐놓고는 또 까르르 웃는다. 그렇게 그린 그림 조각들은 우리 집 거실의 벽지를 대신한다.

나는 책 육아를 잘하고 남편은 그림 육아를 잘한다. “여보, 은율이 책 좀 읽어줘요.”하면 본인 책은 좋아하는 남편이 아이 책은 채 몇 권 읽어 주지 못하는 걸 보았다. 그런데 그림 놀이는 몇 시간씩도 한다. 그걸 보며 남편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아이와 놀아주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 었다. 내가 껴서 이래라저래라 하던 걸 삼가게 되었다.

놀이터 시절도 길지 않다
제주도 여행에서 은율이와 동갑인 다섯 살 남자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의 엄마는 교육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그 엄마가 하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저기 아이랑 참 많이 다니는데, 놀이터가 제일 좋대요.”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주말에 남편과 나는 은율이를 오랜만에 서울 근교 놀이공원이나 아쿠아리움에 데리고 갈 계획이었다.

“은율아 어디 갈래? 아빠가 다 데려갈게.” 그러자 은율이는 “놀이터 가고 싶어.”라고 했다. 그 대답에 좀 허무하긴 했지만 은율이는 그날 평일 낮에 잘 가지 못하는 놀이터에서 아빠랑 실컷 놀았다. 놀이터에 아빠랑 워낙 자주 가서 이제는 동네 언니들을 나보다 더 잘 알 정도다. 남편이 가면 “은율이 아빠다!”하며 같이 뛰어놀려 한다.

놀이터 하니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장마철이었다. 놀이터에 푹 빠져 지내던,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은율이는 비옷을 입고 놀이터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네를 보더니 타겠단다. 귀찮았지만 집으로 다시 가서 수건을 가져와 그네를 닦았다. 몇 번 타더니 비옷에 자꾸 미끄러지자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개미 한 마리 없는 비 오는 놀이터에서, 무엇이 그렇게 서럽고 속상한지 한참을 울었다. 그네타기가 맘대로 안 되니 그랬나 보다. 아이는 펑펑 울고 나는 귀여운 그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놀이터가 그렇게도 재밌을까.’하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잊고 있던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4살 터울 언니랑 눈만 뜨면 동네 놀이터에서 온종일 놀던 일이다. 도시락까지 싸갔던 기억이 또렷이 떠올랐다. “언니, 우리 놀이터 갈 때 도시락 싸서 갔잖아.” 그 말에 언니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럴 리 없다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린 시절 놀이에 대한 열정은 이렇게 크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엄마, 더 안아주세요
앞서 말한 대로 놀이는 아이에게 치유이다. 그런데 아이에게 또 하나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를 꼭 안아주는 것이다. 나는 은율이를 참 많이 안아주는 편이다. 자고 일어나면 부스스 일어난 모습이 귀여워서 안아주고, 아빠랑 둘이 놀러 갔다 오면 그간 못 봐서 반갑다고 신발도 벗기 전에 으스러지게 안아준다. 낮에 둘이 놀다가 그냥 귀엽다며 안아주기도 한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갈아준 후 수건으로 닦아주며 조그마한 몸이 귀여워 안아주었다. ‘내가 계속 안고 있으면 은율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 꽤 오래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었다.

평소에 많이 안아주기도 하고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은 당연한지라 나는 아이가 “됐어, 그만. 답답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한참이 지나도 가만히 있었다. 종일 나랑 붙어 있는데도 아이는 그렇게 스킨십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엄마와 떨어져 있거나 스킨십이 부족한 아이들은 얼마나 그것이 그리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옹은 ‘인정한다, 받아들인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포옹을 하면 치유가 일어난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딸의 양 볼에 뽀뽀를 한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온종일 붙어 있는데도 그렇게 좋아?”한다. 온종일 붙어 있으니 더 정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가 무슨 행동을 왜 하는지, 작은 것에 얼마나 순수하게 반응하는지 시시콜콜 다 알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사랑의 감정이 매일 더 커진다.

아이에게 놀이는 학습이다. 신체를 활발히 움직이면 뇌가 발달한다. 인지적인 학습만 시켜서는 안 되는 결정적 이유이다. 현명한 엄마일수록 아이들을 실컷 놀린다. 또한 치유의 기능이 있는 것이 놀이이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순간에는, 몸을 부대끼며 놀아주는 건 어떨까.

부모와 스킨십을 나누며 논다면 아이는 사랑받는다는 것을 직접 느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간지럼을 태워보자. 침대에서 아이와 그냥 뒹굴어보는 건 어떨까. 아이의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를 언제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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