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선택권을 주고 스스로 절제하게 하라

자기조절의 면에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흥미를 끄는 일에 몰두해 있다가도 어느 시점에서 이를 스스로 제어할 줄 아는 사람, 또 다른 이는 중독에 빠져 외부적 강압에 의하지 않고서는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내 주변에 아들을 둔 엄마들은 대부분 게임 문제로 속을 끓인다. 초등학생 학부모만의 일이 아니다. 20대 자녀를 둔 엄마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며 늘 절제의 문제로 고민해왔다. 엄마로서 참 난처할 때가 있다. 아이가 밥을 막 먹으려고 하는데 남편이 “짜잔~.” 하며 퇴근길에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그런 상황 말이다.

가족 생각해서 사 왔는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딸기 아이스크림 앞에서 아이가 저렇게 좋아서 폴짝폴짝 뛰는데 말이다. 몇 초간 머릿속이 복잡하다.

“안 돼!”라고 하면 상황은 간단히 해결된다. 하지만 그런 임시방편은 어릴 때나 통하지 커가면서는 먹히지 않을 것이다. 눈앞의 단 것에 이미 마음이 가 있는 아이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할 것은 뻔하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그냥 선택권을 줘 보자고 생각했다. “은율아, 밥 먹기 전에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응.” 하나 마나 한 질문을 하고 뻔한 답을 들었다. “그래, 그럼 아이스크림 먹고도 밥 먹을 수 있겠어?” “응!” 대답 한번 우렁차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입안이 달달해져 밥맛이 없을 수 있어. 또 배가 불러서 밥맛이 없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일단 먹기로 했으니까 다 먹고 밥은 먹어야 해. 알겠지?” “응!”

당시 은율이가 네 살이었다. 사실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은율이가 이런저런 핑계로 밥을 먹지 않을 줄 알았다. 아직 어려서 자기조절을 하지 못 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은율이는 그날 멸치 등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과 밥을 아주 잘 먹었다. 남편과 나도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음은 물론이다.

물론 단것을 먼저 먹으면 밥을 적게 먹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먼저 아이에게 물어보고 약속을 한 후 일단 믿고 기다려준다. 그래서인지 다섯 살이 된 지금은 훨씬 수월해졌다. 심지어 단것이 있어도 밥을 먼저 먹는 경우도 많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 맛있는 것을 쉽게 접한다. 그래서 엄마의 잔소리로는 아이를 지킬 수 없다.

언제까지 따라다니며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은율이를 낳고 처음 살았던 곳이 남양주시 별내동이었다. 우리 집 코앞에 초등학교가 있었고 그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었다. 낮이면 늘 편의점은 아이들로 가득 찼다. 특히 야외 나무 의자에는 학생들로 와글와글했다. 다들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엄마들이 분명히 싫어할 텐데’, ‘우리 애도 나중에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몸에 안 좋은 것을 먹지 않기로 유명하다. 커피, 탄산음료, 피자 등을 거의 먹지 않는 나를 유별나게 여기기도 한다. 엄마 잔소리를 많이 듣고 자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엄마가 잔소리를 하시니까 몸에 나쁜 것은 거의 안 먹고 컸겠네?”라고 물으니 박장대소하며 이런 대답을 했다. “안 먹긴! 엄마가 라면을 하도 못 먹게 해서 학교 다닐 때 밖에서 친구들이랑 엄청나게 먹었지!” 20대가 되어서도 라면만 보면 먹고 싶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무턱대고 금지하는 대신 다음과 같이 이유를 설명하기로 했다. “엄마는 너를 사랑해. 그래서 지금은 아이스크림을 줄 수가 없어. 은율이가 미워서가 아니야. 단것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이 약해질 수 있어서 그래.” 불필요한 잔소리가 훨씬 줄어들었고 진심을 전달할 수 있어 마음이 한결 편했다.

아이를 인격체로 대하며 믿어주자
엄마를 따라나선 마트에서 과자를 살 기회가 생기면 은율이는 무척 신나한다. 알록달록 환상적인 포장지 앞에서 무엇을 고를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동시에 늦게 고르면 엄마가 혹시 시간이 없다고 가버릴까 걱정되는지 초조해하는 기운도 느껴진다.

그럴 때 나는 은율이에게 또박또박 이야기해준다. “천천히 골라도 돼. 엄마가 기다릴 거야. 그러니까 덥석 아무거나 집지 말고 원하는 걸 골라.”

그러고 나면 난 항상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을 한다. 바로 은율이가 과자를 딱 하나만 고르는 것이다. 나 같으면 여러 개를 사서 두고두고 먹을 텐데 더 고르라고 해도 “아니 이게 제일 좋아! 이거면 됐어.” 한다. 그런 은율이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거기에 만족하는 마음이 부럽다.

그래서인지 마트에서 떼를 부리는 일도 거의 없다. 사실 은율이의 욕구가 고집으로 가기 전에, 과자 앞에서 서성이거나 뭔가를 사고 싶어 하는 눈치면 말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줄 때도 많다. 그리고 천천히 원하는 선택을 하라고 말해준다.

아이를 미운 네 살이라고 말하기 전에 아이의 감정과 선택을 무시하진 않았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이와 나는 완전히 다른 인격체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지금은 아이스크림이냐 밥이냐의 문제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그 대상은 달라질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이성 교제가 될 수 있고 성인이 되면 쇼핑, 주식 등으로 그 모양이 계속해서 달라질 것이다. 지금 아이를 인격체로 대하며 선택권을 주느냐 아니냐가 아이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내가 딸에게 자주 묻는 말들이 있다. “은율아, DVD 계속 보고 싶어?”, “지금 보는 것만 보고 좀 나가서 놀까?” 와 같은 것들이다. 그럼 하라는 대로 다 해 주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아이를 믿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먼저다’이다. 잔소리를 하기보다 자신을 어른처럼 대하며 물어봐 주는 엄마로 인해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된 아이는 본능적으로 옳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인생에서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 잘 살아내고자 하는 힘이 생긴다.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 아이의 말을 공감하고 경청하자. 그리고 선택권을 주자. 불안해하지 말고 일단 아이를 믿고 먼저 물어보자.

아이에게 밥을 먼저 먹고 간식을 먹으라고 하기 전에 잠시 생각해본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경우가 없는가? 나도 그럴 때가 있다. 밥을 먹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먼저 먹더라도 밥을 먹을 수 있다. 적당히 간식을 먹고 밥을 먹는 자제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그럴 수 있다. 여유를 가지고 선택권을 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가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은 실패를 통해 배운다. 자제력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실패라는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자신에게 선택할 기회를 준 엄마에게 감사하며 뚜벅뚜벅 삶을 살아갈 것이다.

사실 내가 은율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우리 친정엄마가 잔소리를 많이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나를 키워주신 친정엄마께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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