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모’란 이름이 뉴질랜드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 벌써 13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많은 캠프와 집회들, 교사 세미나 등을 치러냈다. 그리고 많은 사역자가 만나고, 교제하고, 함께 일하며,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그렇게 13년이란 시간 동안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청사모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사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 시작은 ‘청년사역자모임’이었다. 2008년 9월, 먼 뉴질랜드의 한인청년들에 대한 사명을 품고 사역하고 있던 사역자들이 처음 모임을 가지게 되었고, 그 모임이 ‘청사모’의 시작이 되었다. 처음에는 청년부 사역자들만 모였었고, 때문에 청사모는 청년 사역만을 향한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2021년 지금의 청사모에는 실제로 청년부 사역자는 많지 않다. 어쩌면 그것이 뉴질랜드 교회의 아픈 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질랜드 한인교회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라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청년이라는 한계를 넘어 청소년과 다음 세대를 모두 품을 수 있도록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청사모의 모임에는 청년부 사역자뿐 아니라 청소년 담당 사역자들도 있고, 간사도 있다. 모임에 오면 그런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복음을 다음 세대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 하나로 마음과 생각이 모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청사모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나는 ‘청사모는 그냥 청사모에요’라고 대답하게 된다.
매년 반복되던 방향성 토론
청사모는 매 연말마다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었다. 매 연말이 되면 청사모는 뜨거운 토론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뜨거운 토론의 주제는 매년 똑같다. 청사모의 정체성과 방향에 관함이다. 그리고 두 가지의 큰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첫째는, 청사모는 사역자들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와 쉼을 얻는 자리여야 한다는 의견이고, 둘째는, 그래도 사역자들인데 청사모는 청년들을 위해 뭐라도 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청사모라는 모임을 통해서 위로와 쉼을 얻기 위한 이들도 결국은 청년들에게 더 좋은 양식을 먹이기 위함이고, 청사모라는 모임을 통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어 하는 이들도 결국은 청년들에게 더 좋은 양식을 주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의견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뤄 지금까지 청사모는 많은 일을 해 왔던 것 같다. 서로 위로받아 새 힘을 얻고, 청년들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역들을 해왔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보게 된 것 같다.
청사모의 목적
지금 청사모는 정확한 형태가 없다. 청사모 회원의 자격도 엄밀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만든 적은 있었지만 정해진 회칙도 없다. 임원단은 있지만 정확한 조직이나 시스템도 없다. 청사모의 회원이 몇 명인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다. 카카오톡 채팅방에 들어와 있는 숫자로 대충 파악될 뿐이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 청사모가 참 답답하고 대충대충 굴러가는 모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런 유연함이 청사모의 큰 강점이라 할 수 있다. 형태가 없는 만큼 청사모는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기존의 틀이나 보고체계, 시스템이 없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정회원의 자격이 엄밀하게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 열정이 있는 분이라면 모임에 참여할 수 있고, 의견을 낼 수 있고, 서로의 필요를 연결해 줄 수 있다.
13년이 흐르도록 많은 것이 변했지만 잊혀지지 않고 흘러오는 청사모의 목적은 결국 ‘어떻게 해야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물려줄 수 있을까?’이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와 킹덤 페스티벌
지금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1.5세대, 2세대 청년과 아이들은 정말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필자의 세대만 해도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기독교인임을 밝히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것이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다음 세대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기독교인임을 밝히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의 다음 세대는 믿음을 지키기가 더욱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믿음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물려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믿음을 교회 안이 아닌 학교와 직장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선교사들의 간증과 설교를 들으면 모든 분이 동일하게 하는 말씀이 있는데 바로 ‘현지화’이다. 결국 그들과 문화와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렇지 않을까? 결국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한 사역자들에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현지화를 해야만 하는 마지막 시기가 바로 지금인 것 같다. 그리고 청사모는 어쩌면 그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청사모는 킹덤 페스티벌을 통해 희망의 조각을 보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1.5세대 믿는 청년들의 자발적인 활동들이 눈에 많이 띄기 시작했다. NGO 단체를 설립해서 사회복지에 힘을 쏟고, 찬양팀을 만들어서 정기집회를 시작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청소년들에게 전달해주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고… 정말 가슴 벅찬 일이다. 그리고 이 청년들이 킹덤 페스티벌이라는 곳에 한마음으로 모인 것을 보는 것은 마치 기적을 보는 것 같다.
판은 청사모가 깔았지만 사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청년들이 스스로 움직였다. 그래서 더 희망이 되는 것 같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어떻게 하면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물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움직이고 계셨다. 청사모는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고 싶다. 절대 앞서고 싶지 않다.
10년 후에 누군가가 ‘청사모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