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모든 부모가 원하는 것은 아이의 행복이다

“문자 왔숑!”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육아로 좌충우돌하던 어느 날 친한 동생 S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보다 어리지만, 육아로는 훨씬 선배인 그녀다. 아이들을 얼마나 자유롭고 씩씩하게 키우는지,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으면 저렇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언니는 좋은 엄마야. 지혜로운 엄마야. 언니는 잘하고 있어.” 나는 전화기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지금도 그 문자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

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첫 번째 요소로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를 꼽고 싶다. 당시 나는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육아와 살림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둘은 결코 완전함에 다다를 수 없는 프로젝트이다. 그 두 개의 바윗덩이를 완벽주의라는 몹쓸 성향을 가진 나는 시지프스가 되어 힘겹게 밀어 올리고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는 나를 잘 아는 누군가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을 때 살맛이 나고 행복감을 느낀다. 또 그 사람이 좋아진다. 힘이 솟게 하는 그런 문자를 저장해 둘 때도 있다. 특히 남편의 격려 메시지는 꼭 그렇게 한다. 유독 S의 칭찬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성취가 아닌 나 자체에 대한 인정이었기 때문이다. 애쓰고 있는 나의 노력을 격려해주었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도 춤추게 한다
아이들도 우리와 같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아이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칭찬과 격려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날마다 엄청난 과업을 이룬다. “여보! 우리 딸이 잡아주지 않았는데 혼자 그네를 탔어요!”, “여보! 우리 아들이 오늘 혼자 젓가락질을 했어요!” 하는 말을 퇴근한 남편이 오자마자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지구별에 와서 날마다 새로운 임무를 성실히 행하는 존재들이다.

오늘 은율이가 나에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엄마! 이것 좀 봐! 나 별 그렸어!” 보름 전쯤 이모에게서 별 그리기를 배운 은율이는 날마다 “이렇게? 이렇게 맞아?” 하며 비뚤비뚤 연습했다. 그러더니 제법 모양이 잡힌 별을 그렸다. 기특했다. 엄마 된 특권으로 맘껏 칭찬해주었다.

네 살 때 한번은 “엄마, 이거 어떻게 묶어?” 하면서 끈을 가지고 왔다. 여러 번 가르쳐주었는데 성공할 때보다는 실패할 때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아이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 가보면 무슨 대단한 발명이라도 하듯 끈을 가지고 씨름 중이었다. 어느 날 식탁 의자 다리에 끈이 하나 묶여 있었다. “은율아, 이거 네가 했어?” “응!” 결국 능숙하게 여러 번 매듭을 짓게 되고 요즘은 리본 묶기에 도전 중이다.

어느 날 유희열 씨가 진행하는 예능프로 <알쓸신잡>을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행복의 기억’이 그날의 주제인 듯했다. 건축가 유현준씨가 자신이 건축가가 된 계기인 행복한 추억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칭찬의 위력에 소름이 돋으며 칭찬의 기준이 확 달라질 것이다.

“모나미 볼펜 뒤에 형이 가지고 놀다 부서진 황금박쥐 발을 본드로 꽂아서 로켓이라며 갖고 놀았어요.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을 엄마가 너무 칭찬해주는 거예요. 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 하시면서요. 자신감이 붙어서 그다음부터는 설명서대로 조립하지 않고 부서진 것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놀았어요. 그것이 건축가가 된 계기예요. 정확히 그날 밤이 생각나요. 형광등 불빛 등 모든 것이 생생히 생각나요.”

내 아이의 성취가 유현준씨나 스티브 잡스의 그것보다 못해 보일 이유가 있는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발전하고 터득하고자 애쓰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 얼마나 갸륵하고 기특한가 말이다. 유심히 살펴보다 센스 있고 지혜롭게 격려해주자.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단추를 끼운 후 뿌듯해하는 그 눈빛을 놓치지 말자.

최악의 멘트는 “어머 단추가 한 칸씩 밀렸네.” 따위들이다. 엄마의 조건에 맞을 때만 듣는 칭찬은 아이를 평생 남의 기대에 맞추며 살게 한다.

예쁜 옷, 누구를 위한 걸까
맘카페에 한 번은 이런 글을 올려보았다. “아이 행복하라고 해준 일인데 돌이켜보니 후회되는 일이 있나요?” 곧 댓글이 달렸다. 그중 1, 2, 3위를 소개하겠다. 1위, 예쁘지만 불편한 옷을 입혀 문화센터 등에 데리고 다닌 것. 2위, ‘책을 사주면 좋았을 텐데 비싼 옷이나 장난감을 사준 것. 3위, 억지로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닌 것.

댓글을 읽으며 나도 22개월의 은율이를 아기 띠로 매고 남대문 아동복 가게에 간 일이 떠올랐다. 돌 무렵까지는 내복으로 충분했는데 점점 귀여워지는 딸을 보며 옷 욕심이 났다. 사람도 많고 날씨도 추웠다. 아이를 앞에 매고 옷 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무척 힘들었다. 아이도 힘들었을 것이다. 배도 고팠다. 만두를 사 먹으며 ‘그냥 따뜻한 집에서 애 좋아하는 동화책이나 읽어줄걸.’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놀이 계획을 머리에서 지우고 일상에서 행복 찾기
이로써 행복을 위한 두 번째 요소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이 일상의 사소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나의 부끄러운 경험 하나를 더 고백하려 한다.

36개월 골든타임, 72개월 골든타임 같은 것을 알게 되면서 오감 자극이니 두뇌 자극이니 하는 것에 눈을 뜨며 무리해 놀이 준비를 했다. 하루하루 피로가 쌓여갔다.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죄 없는 영혼에게 화산이 폭발하듯 화를 낸 적이 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놀이 계획을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렸다. 그즈음 우리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살다가 남편의 직장 때문에 서울의 서쪽으로 이사를 했다.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봄바람을 느끼며 아파트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포크레인 하나가 앞의 꼭지들을 바꾸며 작업 중이었다.

국자같이 되었다가 포크같이 되었다가 변신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 그 옆에 나는 무릎을 굽혀 앉았다. 아이의 시선이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재잘거렸다. 남대문 시장에서 돌아올 때의 씁쓸한 패배감이 아닌 뿌듯함이 차올랐다.

그 뒤로 나는 계속 이런 연습을 해나갔다. 내 기준에서의 재미와 교육의 틀을 지워갔다. 우리 아파트는 공항과 무척 가까운데 언젠가 비행기 격납고가 보이는 동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우리 비행기 보러 갈래?” 언제나처럼 신이나 따라나서는 딸. 마트에 들러 맛있는 간식을 하나 사서 우리 둘은 그 동으로 갔다. 복도 창문으로 비행기가 얼핏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창문이 너무 높아 아이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먼지 쌓인 책상이 하나 눈에 띄길래 낑낑대며 가져와 은율이를 그 위에 올려주니 손뼉을 치고 좋아했다. 그 상황이 우습고도 재미있었다. 평소 잘 볼 수 없는 비행기를 그날 실컷 보았다. 이륙하는 것도 보았다. 어디로 가는 비행기일까?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상상 놀이로 이어졌다.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를 아는 아이는 타인의 행복 기준에 휘둘리는 착한 기성품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내면의 소리를 따라갈 줄 안다. 앞서 말한 예능프로의 출연자 중 한 명인 유시민 작가가 했던 말은 아이와의 일상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준다.

“자잘한 행복의 기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어른이 되고 나서 작은 일에 쉽게 행복해진다고 해요.”

언제 가장 행복한지 아이에게 물어보자. 아이들은 학습된 행복이나 비교우위의 행복을 모르기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아이들 카페가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아마 엄마와 함께 가는 놀이터, 아빠와 함께 하는 몸 놀이가 1, 2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문득 궁금해 글을 쓰다 말고 다섯 살 딸에게 물어보았다.

“은율아, 엄마가 어떻게 해줄 때 제일 행복해?” “엄마가 꼭 껴안아 줄 때.” “왜 그게 좋아?” “따뜻해서.” 역시나 망설임이 없다. “근데 왜 갑자기 물어봐?”

‘왜 갑자기’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니 나도 잘 묻지 않았던 엄마인가보다. 나 역시 무엇이 행복감을 주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따뜻함을 주는 그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책을 잠시 덮고 당신 옆의 천사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그것을 해주자. 평생 작은 일에서도 행복감을 느끼는 명품으로 클 수 있다.

평생 행복감을 느끼는 아이로 커가게 하려면 옷이 아닌 사소한 행복을 선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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