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Time to repent… but unwilling…”

요한계시록 2장 20절-21절 말씀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Revelations 2:20-21(New International Version)
“Nevertheless, I have this against you: You tolerate that woman Jezebel, who calls herself a prophetess. By her teaching she misleads my servants into sexual immorality and the eating of food sacrificed to idols. I have given her time to repent of her immorality, but she is unwilling..”

의역: NIV 성경을 기반으로 필자가 재번역하다
“그러나 나는 너와 맞서는 것이 있으니: 너는 자칭 선지자라는 여자 이세벨을 용인하고 있다. 그녀의 교훈으로 내 종들을 음란한 짓을 하게 하고 우상의 희생제물을 먹게 했다. 내가 그녀에게 음란함에 관한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녀는 원하지 않고 있다.

단어 공부
Tolerate: 용인하다, 묵인하다, 참다, 견디다 Mislead: 호도하다, 그릇 인도하다 Immorality: 부도덕, 악덕 사악, 음란, 난잡함 Unwilling: 꺼리는, 싫어하는, 원하지 않는

말씀의 나눔 두아디라교회는 칭찬받은 교회였지만 그곳 역시 여느 교회처럼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책망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하여 음행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 것과 둘째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세벨이란 인물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7번째 왕 아합의 아내로서 시돈 왕의 딸이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과 결혼하여 그곳에 바알을 끌어들여 하나님만을 섬기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타락하게 만든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동급의 여인이 작은 두아디라교회에 침투해 교회와 성도들을 어지럽혔다. 물론 이곳에서 말하는 두아디라교회에서 활동하던 자칭 여 선지자인 이세벨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에 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두아디라교회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악했던 아합의 아내 이세벨과 견줄만한 그 거짓 여 선지자를 용납했고 이로 인해 교회는 결국 성적 타락과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영역성경은 이것을 ‘You tolerate…’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두아디라교회와 성도들이 모두 마음을 합해서 이세벨이란 인물과 견줄만한 그 여선자를 ‘tolerate’ 용인하거나, 묵인 곧 그 일에 대해 아무말 하지 않거나 또는 그 여 선지자의 만행에도 그들이 참고 견뎠다는 것이다. 그렇다! 분명 교회와 성도에게 인내가 요구되지만 악을 보고도 용인하거나 침묵하거나 참고 견디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다.

창세로부터 사탄은 끊임없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타락시켜왔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sexual immorality – 성적 타락’과 ‘the eating of food sacrificed to idols – 곧 우상숭배’였는데 이러한 죄는 교회와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을 떠나도록 한다. 게다가 사탄은 교회 밖에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교회 안으로 들어와 성도들을 꾀어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교회와 성도들을 미혹시키는 자들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교묘하게 말씀을 왜곡시키고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와 목회자를 공격한다. 그리고 안타까운 사실은 성도들은 너무도 쉽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탄이 말하는 그 대부분이 그 말을 듣고 있는 그 사람의 생각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매주 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을까?
아니! 가끔 빠져도 될 거야!
그래도 구원받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테니까.

이 말이 매력적인가? 적어도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런가 보다 하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매주 예배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아니다! 내가 매주 예배에 나오는 것이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는가? 역시 아니다!

그것은 교회는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을 때 온전하게 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주 예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거짓인 것이다.

꼭 헌금을 해야 하나? 그럴 듯하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헌금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나?

아니다! 이것이 교회에 해가 되나? 아니다! 오히려 교회에 유익이다. 그렇다면 헌금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어떤 말을 듣든지 어떤 생각이 들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에 유익인가 아닌가를 따져보면 그것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쉽게 구분이 될 것이다.

성적 타락에 빠지는 것…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하나님과 교회에 유익이 될까? 당연히 아니다! 그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두아디라교회와 성도들의 생각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실수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실수는 바로잡혀질 기회가 주어진다. 영역성경은 이것을 ‘I have given her time to repent’라 표현하고 있다. 주님은 교회를 어지럽히는 당사자에게까지도 회개할 ‘Time – 시간 혹은 기회’를 주신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에게도 회개할 시간을 주셨다. 하지만 이세벨은 그 시간을 놓쳤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두아디라교회에 들어가 교회와 성도들을 힘들게 했던 그 여 선지자 이세벨에게도 주님은 회개할 시간 곧 기회를 주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여인은 그 시간을 그 기회를 발로 차 버렸다.

영역성경은 이것을 ‘she is unwilling’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녀가 전혀 회개를 마음에 고려하지 않았다, 혹은 의지적으로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은 지금도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Time to repent’ 회개할 시간과 기회를 주신다. 그런데 그걸 아는가? 이처럼 교회와 성도들에게 회개할 시간은 주어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Unwilling’ 그 시간과 기회를 꺼려하거나, 싫어하거나,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 한마디! I gave an unwilling consent.
나는 마지못해 승낙했다.

I was unwilling to talk about it.
나는 그 일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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