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훈련을 마치고 한국에서의 지루한 기다림 속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었던 우리의 사역지, 파푸아뉴기니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있을 곳도 마땅치 않고 훈련이 끝났는데 선교지로 나가는 진행이 빨리 되지 않아서 마음이 조급하고 힘들었던 우리는 비행기에 오르면서 “드디어 한국을 탈출하는구나!”라며 웃기도 했다.
그때는 8월이라 1년 중 그 나라에서는 가장 좋은 계절이었지만 공항에 내리자 마자 숨이 턱 막히는 열대우림기후의 뜨거운 공기가 우리 가족을 맞이했다.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시간이 워낙 촉박해서 처음 파푸아뉴기니에 도착한 우리의 마음을 정리할 틈도 없었다. 현지 적응훈련을 하기 위해서 마당(Madang)이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하는 중에 창밖을 내다보니 울창한 정글과 함께 쪽빛 바다가 햇빛에 비취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나이 많고 인상이 좋은 한 미국인 선교사님이 큰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차를 가지고 우리를 맞이했다. 현지 적응훈련을 책임지고 이끄는 분이었다. 우리 가정 외에도 여러 명의 선교사가 도착해서 함께 훈련캠프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비행장이 있는 도시를 빠져나오면서 보이는 풍경이 아주 낯설었다. 문화충격이 시작되었다. TV에 방영된 파푸아뉴기니에 관한 모든 영상을 다 챙겨 보면서 나름대로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지만 실제로 접하는 현지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길거리 군데군데 토마토케첩을 쏟아 놓은 듯한 붉은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사람들이 부와이(Beatle nut)라고 하는 기호식품을 씹어 먹으면서 침을 뱉어 놓은 자국이었다. 그들의 입도 역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가는 중에는 군데군데 마을이 있었는데 모두가 억새를 엮어서 지붕을 만들었고 벽도 그와 같이 만든 집들이 보였다. 우리를 태운 차를 잘 안다는 듯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옷을 걸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보는 순간, 이 사람들과 내가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괜찮다고 하더라도 아내와 아이들의 심정을 지금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 적응훈련
현지 적응훈련 장소에 도착했다. 훈련을 담당하는 선교사님들은 모두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시고 훈련 센터 곳곳을 안내해주면서 숙소로 들어갔다. 차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그런 집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전기도 있고 수도도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거기서 우리는 8주를 보내면서 파푸아뉴기니의 문화와 공용어를 배웠다. 제일 먼저 훈련받은 것은 물을 아끼는 것이었다. 빗물을 받아 사용하고 있고 또 지금은 건기이기 때문에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샤워할 때는 한 양동이의 물만 사용해야 했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는데 며칠 지나니 샤워를 다 마쳐도 물이 남을 정도였다. 그 외에 전기와 수도가 없는 정글 지역에서 생활하는 기본적인 교육들을 받았다. 정글에서 나무를 잘라와서 세우고 천막을 쳐서 야외에 부엌을 만드는 방법과 장작불을 피워 요리하는 방법, 그리고 현지인 마을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음식을 말리고 고기를 말리는 방법들도 배웠다.
한 주에 한두 번 정도는 정글 트레킹과 바다 수영을 했다. 험악한 정글을 다니면서 그곳의 지형에 익숙해지고 바다에서 1.6km를 쉬지 않고 수영을 하는 훈련을 했다. 자연재해를 당해서 물에 떠내려 갔을 때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는 나에게는 훈련이라기보다 오히려 즐기는 시간이었다. 또한 다 트인 강에서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는 방법 등 새로운 그곳의 문화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훈련들을 해나갔다.
현지인들과의 만남
현지 적응훈련을 통해서 아주 감사했던 것은 현지인들과 서서히 자연스럽게 만나서 그들과 익숙해지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현지인들을 통해서 공용어를 배우기도 하고 각 가정별로 근처에 있는 마을 사람들을 훈련센터로 초청해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면서 교제를 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 서로 조금 익숙해진 다음에는 우리가 그 가정에 초청되어 가서 함께 저녁을 먹고 오고, 나중에는 그 집에 가서 잠도 자고 오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가정이 만난 현지인은 몇 해 전에 한국 선교사를 맞아 교제해 본 가정이라 더욱 우리와 쉽게 친숙해졌다.
마지막에는 조를 짜서 짐을 챙겨 배낭을 매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하루 종일 걸어서 다른 마을로 갔다. 거기서 또 다른 부족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해 먹으면서 늦은 밤까지 교제를 하고 잠을 자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마을 생활 체험
이렇게 8주를 보낸 후에 우리는 각 가정별로 현지인 마을에 들어가서 4주 동안 생활을 해야 했다. 그때 훈련센터에서는 우리에게 4주 동안 생활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 아주 상세하게 가르쳐 주며 준비물을 구입하는 것도 꼼꼼하게 일러주었다.
이렇게 생활해 본 것이 나중에 우리가 사역할 부족이 정해지고 그 부족 마을에 들어갈 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현지인 마을에 가서 그들과 함께 사는 생활은 쉽지 않았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때때로 두통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한 번씩 내리는 소나기는 우리의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현지인의 한 집을 빌려서 살았는데, 빨래와 몸을 씻기 위해서는 매일 10분 이상 걸어서 계곡으로 가야 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마을에 빗물을 받아 사용하는 공동 물탱크가 있어서 식수는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음식은 쌀을 가져가고 현지인들이 주는 채소와 과일들을 요리해서 먹었는데, 현지의 푸른 채소들 외에는 거의 뿌리식물(고구마, 타피오카, 타로)이라서 먹고 나면 소화가 잘 안 되어 약간의 어려움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4주 동안 이 사람들의 돌봄을 받으면서 마을에서 살아가는 체험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이 농사짓는 밭에 따라가서 나무를 태워서 밭을 일구고 바나나 모종을 심어 보기도 했고 코코넛 잎으로 작은 도시락 바구니를 만드는 법, 코코넛 오일 만드는 법, 그리고 여러 가지 전통적인 요리를 하는 것들도 배웠다.
또 심심한 마을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책도 읽어주고 윷놀이도 하고 저녁이면 마을의 가족들과 모닥불을 피워 놓고 모여 앉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TV나 라디오가 없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모여 앉아서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문명과는 좀 동떨어진 퍽퍽한 삶이지만 그들에게서 가족 간의 사랑과 행복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이들과 생활하면서 공용어가 좀 더 편안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섬길 종족이 결정되면, 마을에서 현지인들과 어떻게 생활하며 사역을 진행해야 할지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4주를 보내면서 파푸아뉴기니라는 나라에 조금씩 정이 들고 현지인들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깊은 산골짜기에 살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은 그 영혼이 깨끗하고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정이 들어 우리가 다시 훈련센터로 돌아갈 때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꼭 다시 오라며 배웅을 해주었다.
성경번역 선교회 현지 본부
현지인 마을 체험훈련을 마치고 다시 훈련센터로 돌아왔다. 거기서 4일 정도 쉬면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훈련 중에 그렇게 꿈꾸며 기대를 하던 우까룸빠 센터(파푸아뉴기니 성경번역 선교회 본부)로 가게 되었다.
해발 1,300m의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는 본부는 기온이 좀 낮아서 지친 선교사들이 마을에서 돌아와 쉬면서 다음 사역을 준비하기에 아주 적합했다. 마침내 본부에서는 경비행기로 훈련을 마친 우리를 데리러 왔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본격적인 사역을 할 준비를 갖추어 갔다. 하나님은 서두르시는 법이 없다. 우리의 수준에 맞춰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면서 천천히 인도하신다. 우리가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받아들여서 체하지 않고 소화할 수 있도록 선교지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다.
우리는 우리의 계획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앞서가고 조급하게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늦어도, 더뎌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지름길인 것 같다.